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앨범 [1]

[스크랩] 만취당 이야기~~

영관님 詩 2011. 5. 7. 19:10

 

아버님의 84세 생신을 맞아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아침에 일어나니 앞마당에 꽃가지가 환하다~~

 

 ~생신 축하합니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부와 함께~~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만취당과 종가를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이 당호는 천하애의 15대조 되시는 만취당 김士元 할아버지가

약 430여 년전 임진왜란 발발하기에 전에 3년에 걸쳐 지으시고

당신의 호를 따서 저물 만(晩), 비취 취(翠), 집 당(堂)이라 이름하여 만취당이 되었다.

이 만취당 할아버지는  퇴계 이 황 선생의 고제자로서

천하애의 18대조가 되시는 송은 김광수 할아버지의 증손으로서

송은 할아버지의 외손자 서애 유성룡 대감과 의성김문의  학봉 김성일 선생과

모두 동문 수학하여 임진왜란 당시 많은 공을 세운 바 있다.

특히 만취당 할아버지는 임난 당시 정제장으로서

기아에 시달리는 인근 주민등에게 창고을 개방하여 빈민을 규휼하여

지방 백성들에게 '김씨의창(金氏義倉)'이라는 칭송을 받았는가 하면

병방산성에서 진을 친 존고모의 아들 의성 김문의 의병대장  김치중 의사 진에도

모든 보급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만취당 할아버지의 스승 퇴계 선생은 벼슬길 나아가는 것을 만류하시고

후학을 가르치며 조용히 학문을 연구하는 선비의 길을 권면하시며

안동에 있는 진성 이씨의 문중산 중에서 '월란정사' 부지를 하사해 주셔서

지금껏 월란정사는 우리 안동 김씨 문중에서 관리해 오고 있다.

 

 이 현판 글씨는 할아버지와 동문인 당대의 명필 석봉 한호의 글씨라 한다.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기품이 서려있는 목조건물로서  우리나라 사가의 건물로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천정아래 보관되어 있는 가마틀은 서애 유성룡 대감의 모친이자

송은 김광수 할아버지의 넷째 따님인 안동김씨 부인이 타시던 것이라는데

당시 부인은 겸암에 이어 둘째아기인 서애를 임신하여 친정에 나들이를 와 있었다는데

외조부되시는 송은 할아버지가 천기를 짚어보니 항차 이 마을에서 정승이 태어날 조짐이라

마을 전체에 임산부를 조사해 본 결과 친정 온 당신의 딸인지라.

그 당시 조선 중엽인 중종 임금시대만 해도 문중 간에 친손과 외손의 경계가 뚜렷하여

시댁인 안동 하회마을로 되돌려보내려 했으나

가마가 마을 입구에 조성해 놓은 방풍림인  서림(세칭 가로숲)에서

잠시 교꾼이 숨을 돌리는 차 산기가 있어

할 수없이 종가로 되돌아야 해산을 하였으니

그 아기가 자라 나중 임진왜란을 맞아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을 중용하고 징비록을 기록으로 남기는 등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상 서애 유성룡 대감이었다.

 

 

도평의공고려~

1392년 안동 회곡에서 이곳 사촌마을로 입향한 안동김씨 도평의공파의 종택이다.

 

려말 유신 도평의공은 휘 구(九)자 정(鼎)자 로서

안동김씨의 중시조이신 천하애의 26대조 되시는 고려 명신,

두 번에 걸친 일본 정벌시 여몽연합군의 도원수이며

삼별초 난을 평정한 입상(入相) 출장(出將) 충렬공 김방경(金方慶) 할아버지의 현손으로서

안동 회곡에 세거하고 있었으나

그 아드님이신 감목관 자첨 할아버지가 조선을 개국한 이 태조와 삼봉 정도전 등과 동문 수학했던 관계로

새 조선 정부에 동참할 것을 권유받고 

'어제까지 동문수학의 친구로서 서로 흉허물없이 말을 트고 지냈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그의 신하가 되어 그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단 말인가!"  탄식하시고

식솔을 솔가하여 의성땅 사촌마을인 이곳으로 입향하시니 그때가 조선이 개국한 1392년이라

한양 천도보다 2년이 앞섰더라.

그리고는 후손들에게

'선비가 학문은 연마하되, 이 조선 조정에는 출사하지 말라' 고 훈도하시니

이 일문에 주경 야독의 미풍이 진작되었느니라~~

이 명이 한 200년 정도는 지켜져 왔으나

조선 중기 이후로 출사를 하기 시작하여 그후 

우리 문중 사촌 마을에서만 대과 18명 ,소과 30여 명이 등과하였으니

이는 여타 일개 군 전체의 급제자보다 많아

안동김씨 세거지지 사촌마을이 '선비의 고장'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종가 앞에 있는  600년도 넘는 우물이다~

 

 수령이 500년이 넘는 만년송 향나무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沙村詩篇 ․ 2                                     
-여름 만취당

金 進 中


만취당 대청마루
높은 섬돌위
공(O)표 신,

꼽(X)표 신,
한 一字, 두 二字.

萬年松 향가지가
글씨를 쓰네,
사람人,

사람人.

대설대
막힌 댓진
재떨이에 터는 소리
놋재떨이 뒤집혀서 구르는 소리,
丁丁丁,

正正正.

시렁위 곰팡이 핀
목각판 활자
譜世氏金東安'
안동김씨세보.
一之卷, 卷之一.

-金進中 民調詩集 '沙村詩篇' 中

병신병란 100 주년 기념비~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일본의 낭인들에게 시해당하자

그 이듬해인 1896년 병신년,

고종이  전국 유림에게 의병을 일으키도록 밀지를 내려

우리 문중의 운산 김상종 할아버지가 의성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고

이웃 고을에 사발통문을 돌리고 기꺼이 창의하여

약 3개월간 유격전을 벌리며 일본군과 싸웠다.

 

 낮으막한 돌담길~~

 

종가 마당에서 쑥을 캐는 형수님 ~~

 

종가 후원에서 형님이 캔 달래~~

뿌리가 거의 마늘 수준이다~~

 

 天河愛 金進中 ~~

 

귀경길에 말못하는 아재도 잠깐 만나보고~~

 

그 요란하던 구재역 열풍도 지나가고~~

용캐도 새 생명들이 태어나고~~

 

막내네 조카들이 강릉에서 달려오고~~

우리는 귀경길을 서두르고~~~

 

 

 

출처 : 3456.민조시
글쓴이 : 天河愛 金進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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