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佛經

재미로 읽는 道 이야기/

영관님 詩 2012. 1. 29. 18:35
 

 
재미로 읽는 道 이야기.
 
1
 
이야기 1.

@ 道의 서두에서

道라...
道는 길이다.  이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다
또 道란 知天命이다...
다시 말해 道란 하늘이 신이 왜 나를 이 세상 지구에 보냈는가를 아는 것이다.
이 도 공부는 동자승 처럼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하는것은 아닌것 같고
나이 50인 지천명 가까이에서 하는것이 道 공부다.

이세상 자기 나름대로 살아보고 후회감과 이것은 아닌데 하고 느낄때 하는것이다.
속담처럼 또 선현들의 말씀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에 틀림이 없다
공자님은 50을 지천명이라 했다..
이제 하늘이 나를 이세상 지구에 보낸 뜻을 아는 나이 라는 것이다
바로 이 지천명이 道를 아는 것이다. 다시말해 天命이 道인 것이다.
 
내 나이 48세
50을 앞둔 적절한 시기에 道에 관심을 가지고 지천명답게 살아야 겠다고 생각 한다
 
 
道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1. 3년전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 하신 말씀이 있었다
   참 사람 사는게 아무것도 아니구나...  결국 일장춘몽이라는 것이다
2. 1년 반 쯔음 인연방에서 파란이 일고 나의 욕을 그렇게 한 무명인의 글을 보고
   참으로 내가 잘못 살았구나... 하면서
   인연방 떠나 마음공부 부터 해야겠다 라고 한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그동안 과정
사이버에서 수 많은 도 공부하는 카페들을 찾아 다녔다 
(주로 불교카페 부터 증산도 원불교 까지)
또 실제로 원불교에 입교해서 "道潤"이라는 법명도 받았고
지금도 가끔 법회에 참석한다
또 "오쇼라즈니쉬" 라는 선각자 글에 심취되어 그동안 " 신은 자연이다 "
인간이 만들지 않은 신이 만든 자연이 바로 성전이다 라는 글에 심취하여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다. 그런데 그것도 정답이 아니다...
 
그러던 중에
이제 나름의 길(道)을 만났다
결국 道는 결국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만 안내자는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 안내자를 드디어 만났다.(차차 밝히겠지만)
 
道란 말 그대로 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허무하게 죽지말고 아웅다웅 물질에만 치우치지 말고
바로 영혼을 성장 하는 길이다.
 
난 요즘에 늘 가슴에 매일 품는 글이 있다.
죽기 바로직전에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할 질문 세가지
 
1. 이 세상에 와서 내가 해야할 책임을 다 하였는가?
2. 나는 이세상에서 남에게 해를 주기 보다는 얼마나 유익한 존재였는가? 
3. 이 지구라는 세상에서 다음 세상에 태어나기전까지(죽기 전까지) 나의 영혼은 얼마 성장했는가?
 
그리고 이 道공부라는 것은
"영혼은 결코 죽지 않는다.. 몸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하다
이 생은 하나의 공부과정이다 "라는데서 부터 시작한다.
이 생 살고 그냥 죽어 無로 된다면 道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스님들이야 바로 해탈(졸업: 윤회에서 벗어남)을 꿈꾸겠지만
우리들이야 해탈 보다는 죽은 후 다음 세상에 가서  공부 더 하더라도
이 지구 여행에서 아니 이 지구라는 학교에서 그냥 저냥 놀다가 후퇴 하기 보다는
이왕 왔으니 마음공부 더하여 영혼의 성장을 꿈꾸는게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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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년간 道를 찾아 다녔지만 전 아직 道를 모릅니다. 
상식은 있으나
道는 경험 ,,,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했습니다..
또 깨달은 사람은 이런 글 절대 안올린다 했습니다
이제 저는 道라는 여정을 인연방 회원 여러분과 같이 하고 싶습니다.
道를 찾아가는 과정 ,결과 보다는 과정이 더 아름다울지도 모릅니다...
선각자는 道는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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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란 본연 그대로 일뿐이다

文章이 做到極處하면
無有他奇요 只是恰好하며
人品이 做到極處하면
無有他異요 只是本然이니라
 
문장을 공부하여 극진한 경지에 다다르면
별달리 기이한 것이 없고 알맞을 뿐이다.
인격을 연마하여 극진한 경지에 다다르면
별달리 뛰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본연 그대로일 뿐이다.

- 채근담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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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 道이야기를 연재 하면서
지식이 아닌 초보자인 제 경험을 또 선각자의 경험담을 퍼와서 적고자 합니다
이 글은 종교적 차원을 떠나. 지천명이라는 차원에서 편안히 보아 주시고
공감 하시거나 토론할 내용이 있으면 꼬리글로 서로 나누길 원합니다...
함께우리...나이에 맞는 知 천명(道) . 우리가 남은 인생길인  그 방향  길(道)을 알 수있기를 ..  
그리고 그럴 통해 우리 함께 영혼이 성장 하기를 바랍니다
 
 
2
@ 깨어나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인생을 보고 "일장춘몽"이라고 한다
한잠 자면서 꿈꾸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또 왜사는지 조차도 모르고
그냥 무의식적으로 일하고 먹고 자고 행동한다
의식이 없다보니 꿈꾸는 기분으로 몽유병 환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일장춘몽"인 것이다

이 삶이 일장춘몽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道공부의 출발인 것이다
 
道 공부라는 것은
꿈같은 무의식적인 생활에서 깨어있는 의식적인 생활로 바꾸는데서 시작한다
 
그 방법은 우선 자신을 돌아 보는데 있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던 자기의 몸동작, 말(말투, 억양,음색,강도),
걸음걸이 , 밥 먹는 투 ,등등 몸의 움직임을 의식을 가지고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다.
꾸준히 하다보면 서서히 "의식의 눈"이 떠지게 된다.
 
이 의식의 눈을 뜨고 살아야 우리는 일장춘몽이 아닌 제대로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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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道 공부의 목적
 
우리는 지구라는 학교에 온 학생이다.
이 지구에서 학생으로서 해야할 일은 마음공부를 통해 의식(영혼)수준을 높히는 일이다.
 
# 의식 수준을 높히는 방법
 
우선
자신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마음의 눈(심안)으로 자기의 생각과 느낌과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관찰 하는 것이다
그러하다 보면 자기 의식의 파장(수준)이 느껴진다.
이것을 스스로 알게 되어야 보다 높은 다음 단계로 진급하게 된다
 
또한 자신을 들여다 봄으로서
몸과 마음이 따로놀던 지금까지의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삶을
마음의 눈(의식)을  뜸으로서 몸과 마음이  의식의 장(場)에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 의식의 단계
 
1. 슬픔, 불안,욕망, 분노, 교만,등의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의식 단계
2. 신뢰, 낙관과 긍정적인 의식의 단계
3. 논리 ,합리, 이성의 차원
4. 이해, 관용, 용서의 차원
5. 사랑, 기쁨, 평화의 차원
6. 최종적으로 순수의식과 깨달음의 차원
 
#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 보면서 살면
  점차 의식의 수준이 높아져 궁극에는 인간의 최고 경지인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참조:유종열- 늘 봄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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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마음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을 자각하는 능력이다.
 
깨어있는 마음을 믿는 것은 안전하며 그것은 조금도 추상적이지 않다.
한잔의 물을 마시면서 자신이 물을 마시고 있음을 알 때, 거기 깨어있는 마음이 있다.
 
앉아 있고, 걷고, 서 있고, 호흡하면서
자신이 앉아 있고, 걷고 서 있고, 호흡한다는 것을 자각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 깨어있는 마음의 씨앗을 느낀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의 깨어 있는 마음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깨어 있는 마음은 우리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그것은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살아있는 붓다이다.
깨어있는 마음은 통찰력과 자각, 자비와 사랑을 낳는다.
 
 
- 출처 : 틱낫한, 마음을 멈추고 다만 바라보라 중에서
 
 
3
 
우리는 살아오면서
과거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과 경험에 속박되어 삽니다.
그 가운데 좋은 기억도 있지만 나쁜 기억들도 있습니다
 
"예전에 내가 그렇게하지 않고 좀더 잘 했더라면
지금 좀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 또 후회감은
저 뿐만 아니라도 누구라도 가져보았으리라 생각 합니다.
 
현재 우리가 괴로움, 슬픔, 불안등을 느끼며 번뇌하는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후회감에서 시작 된다고 할 수있습니다.
그런데 이 후회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의식은 과거에 구속되어 나은 수준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道공부 시작에 있어서는
후회감, 이 부정적 의식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부정적 어두운 의식을 이제 긍정적 밝은 의식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지나온 삶의 돌아봄을 통해
또  "이 인생은 공부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경험했던 좋은일도 나쁜일도 다 내가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며
나의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
라고 인정을 하고.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어루만져  치유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새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 자신의 상처에서 벗어나 나자신을 더욱 더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처럼 道 공부의 첫 단계는
"먼저 자신을 치유하고 자신을 사랑하자" 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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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십 년만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길로 걸어가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모든 사람의 길은
십 년, 아니 이십 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 한들,
지금의 그 길로 다시 갈 수 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이 장소는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우리가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필연의 장소가 아닐까?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누구든 어디에 서 있든 간에 후회하지 말자.
 
- 마흔살의 자화상/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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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먹고 살려고 하다보니 관심과 에너지가 온통 밖으로 쏠려
자기안을 자기의 안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자기의 안을 들여다 볼 때가 되었다
자기의 안을 들여다 보고 깨달을 때가 되었다.
우선 갈등과 괴로움의 원인은 과거의 기억에 매여
자기가 자기를 한계짓고 얽어매고 심판하고 때리고 얻어터지는 데서 온다
 
명상을 통해 스스로 자기 안을 들여다 보면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 자기임을 깨닫게 된다.
자기가 자기를 때리고 자기가 자기를 나누고 자르고 자기가 자기를 가두고
 속박하고 자기가 자기를 업신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억울하고 그래서 답답하고 그래서 한이 되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아 이런 것을 깨닫게 되면 그런짓을 그만 두게된다.
그 모든 자해적이고 가학적인 짓을 그만두면
자기와의 싸움이 그치고 속박(자승자박)에서 벗어나 내면의 자유와 평화가 시작된다

- 유종열: 늘 봄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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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일체는 마음이 만듭니다.
이 말씀은 위대하고 신비로운 법문입니다.
과거의 잘못과 어떤 실수도 손해와 피해, 아픔과 고통
그리고 죄마저도 내가 만들고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들 모두가 내가 바라는 아름답고 멋진 경험이며 소중한 체험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나는 세상의 피해자나 희생자가 아니고 당당한 주인이요 조물주입니다.
지금까지 인정받지 못하고 대접받지 못하였다고 생각하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손해보고 피해를 받았다고 하며 억울해 하고 속상해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경험하기 위하여 내가 선택한 것이며 내가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길 마음먹고 그렇게 생각한 것을 책임지고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어떤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도움을 얻고 이익이 되었다면 그가 그러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피해를 주었다고 죄의식도 갖지 않겠습니다.
만일 피해를 입었다면 그들 자신이 그런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 준다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착각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상처주고 괴롭힌다고 생각한다면 이것도 큰 착각입니다.
아무도 나를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자신을 부정하고 손해를 입히며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자업자득입니다.
그 누구도 나를 도우거나 피해를 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나를 사랑하거나 괴롭힐 수 없습니다.
오직 나 한사람이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스스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운명을 한 순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를 자각합시다. 이것이 일체유심조 되는 이치의 자명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자신과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내가 결정합니다.
자신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 하는 것도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지닌 천부적인 재능입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이 어떤 마음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능력입니다.
나에게 최고의 가치이며 어마어마한 잠재력입니다.
 
먼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인정합시다.
자신의 존재를 귀하게 느끼며 그 소중함에 가슴 벅차합시다. 나의 삶을 한없이 축복하고 축하해줍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합시다.
내가 참 좋다고 말하며 자신을 경이롭게 바라봅시다. 감사와 사랑으로 마음을 충만하게 합시다.
이렇게 가장 좋은 마음을 먹도록 합시다. 지금 내가 만나는 어떤 인연도 나에게는 최고의 인연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일터도 제일 좋은 것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무엇이든지 나에게 최고 최선이라고 생각하면
나의 삶에 놀라운 축복이 찾아 올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의 능력을 너무도 모르고 살았으며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구걸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더 이상 남이 주는 것만 받아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나와 세상을 최고로 만족하고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면 스스로 나의 마음을 충족시킬 수가 있습니다.
누가 나를 비난하고 욕하여도 무슨 일이 잘못되거나
손해를 보고 피해를 입어도 인정받고 대접받지 못한다 하여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나는 전혀 상처받지 않습니다. 고통 받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들에게 사랑을 보낼 수 있습니다. 현실은 나에게 최고의 선물입니다.
나는 진정 행복자입니다. 이제 깊은 평안을 누립니다.
언제나 나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신비로운 법문 中에서
4
道공부를 마음공부라고도 하는데
이 마음공부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라 생각 됩니다.

#마음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의 몸에 깃들여서 지식·감정·의지 등의 정신 활동을 하는 것,
또는 그 바탕이 되는 것"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증산도에서는
마음과 영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삶이란 영혼과 육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로서
양자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 마음이며,
죽음이란 영혼과 육신이 분리됨으로써
양자를 연결하는 마음의 작용이 그치면서
죽을 당시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영혼의 밝기가 고정되는 것을 일컷는 것이니라.
 
삶의 과정에서
영혼과 육신과 마음은 같이 존재하게되는데
이 삼자중에서 인간이 구체적으로 지각하는 것은 주로 마음뿐이며
영혼과 육신은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의미에서의 분별심을 지니고 있지 않은 까닭에
그 상태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니라
 
다만 영혼은
마음이 일으키는 싫고 좋음을 구분하는 등의 분별력의 범주를 초월하여
보다 정화되고 순수한 통찰력을 동반하는 것이니,
그것을 순수정신이라거나 순수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니라.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감각이나 느낌,생각이나 의욕 등의
육체적 삶에 대한 차별적 의식을 정신과 동일시하고 있으나
그러한 심정적 경험은 정신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물질계에 속한 것이니라.
순수의식이나 정신은 영혼에 속한 것으로서 마음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라,

순수의식이나 순수정신 역시 일체를 투철히 인지하고 있으나
모든 상대적 차원을 벗어나서
사물의 본질을있는 그대로 관하며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이니
그것이야말로 진실된 자기眞我요 참된 자아自娥이니라.
 
-증산도-
 
이를 요약 해보면
마음이란 영혼과 육신을 연결하는 통로이고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는데 유일하게 지각하는 것은 영혼도 육신도 아닌 마음이며
육체와 생각은 물질계에 속하고 순수의식이나 정신은 영혼계에 속한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

# 그럼 영혼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靈,넋,魄,魂,神,肉 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靈(영),
넋, 魂(혼), 神(신), 魄(백), 肉(육)은 서로 다릅니다.
이 여섯이 합한 것이 인간의 육체(肉體, 六體)입니다.
靈(영)은 영원한 것이고, 본래의 나입니다.
眞我(진아)이며, 참나이고, 진정한 주인이지요.
靈은 가슴 심장(心臟)에 들어 있으며, 마음(心)의 주체입니다.
 
魂(혼)은
간에 들어 있으며 생명을 유지 시키지요,
그래서 魂이 나가면 죽습니다.
그래서 " 너 혼날래 " 하는 얘기는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혼불 나간다'고 알고 있죠. 혼이 나가면 3일안에 죽습니다.
 
魄(백)은
폐에 들어 있으며 죽으면 뼈로가서 후손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명당에 묘를 쓰면 후손이 잘 되는 것입니다.
 
넋(얼)은
머리에 들어 있으며, 사고(思考),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넋 나간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 나갔다" 라는 뜻입니다.
넋이 나가면 사리판단을 못하여 더운지 추운지 등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사람을 성장하게 합니다. 넋이 나가도 죽지는 않습니다.
 
神(신)
은 죽은 후에 그 사람의 모습(죽을 때)을 그대로 유지하게 됩니다.
神속에 靈이 기거하는 것입니다.
神은 靈의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靈은 神이 없으면 약 6개월 정도 밖에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神이 소멸되면 6개월 안에 다시 집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을 윤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神은 사람이 죽은 후에 일반적으로 평균 약 1000년 정도 살지요.
물론 각자의 道級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神이 소멸되면 靈이 나와서 자기의 죄업에 따라서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
肉은
살과 근육을 의미 합니다.
즉 물질적인 것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 오쇼 라즈니쉬
육체는 잠깐 머물다 가는 여인숙일 뿐이다.
지금껏 우리는 많은 육체 속에서 살아왔다.
그대는 계속 이 육체에서 저 육체로, 이 마음에서 저 마음으로,
옮겨 다니고 있는 의식, 생명, 여행자, 순례자이다.
 
.......................
#
도 공부라는 것은 "참나" 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데
이 "참나"는 무엇이고 "거짓나"는 무엇인가.
 
마음이 내부를 향하면 "참나" 이고  마음이 외부를 향하면 "에고"입니다.

眞我 참나(마음이 내부에 있을 때 느끼는: 정신)
: 이 세상에 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순수의식이라 할 수 있고 영원한 것이며

假我 거짓나(마음이 외부에 있을 때 느끼는: 생각)
: 이 세상 경험을 통해 지금 내가 나라고 느끼는 "에고"이며 얼마후 사라지는 것입니다.
 
참나를 깨달은 사람은
정신계인 순수의식(도)이 마음에 충만하니 평화롭고  
의식적으로 육체를 운용하기에 조화로운 생활을 하게 되고
 
깨닫지 못한 사람은
물질계인 생각(에고)이 마음을 차지하니 불안하고 
무의식적으로 육체를 사용하기에 부조화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

영혼을 태양이라고 보고 육신을 지구라고 볼때
마음은 그 사이 공간(하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이 흐리면 태양이 보이지 않는 것 처럼 
마음이 번뇌로 흐리면 영혼(참나)이 보이지 않고
마음이 고요하고 맑으면 참나가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비워라 그리고 정신을 차려라" 
"마음을 청소하고 비워 청정하게 하라, 그리고 깨어 있으라"라고 선각자 들은 그렇게 외쳤나 봅니다.
 
 
5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 없이 좋은말, 글들을 보며 공감도 하고 그럴통해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 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글들을 수백번 읽는다 해도 착한 사람이 되지를 못한다.
또 사랑을 그렇게 논하고 행해 보려고 해도 진정한 사랑은 내 것이 되지를 못한다.
그 이유는 그 근본을 모른채 수박 겉핱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하기에 그 근본을 알기 위해서 마음공부 道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천지만엽(天地萬葉)으로 흐트러지는 마음
이 생각 저 생각에 끌리고 이리갈까? 저리갈까? 할까? 말까? 헷갈리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오락을 찾아 쾌락을 찾아 서성이다가 쳐박히고 또 쳐박히면서도
대책없이 속절없이 임시미봉책에만 매달리고 사는 것이 그대임을 아는가? 

한 생각을 쫓아 밖으로 추구하는 한
천하의 부귀공명을 얻는다 하여도 그대의 허전한 가슴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한마디로 합일(견성)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스스로 알았다면
그대는 이제부터 돌아봄의 생활 돌아봄의 수행을 시작할 수 있다.
몸돌아봄과 마음 돌아봄 수행을 통해
그대는 밖으로 나가던 에너지의 방향을 비로소 안으로 돌려놓게 된다.
그렇게 되어야 본격적으로 안으로 돌아봄이 가능해진다.
 
방향을 안으로 틀었다 뿐이지 아직도 외부로 나가는 힘이 강하므로
그 이상의 힘을 기울여야 밀리지 않고
떠내려가지 않고 파고들어갈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습관적 충동적 무의식적 반사적으로 달려나가는 힘을
그대는 이기면서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멍청하게 고요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는
여지없이 밀리고 떠내려가 곤두박질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대는 한 생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각오를 단단히 하여야 한다.
너무나 힘이 들기에 쓸데없이 힘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고는 생각도 말도 행동도 하지 않게 된다.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쉬지않고 파고들어간다.
그리하여 밖으로 나가는 힘이 나오는 원천에 도달하여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천지만엽으로 흐트러지는 마음을 수습하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렇게 되어야 자기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 유종열:나는 봄이다 고로 존재한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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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我(깨닫기 전)는 假我이다 그리고 동물성이고 이기심이다
자기의 생각으로 삶을 산다
大我(깨달은 후)는 眞我이다 그리고 신성이고 사랑이다
본연의 순수의식으로 삶을 산다
 
도를 닦아 깨닫는 것은 결국 대아를 깨닫는 것이다
소아에서 대아로 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이 道 공부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그럼 깨달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
깨달음은 참나를 보는 것이다
생각으로 사는 거짓나에서 벗어나 그안에 가려진 참나를 깨닫는 것이다
생각은 동물의 마음이다
동물은 동물의 욕망이 있다. 생각은 어둠 속에서 음모를 도모한다
그러나 생각은 들키고 밝혀지면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게된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즉시 알아차리는 일이 동물을 다스리는 전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생각을 돌아봄, 바라봄, 늘봄이다.
이렇게 하면
생각(거짓나, 이기심, 동물성)이 주도하는 행위자의 삶은
행위자를 바라보는 주시자의 삶으로 바뀌게 된다. 
꾸준히 자신을 돌아봄으로 살면서
"보는 자기"가 " 보이는 자기"를 향해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다 보면
어느날 문득 자기의 본질(참나= 순수의식)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을 일러 "견성見性(깨달음)"이라하고
줄기차게 파고 들던 자가 보이는 자와 합쳐져 문득 사라지기에 이를 "합일"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되면
몸과 마음(거짓나)이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어
참나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주인이되고
나아가서 드디어 내면의 하늘이 열려
자기가 그 무한한 우주의 주인이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자기를 사랑하게 되고 타인을 사랑하게되고 우주를 사랑하게 된다 .

/ 유종열: 나는 봄이다 고로 존재한다 중에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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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름으로 제가 道공부를 해가면서
제 느낌을 이론적 요약을 통해 道이야기를 올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금방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 이유는 제가 아직 견성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동안 먼저 깨달은 여러 선각자 분들의 글들을 탐독했으나
가장 쉽게 또 가장 체계적으로 제게 다가온 분(책으로만 대했지만)은 
현시대에 한국에 지금 살고있는 圓我 유종열이라는 분입니다.
 
그분이 쓰신 책 두권 "늘 봄의 생활" " 나는 봄이다 고로 존재한다" 을 추천 드립니다.
(교보문고에 있습니다)
이 책에는 道 공부에 대한 자세한 이론이 잘 정립되어 있습니다.
 
결국 道는 스스로 끝없는 수행을 통해 깨달아야하는 것인가 봅니다.
 
 
6
 
도 공부를 마치며 . .
 
 
道라는 것이 허상일지도
깨달음이란 것이  환상일지도 모른다.
 
요즈음 느낌은
먼저 읽은 이랫 글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 다음글로 대신하며 도 공부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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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에게 있어 깨닫고자 하는 것이야 당연한 서원(誓願)이라 하겠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안 될 일. 중도의 가르침을 다시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빨리 깨닫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앞서면
도리어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한 깨달음의 향기를 놓치고 만다.

깨달음을 미래의 일로 설정해 두고 기다려서는 안된다.
‘빨리 깨쳐야겠다’거나 ‘언젠가 깨닫겠지’
‘왜 이렇게 안 깨달아지지’ 하는 마음은 다 분별이고 망상일 뿐.

깨달음은 과거나 미래의 일이 아닌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문제이다.

엄격히 말해 깨달은 자는 없고 깨어있는 행위만 있을 뿐이란 말이 있다.
깨닫게 되면 내가 깨달았다거나 하는 아상이 몽땅 사라지고
오직 깨달음의 행위만이 순간 순간 있을 뿐이란 말이다.

과거도 미래도 없고, 시간의 개념 자체가 그냥 텅 비어 있으며,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나’라는 관념 또한 비어 있다.
오직 순간 순간의 깨어있는 행위만이 있을 뿐.

그렇다면 우리들이 깨달음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한가지.

언젠가 깨닫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오직 지금 이 순간을 깨어있는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다시말해 깨닫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행위를 얼마나 하고 있는가를
 늘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깨달음은 지금 이 순간의 문제이다.
아니 엄밀히 말해 깨달음이란 환상에 불과하며, 깨달은 자는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행위만 있을 뿐.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의 깨어있는 행위는 누가 하는가.
깨달은 각자(覺者)만이 할 수 있는가?
다 이룬 부처의 행위만 깨어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깨어있는 행위’는 그 행위의 주체 문제가 아니라 행위 그 자체의 문제이다.

부처님은 매 순간 순간이 깨어있는 행위의 연장이지만,
우리들의 행위는 깨어있는 행위와 그렇지 못한 어리석은 행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면 수행자는 무엇인가.
매 순간 순간이 깨어있는 행위가 될 수 있기 위해 정진하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행위를 깨어있는 행위로 바꾸어 가는 사람이다.

언젠가 부처가 되기 위해, 깨닫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행위가 깨어있는 행위가 되기 위해 애쓰고
정진해야 하는 것이 모든 수행자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언젠가 미래에 있을 깨달음이 목적이 된다면
지금 이 순간은 깨달음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깨달음이 목적이 된다면 그것은 전도된 생각이다.

시간이란 환상에 불과하다.
과거로부터 시간이 흘러 지금에까지 이르렀으며
 또 그 시간이 미래로 흘러간다는 것은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착각이고 환상이다.
시간이 공하다면 깨달음을 어느 순간에 찾을 것인가.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의 깨어있는 행위는
그대로 진리 그 자체인 것이며, 불성의 싹틈이다.

지금 이 순간의 행위를 깨어있는 행위로 바꾸는 것.
그것이 수행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온전한 알아차림으로
100%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행위를 할 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사는 것이 된다.

깨어있는 행위를 하는 순간 우린 이미 깨달은 것이고,
우린 그 순간 부처인 것이며, 진리와 하나되고,
온 우주 법계와 하나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또다른 순간 이를테면 깨달음의 순간이라거나,
부처되는 순간 그런 것을 바라는 마음을 놓아야 한다.

깨어있는 행위를 하는 순간
방하착이 되고,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이 되고,
지금 이 순간 부처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
깨닫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깨닫지 못한 것에 조급해 하지 말 것이며,
다만 지금 이 순간 얼마만큼 ‘깨어있는 행위’를 하고 있는가를 비추어 보아야 한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
깨어있는 행위’를 하지 못함을 두려워해야 한다.

부처가 되기 위해 애쓰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부처의 행위를 하면 그 행위가 그대로 부처인 것.

부처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조급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 순간 그대로 부처가 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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