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파주 처제와 형부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 파주 ⓒ 영화 파주
지난 8일부터 시작, 16일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일 기자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질투는 나의 힘>에서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한 시선을 보여주었던 박찬옥 감독의 새 작품 <파주>를 꼽는 것에 결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파주>는 파주라고 하는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형부와 처제 간의 사랑과 갈등을 그린 영화다. 물론 이렇게만 본다면 매우 통속적인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었겠지만 박찬옥 감독의 <파주>는 단순히 남녀 간 사랑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고 도시 속 빛과 어둠의 대립, 그 속에서 금지된 사랑이 꿈틀거리는 한편의 시를 담아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동일하다. 이경영과 서우가 같은 택시에 합승하여 파주로 들어오는 것에서 시작하여 역시 두 사람 다 파주를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번 영화를 통해 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던 이경영에게는 단 한마디의 대사도 주어지지 않았고 딱 네번 등장하는 그 시간을 모두 합해도 1분여 남짓 될까 싶은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가 말없이 보여준 강렬한 눈빛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뚜렷하게 각인되어 다가왔다.
첫 장면에서 이경영과 서우,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파주에 들어온다. 이경영은 파주 재개발, 재건축 현장에서 철거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기 위하여, 그리고 서우는 3년간의 인도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 후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온전히 서우와 그의 형부인 이선균의 과거 기억을 통해 이끌어지게 되는데 그 중간에 딱 두번 이경영이 그의 일당들과 함께 등장하여 이 이야기의 끝을 이끌어내게 된다.
이경영, 말없이 강렬한 눈빛연기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다.
단지 표면적으로는 처제(서우)와 형부(이선균)의 금지된 사랑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끌고 있지만 기자에게 있어 영화의 실제 아주 큰 흐름은 파주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어둠과 빛의 대립이 가장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즉, 이경영은 어둠의 상징으로, 서우는 빛의 상징으로.
하지만 빛과 어둠 역시 절대악과 절대선은 아니었다. 어두움의 상징인 이경영에게도 빛의 상징인 서우에게도. 오히려 궁극에 가서는 무엇이 빛이고 무엇이 어두움인지 알 수 없는 모습이 되어버린다.
이선균의 빛 역시 항상 어두움이 함께 하는 밝음이다. 그는 처음에 왠지 멋있게 보이는 것 같아서 학생운동에 가담하였고 두번째로는 자신이 세상에 갚아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아서, 그리고 그 다음에는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계속 바쁘게 할 일들이 많은 것 같다며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80년대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지금 현재도 사회운동을 하는 이들의 삶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선균, 그의 모습은 마치 지구를 지키기 위해 매일 같이 활약하고 있는 수퍼맨 같아보이지만 한편으로 그는 인생의 실패자의 모습이다. 그는 사고로 아내를 잃었고 또 그전에 있었던 어떤 사고의 기억으로 평생 죄의식 속에 살아가고 있다. 평생 자신을 괴롭혀 왔던 죄의식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인 처제 서우에게는 결코 안겨주지 않겠노라며 그는 그 자신과 그 자신이 지키려던 아흔 아홉 마리 양들까지 기꺼이 희생하려 한다.
반면 형부인 이선균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처제 서우는 언니와 결혼하기 전부터 형부가 될 사람인 이선균을 사랑하면서도 행동은 오히려 그 반대로 한다. 이선균이 언니와 결혼한 후에는 그것이 애증이 되어 미워하게 되지만 언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에는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과 잠시 동안이나마 동거생활을 통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이선균의 학생운동 선배이자 첫사랑이었던 김보경이 나타나면서 이들의 행복도 파국을 맞게 된다. 이선균은 감옥으로, 서우는 인도로 떠나게 된다.
서우의 존재는 어쩌면 절대순수,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밝은 빛은 동시에 어두움이 되기도 한다. 오히려 사고의 기억과 그 죄의식으로 인해 평생 마음 속의 어두움을 안고 살아가는 이선균이야말로 실질적으로는 가장 이성적이고 세상에는 밝은 빛으로, 빛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언제나 어둡다.
절대악도 절대선도 아닌, 그냥 빛과 어두움으로 그려낸 도시, 파주
딱 네 번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이경영은 어두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파주라는 도시가 재개발되고 그래서 어쩌면 아주 멋진 신도시로 거듭나게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철거민 가족들에게는 절대 어두움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어두움의 대표자에게도 서우의 밝음은 왠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지켜주어야만 할 무언가로 느끼고 행동하는듯한 모습은 묘한 여운을 준다. 물론 보기 따라서는 그 자체도 노회한 이경영의 계략으로 생각할만한 여지가 없지는 않겠지만.
영화 <파주>의 포스터는 '소녀의 얼굴, 여인의 눈빛' 또는 '충무로의 새로운 블루칩'으로 불려지는 신인 여배우 서우를 매우 선정적인 자세로 잡아놓았고 또 '처제와 형부의 금지된 욕망' 등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실제 영화상에서 서우가 섹스를 하는 장면은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처제와 형부간의 알듯 모를듯 은근한 어떤 감정, 처제가 형부에게 결코 형부라고하는 호칭을 하지 않는 그 상황 자체에서 사회적인 금기일 수밖에 없는, 선을 넘을듯 말듯 하는 그런 묘한 상황 자체에서 느껴지는 감정들, 그 자체로서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주된 내용을 이끌어가는 것이 처제와 형부의 사랑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동의할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닮은 것 같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죄의식을 다룬다는 점에서, 무엇이 빛이고 또 어두움인지 혼재된 상황, 한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큰 구도는 매우 단순하다. 단지 처제와 형부의 사랑 이야기다. 아무 복잡할 것이 없는 영화이지만 이 영화는 기자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참 많이 제공해 준 인상 깊은 영화였다.
▲ 평생 죄의식을 갖고 사는 김중식(이선균) 김중식(이선균)은 대학생
수배자 시절에 일어난 한 사건 때문에 평생 죄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 영화 파주
▲ 고등학생 처제 최은모 최은모는 하나뿐인 가족, 언니를 잃고 형부와 함께 살아간다. ⓒ 영화 파주
▲ 처제와 형부의 행복한 동거생활 언니 은수(심이영)이 세상을 떠난 후
형부 중식(이선균) 과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 은모(서우) ⓒ 영화 파주
▲ 파주의 어두움을 상징하는 존재, 이경영이 특별출연 하였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며
딱 네번 출연하는 이경영은 아무 대사도 없이 강렬한 눈빛만으로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 영화 파주
▲ 중식(이선균)에게 항상 좋은 인도자가 되어주는 목사역의 이대연 ⓒ 영화 파주
▲ 레드카펫 위의 서우, 이선균 영화 <파주>의 주인공 서우와 이선균이
지난 8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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