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아름다운 까닭 / 박완서
가을이 산을 내려오고 있다. 대청봉이나 내장산처럼 자지러지는 단풍이 아니지만 산정에만 드문드문 보이던 황갈색이 어느 틈에 중턱까지 퍼졌다. 봄은 기를 쓰고 올라가더니 가을은 이렇게 신속하게 내려오고 있다. 왜 그렇게 빨리 내려오는지 내리막길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고 싶다. 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조심해야 된다는 걸 늙어가면서 알겠다. 조금만 딴 생각을 해도 발을 헛디디게 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려서 넘어지길 잘해서 어머니한테 걸을 때는 걷는 생각만 하라는 주의를 여러 번 들었다. 넘어지는 것 말고도 어릴 적의 내 실수는 거의가 다 딴 생각을 하다가 저지른 거였다.
등산로 초입에 커다란 사시나무가 서 있다. 보통 때는 그 나무가 거기 있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다녔다. 특별히 눈에 띄는 나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나무가 눈에 띈 것은 그 애처로운 떨림 때문이었다. 청명한 아침이었고 기분 좋을 정도의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무들의 이파리를 흔들 정도의 미풍이었는데 사시나무 혼자서 온몸으로 떨고 있었다. 나무들은 잎이나 열매, 크기, 줄기 등으로 자기가 무슨 나무라는 걸 알린다. 소나무나 아카시아처럼 한눈에 알 수 있는 나무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봐야 구별할 수 있는 나무도 있고, 이름을 모르는 나무가 더 많다. 어떻게 바람에 반응하느냐로 존재를 알리는 나무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건 나부끼는 것도 흔들리는 것도 아닌 떨림 그 자체였다. 신경이 떠는 것처럼 민감한, 전 존재가 공구(恐懼)하는 것처럼 깊고 걷잡을 수 없는 떨림.
나는 그때 문득 “쯧쯧, 왜 그렇게 사시나무처럼 떠냐?” 하는 어머니의 음성이 생각났다. 어려서 시골집에 살 때 겨울에는 부엌에서 목욕을 했다. 어머니는 자주 씻기는 편이었지만 기껏해야 한달에 한번 정도가 아니었을까. 가마솥에 데운 물을 나무로 깎아 만든 큰 함지박에 붓고 그 안에 들어앉아 때를 불렸다. 그러고 나면 어머니가 일으켜 세우고 거친 베수건으로 박박 문지르면서 물을 끼얹었다. 함지박의 물이 미지근해지면서 떨림이 시작된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떨림은 내 알몸을 함지박 바깥으로 번쩍 들어내 부엌바닥에 세워났을 때 절정에 달한다. 아래윗니가 딱딱 부딪치게 떨렸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사시나무 떨 듯 한다고 했다. 베수건으로 물기를 다 닦아내도 떨림이 멈추지 않으면 어머니는 나를 당신 팔로 꽉 조이듯이 껴안았다. 따뜻한 포옹이 아니라 기둥처럼 완강한 제동이었다. 어머니는 살가운 분이 아니었는데도 나이 들어가면서 더 자주 어머니 생각이 나곤 한다. 내 안에는 아직도 내 힘으로는 다스려지지 않는 떨림이 남아 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모진 세상, 미지의 운명 앞에 이리도 알몸인 듯 시린가.
가을이 빠른 속도로 산을 내려오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한창 만개한 철모르는 꽃이 있다. 아니 철을 모르는 게 아니라 가장 철에 민감한 꽃, 찬바람이 나야만 피는 꽃이란 어떤 꽃이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코스모스다. 아치울 마을 동구 밖은 43번 국도이고 국도를 건너면 한강 둔치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곳은 버려진 땅이었다. 둔치 중에도 좀 지대가 높은 데는 비닐하우스가 있지만 강을 낀 10만평도 넘을 것 같은 저지대는 늪 같기도 하고, 우범지대 같기도 하고, 쓰레기를 몰래 버려도 묵인해주겠다는 약속의 땅 같기도 했다.
거기에 누군가가(아마 구리시청일 것이다. 개인이 하기엔 너무 광활한 땅이다) 꽃을 심기 시작한 것이다. 워낙 광활한 땅이라 몇백 몇천평씩 구획을 해서 사이로 산책로를 내고 철마다 꽃을 볼 수 있도록 유채꽃으로부터 장미, 홍초, 해바라기, 백일홍, 금잔화, 코스모스까지. 유채는 금년 봄가뭄이 심해 기대한 만큼의 꽃을 피워주지 않았다. 그밖에 장미나 홍초도 오랫동안 계속해서 피기 때문에 도리어 주의를 끌지 못하고 해바라기가 한창일 때는 정말로 굉장했다. 어떻게 그렇게 알고들 찾아오는지 많은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게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영화배우처럼 웃었다. 아마도 <해바라기>라는 영화 속에 들어간 듯 착각했을 테니까. 영화 <해바라기>말고도 이 땅에서 그렇게 넓은 해바라기밭은 누구에게나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해바라기밭처럼 확 눈에 띄지는 않지만 백일홍이 한창일 때도 볼 만했다. 키가 큰 재래종 백일홍이 어쩌면 그렇게 다양하고 은은하고 세련된 색상으로 피는지. 녹의홍상이란 말도 있고, 어려서는 덮어놓고 명절날이면 샛노란 저고리에 새빨간 치마를 입었던 경험으로 우리 민족은 녹음과 진달래와 개나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색에 대한 상상력도 거기 고정된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원색의 유행은 외국에서 화학염료가 들어오고 우리네 살림이 정체성을 잃을 정도로 척박해진 후부터가 아니었을까. 요새 뜻있는 이들이 재현하고 있는, 우리 조상들이 즐겨입던 천연물감 들인 옷감을 보면 그렇게 다양하고 고상하고 세련됐을 수가 없다. 그런 색상들의 총집합이 바로 그 백일홍 꽃밭에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제 그 백일홍 꽃밭은 지체높은 귀인의 말년처럼 기품있게 사위어가고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우리 시골에선 코스모스를 키다리라고 했다. 키다리보다는 코스모스가 더 예쁘고 정겹게 들린다. 요새 코스모스가 해바라기보다 더 사랑을 받고 있다. 통일로나 양평 가는 길 등 코스모스로 유명한 길도 많고 그래서 코스모스는 길가에만 피는 꽃으로 알지만 평원에 펼쳐진 코스모스밭은 더욱 볼 만하다. 물론 이 넓은 땅에 다 코스모스를 심?건 아니다. 꽃에 따라 제 영역이 있고 제 차례가 되어야만 피건만 이상하게도 해바라기 전성기일 때는 온통 해바라기밭 같고, 백일홍이 전성기일 때 또한 그러하였다. 지금은 코스모스만 보인다. 사라져가는 것들은 안 보인다. 요새 이곳 구리 둔치의 코스모스는 워커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한강이 양평 쪽으로 완만하게 휘는 지점을 보면 그 일대가 분홍빛 아지랑이처럼 앙기앙기 피어오르는 게 보인다. 이 계절에 웬 분홍빛? 그리하여 환각 같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코스모스밭이다. ※나는 해 저물녘의 그곳이 제일 좋다. 해바라기가 만개했을 때도 백일홍이 만개했을 때도 그곳에서 하염없이 아차산으로 해가 지는 걸 바라보는 게, 실은 그곳 산책의 하이라이트였다. 아차산에 안긴 우리 동네서 바라보면 한강 쪽에서 해가 뜨지만 한강 쪽에서 바라보면 아차산으로 해가 진다. 그냥 은은한 잔광만 남기고 꼴딱 질 적도 있지만 산정에 구름이라도 몇 점 머물러 있으면 기가 막힌 노을을 보여줄 적도 있다. 구름은 부드러운 솜털구름보다는 터치가 힘찬 약간 성난 구름이면 더욱 장관을 보여준다. 노을이 너무도 핏빛으로 선열하여 영웅호걸의 낭자한 출혈처럼 비장할 적이 있는가 하면, 가인의 추파처럼 요요할 적도 있다.
어느 쪽이든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온몸을 나사처럼 죄어오다가 순식간에 풀어 준다. 그러고 나면 속은 것처럼,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서럽고 막막해진다. 아침에도 노을이 지지만 그건 곧 눈부신 햇살을 거느리기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잊혀진다. 그러나 저녁노을은 언제 그랬더냐 싶게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끝이 어둠이기에 순간의 영광이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집착 없음 때문이다. 인간사의 덧없음과, 사람이 죽을 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아아, 그러나 너무도 지엄한 분부, 그리하여 알아듣고 싶어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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