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 어머니의 고향 St. Gilgen
짤츠부르크 근교에 있는 중국식당 남원南苑에서 점심을 대충 떼우고 버스에 올랐다.
독일 금융의 중심지 뮌헨으로 떠날 예정이었던 여정이 바뀌어 모짜르트 어머니 생가가 있는
St. Gilgen으로 향했다. 젊은 시절 7 년 동안 뮌헨에서 공부하며 지낸 추억이 새롭다며
아쉬움을 애써 감추던 노여행객의 심사인 듯, 차창 너머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가을 우수에 깊숙히 젖어 있었다.
모짜르트 어머니의 생가가 있는 St. Gilgen은 짤츠부르크 근교 호수지구에 있다.
여름 햇살이 사라진 가을비 내렸던 호수에 안개구름이 산허리를 휘감았다.
닻 내린 요트를 바라보는 젊은 여행객 한 쌍도 가을 우수에 잠겨 멍하다.
산 좋고 물 좋은 호수마을 성당의 첨탑에서 은은히 울리는 종소리가
산과 물을 순하게 길들였을까. 초가을 우수에 잠긴 마을은 고요까지 가라앉아 있다.
이곳에서 천재 작곡가를 낳은 어머니 '안나 마리아 페르틀(1720~1778)'이 태어나고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짤츠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수학한 후 공무원이 되었으나,
음악을 사랑하고 성학을 가르쳤으며 성가대원으로도 있었다고 한다.
마을 길가에 있는 울타리도 없는 건물벽에 세 사람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모자르트의 어머니, 그의 누나, 그리고 매부의 초상이다.
모짜르트 어머니 |
모짜르르트 누나 |
모짜르트 매부의 초상 |
모짜르트 초상 |
우리 일행이 그 곳에 도착한 시간이 늦은 오후여서인지 문이 닫혀 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안에 들어가 봐도 볼 것이 별로란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유명인사들을 더 유명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꾼들인 것 같다는 익살로 설명을 간단히 마무리 했다.
Sankt Gilgen에 있는 모짜르트 하우스
>관광객들을 위한 레스토랑 'Rosam'
마을회관과 같은 건물, 공중 화장실도 있고.
겨울준비에 들어간 듯한 요트들의 모습이.
산허리 안개구름을 배경으로 한 성당 첨탑의 금장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와서 한 컷...
한 폭의 수묵화 같아서 한 컷...
짤츠부르크의 가을 연가(戀歌)
동구東歐의 작은 로마 짤츠부르크 이 곳 저곳,
성당 검은 돔들이 햇살에 번쩍이는 금장金裝 첨탑에
빨래처럼 걸려 하늘은 더욱 파랗다.
요절한 천재 모짜르트가 거나하게 취해 드나들던
단골 카페가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를 찾는다.
몸집보다도 더 큰 악기통을 둘러메고 걸어가는 젊은 악사
모짜르트의 후예인지
흐트러진 금발머리 내려앉은 보랏빛 외투에
가을이 젖어 내린다.
낡아서 반짝이는 흰색 악기통은
사랑 업은 하얀 가을 여인인지.
작은 머리에 기다림이 익어 내려온 긴 모가지가 예쁘고
도톰한 허리 아래 넉넉한 여인의 뒷태에
가을이 하나씩 하나씩 내려 쌓인다.
모짜르트가 생겨나 자라면서 악기통을 들고
자박자박 걸었을 게트라이데 거리의 뒷골목
퇴락頹落이 시작된 이끼 퍼런 담벼락 아래 빈 벤취 하나
가을여인을 기다리는가
검은색 반코트 여인의 어개에 갈색 가죽 가방
배부른 가방속이 궁금하다.
한 입에 쪼옥 들어가는 모짜르트 쵸콜렛이 들어있을까?
금박지를 벗긴 쌉쏘롬한 껍질속 가운데에
폭박힌 노란 알맹이 단맛같은 사랑이 가득할까.
가던 길 멈추고 고개 숙인 여인
땡볕 여름을 먹어버린 갈색 부츠가 예쁘다.
여름내 구리빛된 종아리가 희여지기 시작해
사랑이 간지럼을 먹이는 것일까?
스티브 잡스가 한 입 베어먹은 애플에
문자를 토닥여 토라진 사랑을 복원하는 것인지?
아직은
빈 벤취에 넋나간 사람으로 앉아 토라진 사람에게
긴 문자를 토닥일 때는 이른 듯 싶다.
이제
모짜르트 떠난 지 오래된 짤츠부르크에
가을이 가만가만 걸어와 여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내 여정은 가을이 깊어질 토론토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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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의 생가(生家)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는 짤츠부르크 대주교 궁정악단의 바이올린 주자였던
'레오폴드 모짜르트(1719~1787)'와 '안나 마리아 페르틀(1720~1778)' 사이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다.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 구시가지 게트라이데 거리의 한 6층 건물 4층에서.
1749년부터 1756년 사이에 '안나 마리아 페르틀'은 7 명의 아이들을 낳지만 5 명은
어렸을 때 죽고,'이그나티아'라는 딸과 막내 아들 '볼프강 아마데우스'만이 살아 남았다.
볼프강 아마데우스는 세 살 때부터 음악에 대한 흥미와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부친으로부터 처음으로 쳄발로 연주의 기초를 지도받은 것이 네 살 때의 일이다.
5 세 때 소곡(小曲)을 작곡, 1762년 7월 6 세 때 뮌헨에 가서 연주,
이어 비엔나로 가서 여황제 마리아 테레사 앞에서 연주했다.
8 세 때 교황으로부터 황금박차(拍車) 훈장을 받기도 한다.
6층 건물의 1층 출입구 |
6층 건물 가운데 4층에서 살았다고. 손잡이 줄은 초인종을 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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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가 유아 영세를 받았던 대성당 내부의 촛불 |
모짜르트의 가족은 그가 17 세이던 1773 년까지 이곳에서 살았는데,
이곳에는 모짜르트가 사용했던 그의 바이올린과 자필 악보, 가족 초상화, 서신 등이
전시되어 있다. 1층에는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침대, 피아노, 악보 등이 있으며
2층에는 모짜르트와 그의 오페라를 소개하고, 3층에는 그의 가족들,
4층에는 짤츠부르크에서 생활하던 당시의 모습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1782 년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하면서 창작활동은 더욱 활발해졌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가정생활도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원인에 대한 이야기는 도박, 아내의 낭비벽 등 구구하다.
어느 추운 겨울에 땔감이 없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부부가 껴안고
밤새 춤을 추었다는 비극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당구를 치면서도 작곡을 할 정도로 그의 머릿속엔 늘 악상이 떠오르곤 하였다고 하는데
단골로 드나들던 'cafe Tomaselli' 와 당구장이 있었던 건물이 지금도 남아 영업 중이었다.
1791년 12월 5일, 서른 여섯 살을 채우지 못하고 가난과 병마에 시달려
생을 마감한 그의 최후는 불행했다. 그의 부보(訃報)는 거의 화제에 오르지 못했으며
매장 절차도 극히 간소했다고 한다. 일기가 나빠 관을 따라간 것은 몇 사람의 친구 뿐이었고,
공무원들에 의해 공동묘지에 묻혀 이름도 확인되지 못한 채 소재 불명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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