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의 밤은 달빛이 너무나 밝아 잠을 설친다. 엎치락 뒤치락 눈을 감고 잠자려고 하면 할수록 잠은 오지 않았다.
달빛은 내 손목을 잡아다가 창가에 세운다. 창밖에는 아무도 없이 달빛이 출렁거린다.
두 손으로 내 귀를 막아도 달빛은 소쩍새를 울리고만 있다. 선운사의 소쩍새는 달빛 바다 속에 한사코 울음으로 돌을 던지고 , 달빛은 소쩍새의 울음을 피나게 뽑아대고만 있는 것같았다.
선운사의 밤은 달빛과 소쩍새의 울음으로 子正이 넘었다. 나는 아무도 몰래 동백호탤을 빠져나왔다.
괴괴한 달빛과 소쩍새 울음으로 흥건한 뜰에서 나는 한 발 두 발 빠져들었다.
소쩍새 울음소리는 내 발등을 적셔오다가, 무릎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애수에 묻히는 숨결이 가쁘다. 어느새 소쩍새 울음은 내 턱 밑까지 차올랐다.
나는 한참을 걷다가 다시 돌아와 약국 앞 긴 나무의자에 앉았다. 나같이 잠못이루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떠들고 있었다. 사람들의 옷자락에는 달빛이 야광처럼 눈부셨다. 모두가 바람난 사람처럼 달빛에 취해 있었다.
이따끔씩 시원한 칠월의 숲바람이 뜰을 쓸고 지나간다. 피나게 울던 소쩍새 울음소리도 바람에 쓸려갔는지 조용하다. 주검의 바다 속처럼 고요하다. 여기저기서 풀벌레울음소리만 한꺼번에 일어섰다.
소쩍새울음소리가 끊긴 사이에 풀벌레 울음소리가 어른난 밤 나는 한마리의 풀벌레 보다도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달빛과 소쩍새와 풀벌레들이 한데 어울리는 類類相從의 밤이 아니던가. 이렇게 나같이 잠이 아니 오는 밤에 , 몹시 가슴이 출렁거리는 밤에 禪雲山'에 올라가 노래를 읊조린 것이 아마도 <禪雲山歌> 를 낳게 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선운산가> 는 문헌에 詩文이 없이 題目만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오늘 같은 날 < 선운산가> 의 시문이 남아 있었다면 나같이 잠 안오는 사람에게 얼마다 좋은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밤이기도 하다.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밤에 이웃 정읍시(井邑市)에는 정읍사(井邑詞) 가 원문으로 보전되어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느끼는 밤이기도 하다.
<정읍사>와 <선운산가> 가 쌍벽으로 함께 보전 되어 있었다면, 고창군의 자랑이 아니던가. 못내 아쉬운 밤이기도 하다. 느닷없이 앞산에서 "소쩍당!소쩍당!" 산을 울리고 있었다. 이윽고 동백숲이 우거진 뒷산에서 가느다람 산울림 목청으로 "소쩍당! 소쩍당!" 맞장구를 치고 잇었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앞산에서 울면 뒷산에서 쫓아울고, 뒷산에서 쫓아울면 ,앞산에서 또 울고 , 선운사의 소쩍새 울음소리는 선운사를 넘치고 넘어서 장수강으로 넘치고 칠산 서해바다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이것이 바로 선운산 천년 비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선운사에 와서 생각해 본다.
달빛이 없는 선운사는 생각할 수도 없다.
소쩍새 울음이 없는 선운사는 무슨 재미로 지낼까.
풀벌레 울음 소리가 없는 선운사는 얼마나 삭막할까
이런생각 저런 생각으로 나를 흔들어 놓는 선운사의 소쩍새는 다정한 친구가 아닐 수 없다. 선운사는 소쩍새 울음 없이는 너무도 적막할 것 같았다.
소쩍새 울음도 이제 목이 쉬없나 보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쩍새는 울지 않았다.
선운사의 적막은 온통 물속으로 가라앉아 가는 것 같았다.
선운사도 아무 말이 없다. 내 옷자락에는 달빛만이 젖어들어 축축했다.
선운사 소쩍새 울음이 멈춘 뜰에서는 내 발자국 소리만 멋없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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