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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유서 *
- 파블로 네루다
가을엔 유서를 쓰리라
낙엽되어 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루 밤새 하얗게 들어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은 바닷가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 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 껍질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큰곰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 내어 읽으리라.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
글쓴이 : 유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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