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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을의 유서

영관님 詩 2011. 10. 24. 10:26

        * 가을의 유서 * - 파블로 네루다 가을엔 유서를 쓰리라 낙엽되어 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루 밤새 하얗게 들어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은 바닷가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 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 껍질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큰곰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 내어 읽으리라.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
글쓴이 : 유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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