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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故 한주호 준위님의 명복을 빕니다.

영관님 詩 2010. 4. 9. 21:14

백인의 학산전사 호동대장 哀兵必勝~!! 
 희망아침 HQ편지 불나비와 함께

 
 
 
 
 
 
 
 
 
봄날은 간다 - 장사익

 

   

“신나게 원 없이 소리 칠란다”

장사익. 우리시대 최고의 가객(歌客),

광천 삼봉이 고향인 이 시대의 진정한 소리꾼, 음악은 어디에도 얽매지 않고 자유스러워야 한다고 수줍은 듯

단호히 말하는 사람, 시를 수백번이고 읊조려 내 시로 만들고야 만다는 사람,

마흔 다섯 나이에 평생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시작해 성공한 사람,

노래는 팔자고 운명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소리꾼 장사익.

그의 이름은 이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북악과 인왕을 바라보며 고단했고 못마땅했던 지난 세월을 필름으로 돌리는

희끗한 촌사람, 쉰여덟 해 그의 생애에는 우리네 고된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구슬프게 울리던 ‘찔레꽃’이 어느새 장중하고 무겁게 내리치는 듯 더불어 사는 이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소박한 소망을 안고 무게를 풀어주는 장사익의 노래는

‘사람이 그리워서’ 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하고 있다. 마흔다섯 나이에 느지막이 시작됐지만 그의 변신은 결코 늦깍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풍김이 있다. 수더분한 충청도 사투리에 변함없는

겸손이 더욱 정겨운 사람이다. 현실에 집착하는 끈을 놓으니 꿈이 잡히더라는

장사익의 말은 척박한 현실에서 꿈을 이룬 그의 삶이며 신명이다. 이제 데뷔한지 12년, 50년은 돼 보인다.

한번 마음먹고 3년만 죽도록 해보자. 장사익은 1993년부터 김덕수패를

따라다니며 태평소를 불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웅변을 했다고 한다.

워낙 음치여서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된 일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에 올라가 마음껏

목청을 높였다. 그때 ‘소리’가 터졌다고 한다. 오서산의 기를 받아서 일까.

그의 내공이 터진 것은 1993년의 일이다. 전주대사습놀이에서 공주농악

태평소로 장원을 차지하면서 드디어 ‘등극’을 한 것이다. 같은 해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는 ‘결성농요’로 ‘대통령상’을 탔다.

 

그에게 1993년은 국악연주자로서의 자리를 확인해 주었고 ‘시’에 눈을 뜨게 해준

의미 있는 해로 기억된다. 1994년에는 자신을 확인하는 계기를 갖는다.

또다시 전주대사습놀이에서 금산농악 태평소로 장원을 차지하면서

‘장사익’을 재확인한다. 결국 태평소가 장사익의 노래 길을 열어 준 셈이 됐다.

그해 11월에는 서울 신촌에서 ‘소리꾼’으로서 첫 공연을 갖게 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흥얼거림의 미학은 계속되고 있다. 1994년 장사익 소리판 ‘하늘가는 길’로 ‘가수’라는 걸 데뷔했다.

기침(1998), 허허바다(2000), 꿈꾸는 세상(2003) 등의 음반을 냈고,

1996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장사익 소리판 하늘가는 길’ 공연이후

60여 차례의 공연이 국내외에서 있었다. 1995년 ‘뜬쇠사물놀이’로 KBS국악대상,

1996년 ‘뿌리패사물놀이’로 연거푸 KBS국악대상을 수상했다.

 

장사익과 국악은 ‘인연’이 깊다고 한다. 그는 1949년 홍성군 광천읍

광천리 삼봉마을에서 태어났다. 이미 그에겐 농악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광천장날 장터에서 울려 퍼지던 흥거움의 가락소리는 성장과정에서도 그에게

큰 영향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부친은 소문난 장구잽이였다고 한다.

 

부친의 가락을 듣고 자라던 장사익에게 우리가 ‘쇄납’이라고 부르는

‘태평소’의 소리는 그의 귀를 뻥 뚫리게 하고도 남았다. 그래서 시작된

‘태평소’와의 인연이 오늘의 장사익을 있게 한 원인이다.

 

그는 별의별 일을 다 해보았다고 한다. 광천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장사익은 선린상고 졸업 후 열대여섯 가지의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면서도 ‘노래에 대한 꿈’의 끈을 놓지 않은 것도 장사익의 ‘집념’이고

‘의지’였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피리도 불고, 태평소도 잊지 않았다.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 라이브공연에서 태평소 연주를 맡은 것도 장사익 이었다. 국악을 바탕으로 무르익은 그의 노래는 독특한 창법을 이루면서

소리꾼 ‘장사익 창법’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결국은 장사익의 지독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래서 그가 판을 벌이면 언제나 관객은 자리를 꽉 메운다.

 

가축장사를 하던 평범한 농부의 7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난 그의 모습도 전형적인 농부다.

농부는 일등을 하려고 아득바득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흙의 진리를 아는

질그릇 같은 맛을 지닌 가수가 바로 장사익 이다. 그는 마흔이 넘어 내린

자신의 결단에 대해, 아무것도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그는 독학으로 1년 동안 단소를 배우고, 5년 동안 피리를 익혔으며

1986년부터 태평소를 불었다. 그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장사익의 내공이었음에랴. 북한산 자락의 한 마리 새,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이든 3년만 해봐라.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는

‘국민 소리꾼’ 장사익은 1965년부터 서울생활을 했지만 아직도

서울말보다는 충청도 사투리가 익숙한 ‘홍성사람’이었다

백인의 학산전사 호동대장 哀兵必勝~!! 
 희망아침 HQ편지 불나비와 함께

 

     

     

      봄날은 간다 - 장사익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 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용의 *

    가장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결정에 따르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용의를 가진 사람들이다.
    한 사람의 위대성의 척도는
    고통을 감수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 M. 스캇 펙의《아직도 가야 할 길》중에서 -

    * 의미있는 일에는 고통이 뒤따릅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그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행복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결정에 수반되는 고통을 함께 감수할 용의가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친구입니다.
    평생의 좋은 길동무입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
♡* 지워지지 않는 못자국 *

    조금만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심하게 성질을 부리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는 한 자루나 되는 못을 주면서
    화가 날 때마다 뒤뜰 울타리에

    박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날, 아이는 37개의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조금씩

    못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못 박는 것이 힘에 부쳤기 때문에

    화를 참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함부로 화를 내며

    성질을 부리던 버릇이 점차 사라지고

    인내심이 길러졌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대견해하며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날부터는 화가 난 자신을
    잘 추슬렀다고 생각할 때마다

    못을 하나씩 뽑아오라고 시켰습니다.



    매일 조금씩 못이 뽑혀나갔고,
    결국 울타리에 박혔던 모든 못들이

    뽑아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아들의 손을 잡고

    뒤뜰의 울타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정말 장하구나, 우리 아들,

    그런데 울타리에 선명한 못자국이 보이니?
    이 울타리가 예전처럼

    말끔해지기는 힘들 것 같구나.
    네가 화가 나서 내뱉는 말들은

    이 못자국처럼 흔적을 남긴단다.
    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

    아무리 미안해한들 그 흔적을 지울 수 없듯이,
    말로 새긴 상처도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걸 명심해라."

     

     

    -좋은글 중에서-

     

      

    사람을 쉽게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실망을 합니다



    사람을 쉽게 믿지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제나 그만큼의 거리에서만 사람을 대합니다



    쉽게믿는 사람도, 또 믿지않는 사람도
    한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주고 믿어주는 만큼
    내가 행복하다는 것이지요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면
    우선 내 마음이 편합니다
    그리하면 서운하거나 배신감 또한 없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기대하는 만큼, 바라는 만큼
    사람들에게 애정과 관심이 있기 때문에
    서운하거나 배신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알아가는데는 오랜 세월이 흐르지만
    그것은 두고 두고
    우리를 커다란 믿음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것입니다



    오랜 시간의 변치않는 행동으로
    그 사람의 마음의 진실을 보게 되니까요



    그것은 어떠한 시련에서도
    변치않을 믿음을 줄 것입니다



    좋았다가 돌변하는 순간의 짧은 인연이 아닌
    오랫동안 변치않는
    좋은 인연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하룻길을 전하며 유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서 있는 그 곳이 모두 진리의 자리이다."
 


사랑할 능력

 

정신적으로 성숙된 사람은

엄격한 자기 훈련을 통해 사랑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며,

그 능력 때문에 세상은 그들의 도움을 절실히 요구하게 된다.

그러면 그들 또한 그 부름에 응하여 사랑을 실천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위대한 힘을 가진 사람들로서

세상은 그들을 보통 사람으로 보겠지만 그들은 조용히,

혹은 심지어 보이지 않게 그 힘을 행사하고 있다.




- M. 스캇 펙의《아직도 가야 할 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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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능력입니다..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 그런 능력이 비로소

만인(萬人)을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한 사람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만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자기 훈련'이 요구됩니다. 그 훈련 과정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고

큰 힘을 갖게 합니다. 사랑할 능력이 가장 위대한 능력입니다.

 

날마다 슬픈 일의 연속입니다. 오늘 고, 한주호 준위의 영결식에 이어

그토록 살아있기를 바래고 바랬던 천안함 남기훈 상사의 시신인양..

급기야 실종 가족들께서 해군에 인명구조 중단을 요구하였습니다.

무슨 글을 어떻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유가족들의 슬픔을 함께 하며 정부 당국의 대오각성을 바래봅니다.

그리고,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을 계기로 자주국방과 해양대국으로써의

면모를 바로 세우길 빌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국론통합과

함께 온국민이 똘똘 뭉치는 신기원을 이루어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도 수처작주 입처개진 애병필승~!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무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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