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지초당 현판
2004년 과천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모여 과천 트러스트 운동으로 모금과 함께 문화유적지보존을 위한 행사를
시작하여 2004년 7월 9일 "추사길" 현판을 조각하고 과지초당 편액 글씨를 휘호하는 범시민 행사를 가졌다.
과지초당 글씨는 가산 최영환이 쓰고 2007년 초당 준공에 즈음하여 이조 임만선이 조각하였다.
* 과지초당
과지초당은 추사의 생부 김노경(1766-1837)이 한성판윤을 지내던 1824년 과천에 마련한 별서이다
과지초당은 당시 경관이 빼어나 정원과 숲 그리고 아름다운 연모을 갖추어 추사 가문의 절정을 상징하는 곳이다.
1837년(헌종 3년) 김노경이 별세하자 추사는 부친의 묘역을 과지초당 인근 옥녀봉 중턱 검단에 모시고 과지초당
에서 보내는 일이 늘어났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및 함경도 북청 유배에서 풀려난 1852년(철종 3) 8월이후
1856년 10월 서거하기 까지 말년 4년여간을 과지초당에서 지내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다.
유적지에 있는 연못.. 조금 더 신경 써주면 좋으련만..
* 독우물
추사 김정희 선생은 4년간 과지초당에 머물면서 직접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셨다고 한다.
독우물은 독 항아리를 묻어 우물을 만들었기에 독우물, 또는 옹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독우물은 과지초당과 더불어 과천 소재 추사 관련 유적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 마천십연 독진천호
추사 김정희 선생이 말년에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의 구절로
"70년 동안 열개의 벼루를 갈아 없애고 천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다"
추사 선생의 평생 노력을 잘 보여 주는 글이다.
과지초당은 과천시 주암동 추사길(경마장 가는길)에 위치해 있으며 최근에 단장 되었으나 생각보다 유적지가 적고
명성에 비해 미흡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왕 사업을 하려고 하였다면 부근 땅을 좀 더 마련 했어야 하는데 이미 주변
가까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어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참고로 위의 글은 과지초당 홍보물을 근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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