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 문학관(극작가 유치진과 시인 유치환 형제)
시인 유 치 환
청마 유치환은 1908년 7월 14일 지금의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에서 아버지 유준수와 어머니 박우수사이의 차남으로, 극작가 동랑 유치진은 바로 그의 맏형이다.
1931년 그는 "문예월간"지 제2호에 시 "정적"을 발표하면서 중앙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하였으며,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를 간행하고 이듬해 3월 가족을 거느리고 만주로 이주하여 농장 관리인이 되었다.
1945년 귀국하여 그의 아내가 운영하던 문화유치원에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어 새 조국건설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해 10월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부임 하면서 그는 교육계에 투신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도 문화활동과 시작을 의욕적으로 병행하였다.
청마 유치환은 해방후 20여년간 교직에 있으면서도 열심히 시를 쓰고 의욕적인 문화활동을 하였으나 1967년 2월 13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니 향년이 60세였다.
시집은 "청마시초'(1939). "생명의 시"(1947). "울릉도"(1948). "청령일기"(1949). "보병과 더불어"(1951) "청마시집"(1954). "제9시집"(1957). "유치환 시선"(1957). "트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 "미루나무와 남풍"(1964).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1966)등이 있으며, 수상집으로는 "에루살렘의 닭"(1953)."동방의 느티"(1959)."나는 고독하지 않다"(1963)등이 있고자작시 해설집 "구름에그린다"(1959)가 있다.
수상기록으로는 "한국청년문학가협회 제1회 시인상"(1947). "제2회 서울특별시 문화상"(1950). "제1회 경상북도 문화상"(1956). "제5회 자유문학상"(1957)."제7회 예술원상"(1961). "부산시 문화상"(1964)등 을 수상하였다.
청마 문학관
한국시문학사에 큰 획을 그으신 청마 유치환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문학 발전을 위해
2000년 2월 14일 통영시 정량동 863 - 1번지
통영 기상대 밑에 개관 하였다.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 휴계실등을 갖추어
통영인의 예향심과 문학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문화탐방, 관광지로 통영시의 명소중 하나이다.
극작가 유 치 진
동랑 유치진은 1905년 11월 19일 통영면 동부동(현 태평동) 5통 16호에서 아버지 유준수와 어머니 박부수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청마 유치환은 바로 그의 동생이다.
1927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향하여 고두동, 박명국, 최삼한기, 장응두, 장춘식, 최상기, 유치환 등과 문학써클 "토성회" 를 조직하여 박정섭, 신무선, 주삼손 등과 함께 유치진 각색 연출로 메리에 작 "칼멘" 을 공연하기도 했다.
1931년 이후 그는 희곡 40여편을 비롯해서 산문 100여편에 라디오드라마, 시니리오, 논문, 소설 등 20여편을 발표하였으며 수많은 작품의 각색과 연출까지 맡았다. 이후 그는 초대국립극장, 예술회원, I T I 한국본부 위원장, 한국문화단체 총연합회 초대회장, 아시아영화제 국제심사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 등으로 활약하였다.
또 극장 "드라마센타" 를 건립하고 극단 "드라마센타"와 "동랑 레퍼터리 극단". 그리고 "서울예술전문학교" 를 설립 하였다. 그는 1962년 문화훈장 대통령장을 수장하고, 1967년 제1회 3 . 1 연극상, 1970년 한국연극 공로상을 수상 하였다. 1974년 2월 10일 향년 69세로 타계하니 연극인장으로 장례가 엄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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