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과 산문시는 다르다
강인한
문) 다음 (1)에서 (5)까지 다섯 편의 글을 읽고 각각의 느낌을 솔직하게 말해 봅시다.
(1) 비트박스에 담기자 mother는 murder의 혐의를 부인합니다 마더*가 정치의 형식이라면 파주**는 영혼의 담론을 보관합니다 사랑과 증오의 기법이 주검의 형상을 포장한 격이죠 일단 비트박스를 펼치기 위해서는 킥, 하이엣, 스네어 3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몽환의 향기를 동반한 성녀의 지경에서 마녀의 경지로 치닫습니다 나이트클럽의 번식력이 음부의 권세를 추인한다니까요? 킥! 일단 입술을 안으로 모으면서 뱉는 겁니다 풉 풉 풉― 이런 식으로요 예를 들어 영화의 맛과 멋은 여성의 자궁까지 관리하는 정치한 기법이거든요 하이엣은 입술을 쓰지 않고, 앞니의 작은 숨구멍 있지요? 그곳으로 숨을 내쉬면서 츳츳 칫칫 춧춧― 이런 식으로 마찰의 힘을 보여주면 된답니다 사랑은 신경증적 불안과 알싸한 히스테리 증후군을 동반합니다 치정의 망막에 맺히는 한 사건과 기억을 오인하기 십상이라니까요? 그들이 음험한 공모의 눈빛과 거래하는 동안 스네어는 입술을 꼬면서 구멍으로 쓰읍, 이런 식의 강한 흡인력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정치가 피냄새 은폐하는 미학이라면, 증오는 자본을 엄폐하는 발작이기 때문입니다 저마다의 비주얼에 따라 4비트, 8비트나 뭐, 고급 스킬***을 쓰면 되구요 mother의 킥과 murder란 스네어의 접점에서 서정적 하이엣이 완성되었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들은 비트박스가 개봉될 날만 손꼽아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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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의 영화 ** 박찬옥 감독의 영화 *** 솜씨나 숙련 기능(skill)
(2)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고향 크레타 섬에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과연 그랬을까?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영혼은 오로지 에게해를 가르고 나아가는 돛단배처럼 자유 그 자체였을까?
(3) 손님들이 나간 텅 빈 식당 앉은뱅이 탁자에 앉아 국밥 먹고 일어설 때 나이 어린 여자 종업원이 부른다. “선생님!” 그녀는 탁자에 남은 술병들을 치우며 손짓한다. “왜 그래요?” 다가가 묻는다. 그녀는 빈 술잔을 들고 “선생님이 여기 술 좀 따라주세요.” 난 그녀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고 식당을 나온다. 겨울 밤 바람이 차다.
(4) 창피猖披란 짐승이 있어, 무안無顔과 적면赤面 사이의 좁은 골짜기에 산다 야행성이라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간혹 인가에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진다 팔다리가 가늘고 귀가 뒤로 말려서 비루먹은 곰처럼 생겼다 산정을 좋아해서 오르다가도 꼬리가 무거워 늘 골짝으로 떨어진다 이 짐승의 가죽을 얻으면 얼간망둥이를 면할 수 있다
낭패狼狽는 이리의 일종이다 낭은 뒷다리가 짧고 패는 앞다리가 없어서, 길을 가려면 반드시 두 마리가 짝을 이뤄야 한다 전하여 서로의 배필을 찾지 못했을 때를 낭패라 하고, 동성의 짝을 만나 겹으로 쓸모를 잃었을 때를 낭낭패패라 한다 이 짐승을 달여 먹으면 어지자지가 떨어져 한 몸이 둘이 된다
(5) 이십 년 중독된 수면제를 끊고도 밤에 서너 시간은 꿈 없이 잔다 도나 개나지만 두 군데 대학에서 석좌로 특강 밥벌이하고 지하철 경로석 무임승차하니 세상이 다 고맙다 그러고 가끔씩 이렇게 못난 시도 쓴다 빗방울 듣는다 길거리 달리는 버스들 옆구리에 광고 광고 광고들 '욕심을 키워라' '아이디어를 훔쳐라' '생각이 에너지다' '영혼이 경제력이다' 내 속 깊은 밑바닥에서 한마디 올라온다 단 한마디, '바보가 되자' 혼자서 빙긋 웃는다 미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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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까다로운 문제일까요? 그냥 쉽게 생각하세요. 필자의 이름도 없고 글의 제목도 없으니까 주눅들 것 없이 내게로 와 닿는 느낌 그것을 고스란히 믿어보세요.
이 글들 중 혹시 일기로 생각되는 글이 있었나요? (3)과 (5)가 일기 아닌가, 그렇군요.
철학적 사유를 고백하고 있는 글이 있다면? (2)가 그렇다고 봅니다. 동감입니다.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글은 무엇일까요? 그야 (1)과 (4)의 글이지요. 맞아요. 잘 맞혔습니다.
그럼 읽으면서 상상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글은? 역시 (1)과 (4)아닙니까?
글쎄요, 차이가 좀 느껴지지 않나요? (1)은 읽으면서 상상을 하는 게 힘들고 괴로워요. (4)가 주는 상상의 재미와는 차원이 다르군요. 독창적 발상이란 점은 둘 다 비슷할지 모르지만….
여기서 한 가지 양해를 구할 게 있습니다. (4)와 (5)는 전체가 아니고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5)는 원래 행과 연의 구분을 가진 글인데 편의상 붙여 써서 비교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자, 그럼 답을 공개합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 글들은 모두 시인들이 ‘시’라고 당당하게 발표하고 있는 글들입니다. 세상에! 모두 시라구요? 일기나 수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글이 어떻게 시란 말입니까? 그러게요. 시인 자신도 잘 모른 셈입니다. 말하자면 자기도 모르는 ‘자기기만’이라 할까요.
결론적으로, 시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전 (4)의 글에만 그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뭐라고 해야 하나요? …… 그냥 ‘글’이지요. 시도, 산문도 아니고 그냥 ‘글’입니다.
(참고로 '산문과 산문시'의 자료를 제공해 준 시인들의 존함을 가나다순으로 밝히자면 강희안, 권혁웅, 김지하, 이승훈, 이시영 시인들입니다. 그리고 숨겨둔 이 글들의 제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비트박스를 개봉하는 3가지 방식 (2) 그에게 묻는다 (3) 내가 나를 만나는 장소 (4) 소문들 (5) 못난 시. * 출전 ; 월간 '현대시' 4월호, 월간 '현대시학' 4월호, 계간 '문예연구' 봄호, 시집 '화두', 시집 '못난 시' )
-출처, 강인한 시인의 푸른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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