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현대문학》 신인추천작
물의 감정 / 송승언
나는 물을 좋아하고 너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갈증으로 대립한다
물은 너의 감정이다 너의 기분에 따라 그날의 컵이 바뀌고 물의 온도가 달라진다
태도는 항상 미온적이다 너는 웅크리고 있거나 드러누워 있다 나갔다 돌아오면 방은 침수되어 있다 너는 금붕어 두어 마리를 기르고 있다 그것들은 서로 먹고, 교배하고, 낳고, 먹기를 반복한다
창은 굳게 닫혀 있다
이대로는 익사할 거라고 말한다 너는 통 듣지 않는다 벽지는 자주 바뀐다 붉었다가 푸르렀다가, 꽃잎 무늬였다가 방울 무늬가 된다 나갔다 돌아오면 방은 침수되어 있다
벽지는 젖어 있다 너처럼 물고기들은 벽의 감정을 배운다 바라보거나 바라보지 않거나 물고기는 식탁의 유리를 좋아하고 창의 유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는 아무것도 기르지 않는다 그것들은 서로 먹고, 교배하고, 낳고, 먹는다 우리는 생활로 대립한다
나는 출근하고 너는 출근하지 않는다 나는 말하고 너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하고 너는 사랑하지 않는다 너는 젖고 나는 젖지 않는다
이대로는 익사할 거라고 말한다
너는 통 듣지 않는다 창은 굳게 닫혀 있다 빛은 닫힌 창으로 들어온다 너는 물을 마시고 물을 준다 나는 물을 마시지 않고 물과 빛이 섞이는 양상을 바라본다
붉은 컵에 담은 물은 붉은 물이 되고 푸른 컵에 담은 물은 푸른 물이 된다 물고기들은 빛나는 물의 양상을 배운다
돌의 감정 / 송승언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다 애초에 배운 게 없으니 어떤 사물에도 레테르를 붙이지 않기로 오늘 식단에 대해 침묵하기로 음식의 맛이 어떠했더라도 그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므로
옴짝달싹하지 않고 싶다 더는 네가 불러도 가지 않고 싶다 차갑더라도 여기 머물고 뜨겁더라도 여기 머물기로 한다 너에게 호명되지 않는 위치에서 너를 호명하지 않기로 한다 애초에 남이니까 남 아닌 것으로 위장하지 말기로
내 속에 무슨 금속성이 있는지 알기나 하는지 내 배에 귀를 대보면 알 것이다 내 속은 단단한 진공으로 되어 있다 가장 날카로운 금속이 될 가능성은 그 진공 속에서 부들부들 떨며 울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차라리 예감에 가까운 것이지, 나의 감정은 아니다
네가 너인 까닭은 식탁에서 나와 마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의 의자에 같이 앉는다면 우리는 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메뉴판은 너의 메뉴판과 다른 것으로 한다 어떤 우연의 합일 없이 단호해지기로 너의 목소리와 표정에 감응하는 법 없기로 내가 어떤 것으로 불리는 법 없기로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없는 것으로,
다만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추락하기로 너와 수평거리를 지운 곳에서 수직으로 최대한 멀어지는 곳, 벼랑에서 떨어져 산산이 부서진 상태이기로, 더 부서질 게 없는 단단한 파편들로
너와 내가 아닌 모든 자리로 말이 되어 번개가 되어 일용할 만나가 되어
흩어지기로
제5주 / 송승언
우리가 서로의 발가락을 꼭 물고 있을 때
꼬리에 꼬리를 문 뱀이었습니다
간음한 어머니를 죽이려는
형제자매들을 죽이는 주말
우리의 대화는 발전된 사냥에 지나지 않습니다
뱀이 입에서 불을 뿜고
새들이 별을 닮은 부리로 분투하듯이
식민지에 나무들이 들어섭니다
숲을 이룹니다
해일이 쓸어갑니다
사라집니다
밤
모든 사물들이 완벽합니다
백지로 역은 저 책들의 묘지를 보세요
방은 금방이라도 유적지가 될 것 같습니다
계단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고
빛은 제단 위에 임하시어
주말엔 쌓아둔 포획물들을 바칩니다
우리, 혹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
5주째
이 달이 지나면 세계는 무너지고
우리는 죽게 됩니다
꼬리에 꼬리를 맞대고 가열하게
살육에 골몰할 때입니다
우리 역시 실패작일까요?
부모처럼 원숭이가 되거나
제물로 바쳐지는
우리는 식사 전에 이를 한참 닦습니다
더러워질 줄 알면서도
마치 그게 마지막 식사라는 양
이를 닦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휴전지가 되고,
오늘 읽은 책은 독일산인데
식탁 모서리는 어느 국경과 닿아 있습니까?
아직 해가 밝아 다행입니다
노골적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남은 힘을 다해 창을 들 때입니다
나무가 숲을 이루고,
빽빽해집니다
쓸려 가고
사라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꽁무니를 따라 책상 주위를 공전합니다
R의 죽음 / 송승언
당신이 나를 처음 만졌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천식이 있는 당신에게 골방은 수학의 세계나 다름없지요
수만 개의 지문들이 쌓여 왕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방의 사물들은 이름도 없이 돌아다니다
책장에 꽂힌 책처럼 묘비가 되기를 기다립니다
당신은 거울 앞에 서서,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합니다
당신은 이름을 팔아 부조를 하고
출신을 팔아 부조를 받고
부조를 받아 사물을 사들입니다
지문이 묻은 사물은 버린 자식이 되고, 당신은 기침을 하고
버린 자식은 당신의 모습이 되어 장례식을 찾아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이미 소비되었습니다만
R, 나는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시신은 자주 기침을 합니다
정육점이 있는 골목 / 송승언
이 길로 들어간 남자아이는
저 길에서 빈 지갑을 들고 나온다
이 길로 들어간 여자아이는
저 길에서 달란트를 들고 나온다
저 길로 들어간 엄마는 안 나온다
백수는 전도하러 과부의 몸에 들어간다
승합차에 어린아이 한 덩어리 들어간다
이 길과 저 길은 통하지 않는다
이 길에서 나오는 아빠는 입을 닦고 나온다
그의 이름을 모른다* / 송승언
살찌는 여름이었지
우리는 황금을 찾으러 떠났어
숲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랑
타인이라곤 온통 강도뿐이고
사립문에 내걸리는 빗장
그는 유죄다 목매달릴 것이다
인디언은 담배를 좋아하니까
술집은 담배 연기로 자욱하고
사형집행일에 대해 떠들었어
그는 누구지? 그는 누구지?
형장에는 아무도 없다고 하고
한쪽 테이블에선 포커가 한창이었지
타인이라곤 온통 강도뿐이고
어디서 만나든지 서슬 퍼런 도끼날
모든 계약은 악수로 파기되지
우리는 담배를 좋아하니까
숲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랑
사형집행일에 대해 떠들었어
너는 유죄다 목매달릴 것이다
형장에는 아무도 없다고 하고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몰랐지
우리는 황금을 찾으러 떠났어
사립문에 내걸리는 빗장
살찌는 여름이었지
* 클랏사신Klatsassin : 인디언 칠코틴 부족장의 이름. ‘우리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송승언 시인
1986년 경남 거제 출생. 중앙대 문창과 재학 중.
[심사평]
희귀한 개성과 만나다
우리는 심사숙고, 각자 골라 온 작품을 들고 《현대문학》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중에서 다시 일곱 편의 작품을 고르고 나눠 읽고 다시 읽었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수준이 높았다. 아마도 그동안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들의 활약과 면면이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또 한편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강력한 선배 시인들의 영향력이었다. 다수의 작품에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심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우려가 기우였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심사자의 개인적인 취향과 배치되더라도 그 자체로 독특한 개성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침묵과 대화를 교차하며 한 편 한 편 신중하게 독해를 시작했다.
먼저 「입술을 깨무는 힘」외 9편을 응모한 오병량의 작품에서는 「내일, 내 일」을 비롯한 두세 편의 시가 시선을 확 끌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서 아직 습작 초기의 감상적이고 전형적인 서정시의 흔적이 강해서 자기 색깔을 분명하게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안미린의 「슬픈 척」외 9편의 작품은 낯설고 이상한 감각을 향해 꿈틀거리는 시편들로 가득해서 신비로웠다. 그러나 아직은 많이 모호하였고 의미형성이나 객관화가 덜 된 상태의 개인적인 발화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목하여 본 것은 「금수회의록」외 9편을 응모한 공현진의 작품과 「여우」외 9편을 응모한 김해준의 작품이었다. 먼저 공현진의 「꿈의 부족」 같은 시는 유려하고 부드러운 감각과 감수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다. 2005년을 전후로 등장한 젊은 시인들이 없었다면 참신했을 것이다. 기시감이 문제였다. 분명 화려한 수사와 이미지의 향연은 심사자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작법의 기시감이 강했고, 특히 거듭된 재독해를 감당해내지 못했다. 수사를 지탱하는 것이 별로 아프지 않은 상처를 과장하는 감상성이어서 더욱 아쉬웠다. 이런 뛰어난 수사적 능력을 어떻게 땅에 안착시킬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낯선 단어에 대한 무조건적인 탐닉이 줄어들고, 자신의 손금과 세계의 균열을 과장 없이 들여다보게 될 것이며, 읽고 난 뒤에도 묵직함이 남는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또, 김지현의 작품도 주목하여 읽었다. 「자매」외 9편을 응모한 백은선의 경우, 가장 전통적 시적 주체인 ‘환자’의 감수성에서 시를 격발한다. 병실 침대에서 피륙을 조각내면서 풀어내는 나방의 이미지는 무척 예민하고 날카로워 강한 심리적 공명을 일으켰다. 또한 “검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자신을 자각하며 발 밑 유리조각을 짓이기는 장면이나 “나는 종종 내가 입을 여는 순간/ 검은 실 뭉치가 툭 떨어져 내릴 거라고 생각한다”와 같은 구절은 백은선의 내면화 능력과 이미지 직조능력이 상당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참고 눌러’ 고통을 형상화하는 비교적 익숙한 방식의 화법과 역시 크게 낯설지 않은 여타 이미지의 연쇄가 우리를 망설이게 했고 병적 에너지가 제거된 후반부 다섯 편은 내구성이 낮아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결국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임현과 송승언, 두 사람이었다. 「누나의 어항」외 9편을 응모한 임현은 확고한 자기 스타일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특히 임현은 이미 세상을 다 알아버린, 비딱하고 사악한 ‘아이’를 페르소나로 삼아 인간과 세계를 조롱하고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일상 에피소드에 기이한 활력을 부여하는 개성을 선보이고 있었다. 서사와 세목이 선명하고 마감도 힘이 있어서 가장 오래 내려놓지 못한 작품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제는 거의 유행이 되어버린 사춘기 소년소녀 화자들의 계보를 따르고 있다는 점까지는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미 2009년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선배 시인의 스타일에 너무 많이 침윤되었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대목이었다. “주목 받는 게 좋아서 염소처럼 울었다/ 나만 다르고 싶었으니까”라든지 “엄마가 나보다 먼저 죽겠지/ 기도는 속으로만 한다”와 같은 구절이 특히 그런 느낌을 주었다. 최근 한국시의 동향에 눈이 밝고, 전문적인 수련의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선배를 극복한 것은 아니었고 선배와 ‘다른 무언가’도 아직은 부족했다. 결국 임현이 가진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쉽게 이 작품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정육점이 있는 골목」외 10편을 보내온 송승언을 당선자로 선보인다. 송승언의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이상했다. 모호하고 관념적이었다. 게다가 “추깃물” “만나”와 같은 어휘의 사용 때문에 고전적인 느낌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모호해서 그만 읽고 싶은 피곤한 작품이 있고 모호해서 끌려드는 매력적인 작품이 있다. 앞의 것이 형상화 실패의 결과라면 뒤의 것은 의미와 세계의 무의식적 확장이다. 앞의 것이 잘못 써서 그런 것이라면 뒤의 것은 지금까지의 자기를 뛰어넘어 잘 써서 그런 것이다. 우리는 송승언의 작품을 읽으며 ‘이게 뭘까? 뭐지, 이 이상한 느낌은?’하고 끌려들어 갔다. t성일수록 더 넓어지는 이상한 세계였다. 그러면서도 단단했다. 세상과 차단되어 오래 골방에 감금당한 사내의 의식분열과 중얼거림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제가 쓰는 말의 뜻과 방향을 어느 정도 제어하여 자폐적이면서도 낯선 세계로 자신을 개방하는 독특한 힘이 느껴지니 감탄할 만했다.
당선작인 「물의 감정」은 금붕어 두 마리만 있는 고립된 방에서 대립하는 두 자아의 응수로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내고 잇는 작품이다. 관념의 대립 끝에 스스로 익사해버릴 것만 같은 절망적인 긴장감이 지속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붉은 컵에 담은 물은 붉은 물이 되고 푸른 컵에 담은 물은 푸른 물이 된다 물고기들은 빛나는 물의 양상을 배운다”고 마감할 때, 돌연하게 솟아오르는 이 설명할 수 없는 ‘정서의 정체’는 무엇일까? 맹물처럼 싱거운 것 같은데 미묘한 감칠맛이 느껴진다. 이게 뭐냐는 말이다. 이런 점이 좋다는 것이다.
「돌의 감정」은 단호한 감정관찰을 밀어붙여 힘이 더 붙고, 「제5주」에서 보여주는 묵시론적 비전은 종교적인 염결성을 연상케 한다. 「R의 죽음」에서 “당신은 이름을 팔아 부조를 하고/ 출신을 팔아 부조를 받고/ 부조를 받아 사물을 사들입니다”와 같이 삶을 압축하여 간파하는 솜씨도 좋고 「그의 이름을 모른다」에서 “살찌는 여름이었지”와 같은 문장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울림도 좋았다. 「정육점이 있는 골목」처럼 짧고 난해한 시도 좋다. 역시 ‘이상하게 좋다’. 어떤 작품이든 선배와 기원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기왕의 한국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희귀한 정서라는 면에서 믿음이 갔다. 우리는 바로 이렇게 설명은 어렵지만, 낯설고, 이상한 정서에 힘을 실어주기로 하였다. 앞으로가 더욱 궁금해지는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지켜보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최종 당선자는 한 명이고, 탈락자는 여섯 명이다. 심사자의 눈이 어두워 놓친 탈락자는 더욱 많을 것이다. 탈락자 중에는 분명 훗날 어느 자리에서 ‘시인 대 시인’으로 다시 만나, “당신은 나를 평가할 자격이 없었다!”라고 탁자를 ‘쾅’ 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땐 아프고 기쁘게 우리의 편협을 인정하고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넘치게 술을 따라주고 싶다. 외롭고 서러운 습작기의 고통을 조금만 더 이어나가시기를. 당선자와는 곧 만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당신들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만날 것이다. *
심사 : 신해욱, 박상수
《현대문학》201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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