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소설

상상의 고향 나들이/김학 교수

영관님 詩 2012. 4. 13. 19:25
 

상상의 고향나들이
김학



고향은 추억을 낚는 무료 낚시터다. 고향이라는 저수지에는 건져 올릴 낚싯감들이 즐비하다. 유년시절의 회억이며, 얽혀 살았던 가족과 일가친척, 그리고 죽마고우와 동네 사람들 사이에 빚어졌던 갖가지 에피소드, 고향의 산하가 펼쳐 보여 주었던 봄·여름·가을·겨울의 정경들, 그 어느 것이든 좋은 글감이 된다.

고향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그리고 돌멩이 하나에도 예사롭지 않는 정감을 느낄 수 있다. 높낮은 산등성이 하나하나에도 사연은 있기 마련이고, 동구밖 미루나무 한 그루에서도 글감을 끄집어 낼 수 있다. 고향은 어느 곳에 포커스를 맞춰 셔터를 눌러도 예술사진이 될 수 있듯이 창작의 실마리를 풀어 낼 수가 있다. 그래서 고향은 좋은 것이고, 고향은 영원한 것이며, 고향은 소재의 보고가 된다. 고향이란 저수지에 낚싯대만 드리우면 낚싯감들이 서로 다투다시피 낚시바늘을 물려고 달려든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다. 다만 금세 달려 갈 수 있는 고향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찾아 갈 수 없는 고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 또한 서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실망이나 좌절에 잠길 일은 더더욱 아니리라 믿는다. 상상의 고향나들이로 아쉬움을 달래보라고 권하고 싶다. 고향이란 추억 속에서 살아 숨쉬는 무형의 존재가 아닐까.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면 고향을 찾더라도 이미 옛날의 고향은 아니다. 산천도 변하고, 인물도 세대교체 되어 낯설다. 고향에선 이방인이 되고 만다. 세월 탓이다. 그러니 추억 속의 고향이 진짜 고향일 수밖에.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면 고향이 떠오른다. 그 속에서 부대끼면서 살던 인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아기자기 재미를 느꼈던 일화들이 줄지어 연상된다.

여름이면 뙈기를 치며 우여! 우여! 새를 쫓던 일이며, 하동들과 어울려 시내에서 물장구 치던 일, 가을이면 메뚜기를 잡아 장난감처럼 희롱하던 일, 겨울이면 썰매를 타기도 하고 뒷산에 올라 설산(雪山)을 누비며 토기몰이에 신명이 나던 일, 봄이면 뜨락에 꽃씨를 뿌리고 진달래 만개한 산마루를 노루처럼 뛰어 다니던 일들이 바로 어제 일인 듯 눈에 밟힌다.

도시로 기어 나와 산지 40여 년. 그 긴긴 세월 동안에도 고향은 언제나 내 마음 속에서 살아 숨쉰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고향 이야기가 나오면 괜스리 가슴이 설레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거리를 지나다가 먼 빛으로 고향 사람을 만나면 쫓아가 손을 감싸쥐게 된다. 이게 우리네의 토속적인 정서다.

고향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만나며 고향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무의식적인 고향 사랑의 발로다. 내가 방송 초년병 시절,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고향에서 발전기를 휴대한 채 서울에서 인기 가수를 초청하여 공개방송을 했던 것도 내가 고향을 사랑했던 데서 비롯된 일이다. 아! 그리운 고향.

내 수필에는 고향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고향의 산천, 고향의 인정, 고향의 역사, 고향의 풍습, 고향의 문물 그 어느 것이든 정감 어린 소재 아닌 게 없다. 꼭 필요할 때 꼬깃꼬깃 숨겨둔 비자금을 꺼내 쓰듯 고향 이야기로 원고지를 메운다.

나의 고향 선배인 H시인은 ‘어머니’를 ‘움직이는 고향’ 이라고 읊었다. 어디 어머니 뿐이랴. 아버지, 삼촌, 형제, 동네 사람들 등 움직이는 고향의 인물들은 모두가 ‘움직이는 고향’이랄 수 있는 것을. 그들의 말씨에서도 고향을 떠올릴 수 있고, 그들의 입성에서도 고향을 연상할 수 있으며, 그들의 먹성에서도 고향을 떠올릴 수가 있으리라.

고향을 소재로 한 글을 쓰노라면 마음이 포근해 진다. 엄마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자는 아이처럼 안정감을 느낀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뒤 자신 있게 답안지를 쓰는 수험생처럼 막힘이 없다. 그래서 고향은 글감의 좋은 소재요, 감칠맛 나는 주제가 된다.

내 고향은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삼계리. 세 갈래의 시냇물이 한데로 합수져 흐르는 곳이라 하여 삼계(三溪)라 하였다던가. 어감이 싯적이며 옛스럽기조차 한 그 이름 삼계. 나는 고향을 항상 보듬고 살고 싶은 나머지 나의 호를 ‘삼계’ 라 자작하였다.

삼계라고 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이 박사고을이다. 인구도 얼마 되지 않는 조그만 면인데 150명의 박사를 배출했으니 박사고을이라고 불리우게 된 것은 당연하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널리 소개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박사고을 출신인 나는 아직 박사가 아니다. 고향의 명예에 누를 끼치고 있다는 자괴감을 갖고 있다. 학문의 길로 정진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이젠 때늦은 후회일 뿐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박사고을 이야기를 시시때때로 들려준다.
“너희들은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고향의 명예를 이어가거라.”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고향 삼계.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삼계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고향이 삼계라는 사실이 항상 자랑스럽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고향에서 여의고 가난과 고생을 징검다리 삼아 살아 왔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고향은 추억을 낚는 무료 낚시터다. 나는 오늘도 한가로이 앉아서 고향이라는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오늘따라 조황이 좋은 편이다. 자리를 옮겨 앉아도 조황은 여전하다. 이래서 고향은 좋은 것인가 보다. 고향 땅을 밟지 않아도, 고향 바람을 쏘이지 않아도, 고향물을 마시지 않아도 나는 시방 고향에 있다. 고향은 마음 속에 산다. 고향은 상상할 때 더 아름답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