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 고은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고은 (高銀 1933.8.1~)
본명은 은태(銀泰), 법명은 일초(一超).
여러 재야단체와 집회에 참가하면서 주로 사회비판의식이 담긴 시를 썼다.
아버지 근식(根植)과 어머니 최점례(崔點禮)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9세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으며
1943년 미룡국민학교에 들어가 조기졸업하고
1946년 군산중학교에 수석 입학해 미술과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6·25전쟁 때 3개월 동안 강제동원되어 비행장 복구작업을 한 뒤
자주 정신착란을 일으켜 가출했다.
1·4후퇴 때 선유도로 피난했다가 군산으로 돌아와 군산북중학교 교사 등을 지냈다.
그뒤 방황을 거듭하다가 1952년 불가(佛家)에 들어가 탁발하는 등 많은 기행(奇行)을 남겼는데
10여 년간 가짜 고은이 전국 여러 곳에서 나올 지경이었다.
1962년 환속해 폭음과 방랑을 계속하다가 제주도에서 도서관을 설치하고
고등공민학교를 여는 등 사회봉사활동을 했다.
서울 선학원(禪學院)·불교 총무원 간부, 전등사 주지, 해인사 주지대리 등을 지냈다.
1969년 동화통신 부장대우로 잠시 근무한 것이 유일한 직장 경험이다.
1974년부터 민족민주운동에 앞장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대 대표간사,
김지하구출위원회 부위원장 등 여러 운동단체에 참여했다.
1977년 조태일과 함께 수감되었다가 풀려나 민주청년협의회 고문,
한국인권운동협의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1979년 6월 미국 카터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했다가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으로 투옥되어 10·26사태를 감옥에서 맞이했다.
1979년말 석방되었으나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투옥
대구교도소에서 복역중 귀 수술을 받았다.
1982년 건강이 악화되어 8·15 특사로 풀려난 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공동의장, 민족문학작가회 의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불교신>의 초대 주필로 있을 때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시>에 시 <폐결>을 발표한 데 이어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에 <봄밤의 말씀>, <눈길>등을 발표해 문단에 나왔다.
시집 〈피안감성〉(1960)을 펴낸 후
수필집 〈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1968)를 내면서
"성(聖) 고은 에세이집"이란 부제를 붙여 사회적 선풍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누이, 폐결핵 같은 단어를 자주 써서 인생의 허무를 읊었다.
1970년 짧은 시집 〈세노야〉를 펴낸 뒤
한때 번역에 힘쓰다가 1974년에 발표한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를 기점으로
사회비판의식이 강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78년에 발표한 장시 〈갯비나리〉는
1970년대의 참여시를 민중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역사의식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시집으로 〈조국의 별〉(1984),〈전원시편〉(1987),
〈아침이슬〉(1990),〈해금강〉(1991)을 비롯해
대하시 〈만인보 萬人譜〉(1986년부터 발간중),〈백두산〉(1987년부터 발간중) 등을 펴냈다.
소설집으로 〈피안앵 彼岸櫻〉(1962),〈일식〉(1974),〈
산 넘어 산 넘어 벅찬 아픔이거라〉(1980),〈소설 화엄경〉(1991) 등을 펴냈다.
200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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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쉼 터
글쓴이 : 뜨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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