마이 앨범 [2]

[스크랩] 제2의 월출산(용봉산)을 만나다.

영관님 詩 2010. 4. 1. 19:40

충남의 월출산을 만나다.

 

용봉산(龍鳳山)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에 있는 이다.

이름은 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 듯한 형상인데서 유래했다 한다.

 

 소털 같이 많은 날 털 한개를 뽑아 보았다. 그리고 충남 홍성에 있는 용봉산으로 날려보았다.

처음에는 그려러니 하고 시쿤등 하였으나, 도청을 이전한다는 지역의 명산이라고 회자되기에 기대를 하여보며 바퀴를 굴려보았다.

코스를 역으로 하여야 하산하기 좋다는 선행자의 조언에 따라 청소년 수련원 쪽을 출발지로 삼아 흔들바위 최영장군 활터, 노적봉, 악귀봉, 마애석불, 병풍바위는 건너다 보고 용봉사를 지나 일주문으로 하산하였다.

 

소감은 한 마디로 제2의 월출산, 아명으로 소월출산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남았다. 송암이 알맞게 조화를 이룬 명산임에 틀림없다. 특히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바위가 많다는 점이다. 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변화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여러번 보아도 실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영장군활터를 가기전에 있는 흔들바위는 어른 한사람이 흔들어도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재미있고 신비로운 바위는 많지 않은 기암이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흔들어 보고 가리라.

  

 

 

 

 

 

 

 

 

 

 

 

 

 

이제껏 보지 못한 어떤 동물의 어미와 새끼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모습이다. 돌이지만 따뜻한 정감이 있다.

 

 바위와 소나무의 조화가 너무나 아름답다.

 

 흔들바위다. 두사람이상이 밀면 아래로 굴러 떨어지리라.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힘이란 사람마다 다르니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꿩 푸드득이 아니냐고,  밀어보시면 알일,

조금 각도를 달리하여 보니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모양으로 눈에 다가 온다. 바위가 주는 변화의 매력이다. 본인은 여기에 광인이다.

 

 

 최영장군 활터이다. 어느곳을 향하여 쏘았는지, 과녁이 어느곳에 있었는지는 미지수이나 전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느끼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최영(崔瑩, 1316년 ~ 1388년)은 고려 말기의 장군이다. 시호는 무민(武愍), 최원직(崔元直)의 아들이다. 우왕의 장인이자 영비 최씨는 그의 서녀였다. 이인임 등을 멀리하였고 1388년이인임, 염흥방을 제거하였다. 유교 사대부와 을 잡은 이성계와 대립하다가 명나라가 서북면을 요구하자 요동정벌을 주장하여 요동정벌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으나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의 반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고려 후기의 학자로서 집현전태학사(集賢殿太學士)를 지낸 최유청(崔唯淸)의 5대손인 최영은 16세 때 사헌부 간관(司憲府諫官)을 지냈던 그의 부친 최원직(崔元直)으로부터 “너는 마땅히 황금보기를 돌 같이 하라.”라는 유훈(遺訓)을 받은 후 최영은 이를 그대로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하였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늠름했으며 용력이 출중하여 문신 가문에 태어났으면서도 병서를 읽고 무술을 익히어 무장의 길을 걸었다

맹사성(孟思誠, 1360년음력 7월 17일 ~ 1438년)은 고려조선 초의 문신이다. 본관은 충청남도아산의 신창이다.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이다. 고려 수문전제학 희도(希道)의 아들이며 명장인 최영(崔瑩)의 손녀 사위다.- 위키백과

 

 최영장군이 무술을 연마하다가 피곤한 몸을 달래어 보고, 책을 보기도 하였던 곳이라면 누가 부정할 수 있을 까. 상상은 마음속에 있고  전설은 상상속에 있는 것.

 

  삿갓바위라고 하면 누가 뭐라 할 수 있을 까?  삿갓을 깊숙히 눌러 쓰고 중생을 구제하고자 수도하고 있는 스님이라면 - - - .

 

고단한 삶을 조금 쉬는 것 같다. 주위에 소나무가 더욱 빛을 발한다.  

 

 산 아래 드넓게 펼쳐진 평야가 삽교평야라,  삽교역이 있고 북쪽 역리라고 하는 마을이 보이는 것 같군요,  삽다리 총각 조영남씨가 태어난 마을이던가요?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 풍요로운 고장이었지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마음까지요 구수하였지요.

 

 

 

 엄마! 아빠! 나 떨어질 것 같아!

 

 

 

 

이름 모를 나무의 열매가 붉게 익어 녹색의 바탕에 운치를 더한다. 아마도 겨울의 산새들을 위해 산신령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이 아닐른지? 

 

위 사진에서  앞에 보이는 정자가 최영장군이 활을 쏘시던 활터이다. 용봉산의 바위들은 세로로 서 있는 형태이다. 이는 지층이 지각변동시에 압력을 받아 수직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마치 공부하는 선비들이 피곤하여 책을 조금 질서없이 놓은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용봉산 정상 표시바위의 뒷면에 해당한다. 같은 바위라도 앞 뒤의 차이가 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가?

 

좌측에 보이는 물이 용봉저수지이다. 그리고 저 멀리 산 정상에 가야산 원효봉이 보이고 KBS 중계탑이 보인다.

 

 

책꽂이바위라면 보는 사람들이 웃고 갈까?  웃음은 매우 좋은 것이다? 

 

 

 

 

 누가 저렇게 세워놓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 - -  어느 세월까지 갈까?

 

 

 

 오른 쪽 상부의 모습을 보고 귀면암이라고 생각하면 않될까요? - 생각은 자유이니까, 누가 뭐라 하겠오.

 

 

 

 

 

 

 

 

 

 밤의 손님이 담을 넘어 오려고 하는 모습이 아닌가? 아마도 아주 옛날옛적에 도둑이 벌을 받아 돌로 되었는 지도 모른다.

 

 

 

 

 

 

 

 

 

 

 

 무어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워도 두꺼비 비슷한 동물이 한 번 도약하여 보려고 폼을 잡고 있는 것도 같고, 보는 사람마다 자유로운 사고를 하리라.

 

 

 

 

 월출산의 매봉과 사자봉을 이어주는 구름다리를 연상시키어 준다. 그런대로 멋이 있다. 제2의 월출산, 충남의 월출산, 소월출산이라고 명하고 싶다. 아기자기한 모습이 그런대로 멋이 있다.

 

 

 병풍바위를 향하여 수억년전부터 그 느린 걸음거리로 올라가고 있음에 틀림 없다. 멀리서 당겨 담아서 선명하지는 않지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이름은 ?  말하면 바보라고 말 할 것 같아서 ~   그래도 말하라면 할 수 없이 "돌"

아래 사진은 병풍바위를 멀리서 담아보았다.

다음에는 만져보리라.

 용봉사 뒤 골짜기 위에 있는 병풍바위이다. 

 

 

 

 

 

 용봉산 후면에 보이는 바위가 병풍바위이다.  내려오다가 적지 않은 묘를 보았다. 이 높은 곳까지 묘를 이렇게 조성하다니 하고 감탄한 바가 있다.

절의 위치가 좀 그렇다고 생각하였더니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그시절 그때에 아무리 고뇌스런 일이라도 세월이 흐른다음에는 하나의 얘기에 불과한 것을, 그 놈의 욕심때문에 ~

 

 

 

 

 

 용봉사 게시판에 있는 글들이다. 읽어보니  마음에 와 닿아 담아 보았다.

아마도 교사들이 쓴 글이라면 조롱을 받았으리라, 그러나 이글은 법망경이라고 하는 경전에 있는 글이다.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허기진 배를 달래며 찾아간 집, 수년내에 이렇게 싼 보신탕집은 처음이다. 보신탕을 시켜놓고 의구심을 달랠길이 없는데 주인이 내눈치를 챗는 지 저희집 보신탕 맛있어요 라고 말한다. 잠시후에 맛을 보니 값에 비해 양호한 편이었다. 음식점 외관도 괜찮고 내부도 청결하고 일하는 사람들도 친절 겸손하고 여러면에서 좋았다.  참고하시는 것도 괜찮으실 것 같아 사진 두장을 올려봅니다.

 

 

청량산, 팔영산 사진 : http://cafe.daum.net/hnmlove/HZ6w/215

출처 : 신수리은행농장(서산부석다원)
글쓴이 : 220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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