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詩낭송모음

[스크랩] 제6회 전북 詩 낭송 대회

영관님 詩 2010. 11. 10. 19:00

 

 

흰 바람벽이 있어


                                 시 : 백  석

                      낭송 : 서상철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燭 )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출처 : 전북시낭송협회
글쓴이 : 새시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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