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르지오네 (Giorgione 1476~1510) |
유감스럽게도 지오르지오네(요절한 천재화가 Giorgione da Castelfranco, 1476~1510)의 생애에 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자료를 찾아 내 서양미술사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그에 대한 자료를 뒤지고 책을 찾아봤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빈약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그렸다고 확실하게 추정되는 작품도 다섯 점을 넘지 않는다고 하니까.... 그러나 그 한 줌밖에 안되는 작품들로 후세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심지어 그의 스승인 벨리니조차 제자에게서 몇가지 회화적 장치를 배웠다고 했다니...정말 그러고 보니 화가는 타고나야 되나 보다. 그는 종이에 예비 드로잉을 하지 않고 캔버스에 직접 그림을 그린 최초의 화가였다고 하니까 말이다. 흐르는 듯 자유로운 붓질, 서로 스며드는 두터운 물감층---유화기법상의 혁신은 곧 내용의 혁신으로 이어졌으니까......... |
이탈리아 베네챠에서,,↑ |
베네치아 미술을
조금 소개하고 Giorgione에
알아 보겠다, 베네치아는 전 성기 르네상스 양식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베네치아 회화의 주요장르인 연상적이고 목가적인 풍경화 가운데 최초의 작품으로 꼽히는 아래 왼쪽 작품인 폭풍The Tempest(1505경)은 지오르지오네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전기작가이자 마니에리스모미술가인 조르조 바사리가 이탈리아의 뛰어난 건축가·화가·조각가들의 생애 Vite de'piú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d architettori italiani……(1550, 1568)에서 기록한 전설들을 제외하고 실제로 알려진 것은 전혀 없다고 하는데.... 조르조네의 이름은 현재 남아 있는 1507, 1508년의 두 자료에 초르치 다 카스텔프랑코(베네치아의 방언), 즉 카스텔프랑코의 조르조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
오늘날 관례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조르조네(또는 초르촌)라는 이름은 1528년 그리마니 컬렉션의 작품 목록에 처음 나온다. 이 이름은 '키가 큰 조르조' 또는 '몸집이 큰 조르조'라는 뜻으로 그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미남이고 호색적이었단다. |
조르조네의 그림에 나타나는 기법과 색채, 분위기는 확실히 벨리니의 후기 양식과 비슷하다. 1507년 베네치아에 있는 두칼레 궁의 접견실에 걸기
위해 주문받은 그림은 그후 더이상의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완성되지 못한 것 같다. 조르조네의 주요한 공공 작품으로는 폰다코 데이
테데스키(독일 대사관)의 외벽에 그린 프레스코가 있는데, 그는 운하를 향하고 있는 이 건물의 정면에 인물상들을 그렸었다. 거리쪽의 프레스코들은
젊은 티치아노가 그렸는데 아마 조르조네의 감독을 받은 것으로 추축하고 있다. 1508년의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 작품들은 부분적으로 흐릿한 인물 윤곽선만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소실되었다. 그의 작품인 지오르지오네 (Giorgione)의 폭풍은 → 피렌체와 로마가 주도했던 르네상스 회화에서 화면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완벽한 균형과 비례를 자랑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이 지오르지오네의 폭풍에서는 색채의 조화가 이를 대신한다. 즉 하늘과 물이 약간 어두운 푸른빛으로 통일된 반면, 번개의 밝은 하이라이트가 집들을 지나 여인의 어깨에 걸친 가운과 남자의 흰 블라우스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숲은 명암을 조금씩 달리하는 갈색과 녹갈색으로 칠해져 있다. 생각해 보니 풍경이 인물을 압도할 정도로 강하게 묘사되었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선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 이전의 회화에서 풍경은 주로 인물과 사건의 배경으로서만 깔렸을 뿐이다. 자연을 하나의 독립된 모티브로 다룬 것, 그것만으로도 전망의 확대이고 혁명이지 않았을까. 매우 시적인 풍경화이다. 목가적인 배경 아래 전라의 여인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지나가는 남자가 이를 쳐다보고 있다. 폭풍우가 치려는지 하늘엔 번개의 조짐이 보인다. 베네치아의 전위적 인문주의자 써클의 일원이었다는 화가의 개인적인 알레고리가 숨어있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다. |
2000년의 강의실에서 '미술연구사'를 듣던 내가 열강하던
교수님 모습이 그림을 보니까 생각이 난다. '폭풍우가 치는데 어찌하여 여인은 한가로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지...' 지팡이를 든 남자는
목동인가, 군인이가. 그 의미를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 해석이 엇갈리는 작품이다. 또
내가 2006년 여름 파리를 방문했을 때 함께 간 일행과 일정이 빠듯해서 바로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을 코 앞에 두고 시간에 쫒겨 들어가
보질 못한게 지금도 한이다. 사진으로만 건물로 세느강 이쪽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 Orsay에 있는 작품 사진들을
모두 내가 가지고 있으니......Orsay는 프랑스 파리 센 강 좌안에 자리한 미술관이다. 소장품 중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을 비롯한
19세기 인상파 작품이 유명하다 ← Orsay 미술관 |
←죠르지오네 작품 田園의 合奏曲, 1508-09년 캔버스에 유채, 110×138cm, 파리, 루브르박물관 초상화 분야에서도 조르조네는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되어있다. 티치아노, 팔마 베키오, 로렌초 로토 같은 베네치아 화가들은 16세기초에 조르조네를 흡사하게 모방했기 때문에 때때로 그들의 그림을 구별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청년 Youth(1504경)은 대체로 그가 그린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작품은 뚜렷한 윤곽선과 입체적인 효과와 더불어 평온한 분위기와 정적인 얼굴 표정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르네상스기의 인간상을 매우 인상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의 작품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시인인 안토니오 브로카르도 Antonio Broccardo의 초상화(1506경)도 이와 마찬가지로 정교한 세련미와 섬세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
모든 비평가들이 한결같이 그가 그린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작품은 이른바 라우라 Laura의 초상화로, 그 뒷면에는 1506년 6월 1일이란 날짜와 이것을 그린 화가가 카스텔프랑코의 초르치라는 글이 적혀 있는데. 독일의 유명한 동판화가인 벤첼 홀라르가 1650년에 인그레이빙으로 기록한 조르조네의 다윗으로 분장한 자화상 Self-Portrait as David (1510경)은 크게 손상되긴 했지만 크기를 아주 축소한 원작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고 알려져 있다 . 지오르조네는 이 자화상에서 눈살을 찌푸린 채 몸을 난간 안쪽으로 기울게 그림으로써 좀더 극적인 효과를 연출했는데. 티치아노는 푸른 옷을 입은 남자의 초상화(1512경, 런던 국립미술관)에서 이와 똑같은 구도를 택했는데, 여기에 씌어 있는 머리글자 'TV'(Tiziano Vecellio)는 이 그림의 제작자는 조르조네가 아니라 티치아노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상당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카스텔프랑코 출신의 이 단명한 대가는 여전히 르네상스 화가들 중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들이 지니고 있는 특질과 매력으로 인해 그는 당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이상적인 형태와 색채, 밝기를 통해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 베네치아의 대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 파리에서
4년 정도 살다 돌아온 우리반 아빠가 내가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오르세Orsay), 루부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을
디카로 거진 모두 다 찍어 많은 사진을 어제(2008년 5월15일) CD로 선물 받았다. 너무 값진
선물을 받다 보니 복에 겨워서...오늘은 참 많이 행복한 날이다. 별로
우리나라에서는 이 모든 작품사진을 가진 사람이 나 말고는 몇몇 안될
것이다. 미술관에
있는 사진을 지금은 빛이 밝은 곳에 전시 되어 있는 작품들은 사진으로
찍어도 가하나 어둔 곳은 금지하는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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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플래쉬가 번쩍하는
순간 빛이 작품을 변색 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오르세에는 못가고 루부르에서
살짝 숨어서 셔터를 눌렀는데 어둔 곳이라 발광을 하니 도무지 가슴이
두근거려 제대로 찍지도 못했는데... 아래
그림 Giorgione의 '전원의 합창곡'은 파리 루부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그림이 있는 루부르 박물관 입구에서 포즈를 취해 보았다 |
잠자는 비너스를 시작으로 베네치아의 미술에서는 사랑의 여신을 주제로 한 일련의 그림들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특히 티치아노의 그림들이
유명하다. 그러나 장엄하고 이상적인 이 그림만큼 한적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완전하게 표현한 작품도 없다 유딧 Judith(1505경)은
자료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와 똑같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녀는 자기 민족의 복수자라기보다 일종의 여신으로
표현되어 있다. 잠자는 비너스 (Sleeping Venus)→ 베네치아 화파의 그림들은 관능적이며 서정적인 화려한 색조(色調)를 통해 삶의 쾌락과 즐거움을 최대한 노래하고 있기에 다소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피렌체의 화풍보다는 근대성이라는 면에서 한 걸음 크게 나아가고 있다 하겠는데 왼쪽 그림인.'잠자는 비너스'야말로 누드화의 원조이며, 근대회화의 출발점, 나아가서 근대성(modernity)의 시작을 예고하는 그림이라고 생각되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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