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과 시론

[스크랩] 대한문학 2010년 가을호 수필평/김학

영관님 詩 2011. 10. 12. 19:47

<대한문학 2010년 가을호 수필평>

쓰는 수필, 읽는 수필

김 학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장마와 태풍이 찾아왔는데도 더위는 물러갈 줄 몰랐다. 억수로 비가 내려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냈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자연재해다. 그런데도 밤마다 열대야 때문에 잠을 설치곤 했었다. 지독한 더위였다. 이처럼 무더울 때 더위와 씨름하며 만난 게 대한문학 가을호 수필이었다.

수필은 우람한 나무 밑의 정자에서 매미들의 노래를 들으며 읽는 맛이 좋다. 살랑살랑 부채로 바람을 일구며 수필을 읽노라면 수면제가 따로 필요 없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수준 높은 작품을 써서 독자에게 선보이는 수필가의 마음과 한가롭게 그런 수필을 만나 공감하며 읽는 독자의 마음은 서로 소통하는 관계일 것이다.

좋은 수필을 쓰려면 세 가지 눈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자기를 보는 눈이요, 둘째는 남을 보는 눈이며, 셋째는 세상을 보는 눈이다. 이러한 눈을 갖고 세상만사를 바라보면 좋은 수필 소재를 만나기 마련이다. 수필의 소재를 찾을 줄 아는 눈, 그런 눈을 지닌 사람은 독자의 사랑을 흠뻑 받는 수필을 빚게 될 것이다. 대한문학 2010년 가을호에서 수필여행을 떠나보자.

*너무 늦은 생각(박기옥)

식당에서 누룽지탕이란 메뉴를 본 화자는 자신이 새댁일 때 시할머니가 종종 누룽지탕을 끓여달라던 기억을 떠올린다. 요리책을 보고 법석을 떤 끝에 누룽지탕을 만들면서 불평했던 화자가 이제 나이가 들자 치아와 소화기능이 약한 할머니에게는 그 누룽지탕이 유일한 생존수단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줄거리다. 화자는 누룽지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모든 사람의 생활은 다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화소(話素)의 영역을 넓혀간다. 화자는 고려 때까지 성행한 근친혼도 재산이 다른 집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으려는 혼인제도로 파악한다. 또 동서양의 환관제도(宦官制度) 역시 가난한 민초들이 밥벌이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아들의 남성 심벌을 제거하고 궁중에 들여보낸 것으로 이해한다. 합법적인 직업전략으로 해석한다. 또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 역시 먹고사는 문제로 풀이한다. 색다른 해석이지만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할머니에게 누룽지탕은 삶의 치욕이 아니었을까. 시멘트 틈에 씨앗을 내린 민들레는 얼마나 먼 길을 헤매다 왔을까. 유목 여인이 그 남편들을 만나기까지는 몇 겁의 순간이 스쳤을 것인가. 할머니든 민들레든 유목여인이든 나는 그들의 거친 삶을 딛고 현재에 이르렀다.

<너무 늦은 생각> 중에서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화자의 자기반성이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움직이는 수필이다.

*표정 나누기(배귀선)

서두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끈다. 서정적인 문장이 읽는 이의 눈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책을 덮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농부가 땅의 표정을 읽고 등산객이 산의 표정에 이끌려 산행을 하듯 나는 사물의 다양한 표정에 이끌려 그들을 들여다본다. 얼기설기 얽혀진 풀들의 삶과 나무와 꽃에, 바람에 담긴 표정은 내가 아는 만큼의 대화를 건넨다.

<표정 나누기> 중에서

텃밭에서 언어를 줍는 수필가 배귀선, 그의 눈은 날카롭고 생각은 깊다. 그가 풀어내는 수필은 다채로운 예화로 설득력을 갖추었다. 독자는 나긋나긋하면서도 언중유골(言中有骨)의 문장력에 말려들어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수필가 배귀선, 그를 언어의 마술사라고 하면 혹 탓하는 이가 있으려나?

*맛으로 마음을 달래주는 곳(허해순)

화자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 전주의 맛을 소개한 수필이다. 한벽당의 오모가리탕은 예나 지금이나 전주의 이름난 민물고기 매운탕이고, 우주를 상징하는 오방색의 전주비빔밥은 지금도 누구나 즐겨 찾는 전주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다.

내 탯줄이 놓였던 곳,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던 곳, 풋사랑의 설렘이 남아있는 곳,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불러주던 곳, 멋이 맛이요 맛이 멋인 그곳에 다녀오면 나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 힘으로 이웃과 그리고 더 아픈 이웃에게 내 고장 맛을 나누며 함께 살아갈 것이다.

<맛으로 마음을 달래주는 곳> 결미

화자의 고향 전주를 이보다 더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작품 어느 곳에도 '전주'라는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는 독자라면 대뜸 '전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이 작품의 묘미다.

*베드로 신부님의 스웨터(송병운)

화자의 아내가 장롱을 정리할 때 베드로 신부에게서 받은 분홍색 스웨터가 눈에 띄었다. 오래 전 그 스웨터를 입은 신부에게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했다. 그 칭찬을 들은 베드로 신부는 같은 스웨터를 사려고 백화점을 찾아다녔으나 구할 수 없자 자기 옷을 빨아서 화자에게 건네주었고 화자는 그 옷을 즐겨 입었다. 그 스웨터에는 신부의 따뜻한 마음이 스며있다. 그 신부는 누구에게나 주고 싶어 하며 사는 분이었다.

머리숱이 적은 사람을 보면 모자를 사다주고, 운동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만보기를 사다주며 부지런히 걸으라고 하셨다.

<베드로 신부님의 스웨터> 중에서

그 신부는 성당에서 어떤 사람이 시간을 물어보자 시간을 알려주면서 시계까지 풀어준 분이다. 그 신부가 10여 년 전에 세상을 떴지만 화자는 그 신부를 떠올리며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기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자신을 반성한다. 그 신부는 공개된 유언장에서 자신의 소유물은 모두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의 육신은 장기를 필요로 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시신은 대학병원 의학실험용으로 사용한 뒤 나중에 화장하여 산천초목에 뿌려서 거름이 되게 해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 신부의 시신은 의학실험용으로 활용한 뒤 화장은 하지 않고 성직자묘지에 안장했다. 화자는 그 묘소를 찾을 때마다 자기와 자기 가족을 도와달라고 기도했는데 이제부터는 남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지혜와 깨우침을 달라고 부탁드리겠노라고 다짐한다. 이웃을 사랑하고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수필이다. 화자는 남을 보는 눈을 지닌 수필가다.

*폼페이는 아직도 숨 쉬고 있다(서상옥)

화자가 2500년 전에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한 순간에 멸망한 폼페이의 유적들을 둘러보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친 기행수필이다. 농부가 우연히 발견한 폐허 폼페이는 현재 2/5가 발굴되었는데 당시 귀족들의 생활상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보여준다. 화산재에 묻혔다가 모습을 드러낸 폼페이는 지금 옛날의 비극을 잊은 듯 외국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황금 밭이 되고 있다. 그걸 본 화자는 폼페이는 멸망했어도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숨 쉬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화자는 사회와 역사를 보는 눈을 갖고 이 작품을 쓴 것이다. 자상한 묘사가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습관이나 고정관념이란 굳은살을 떼 내면 늘 보던 사물들도 새롭게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멀지만 가까운 나라, 터키(최기춘)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기행수필이다. 터키가 왜 우리나라와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인지를 깨닫게 하는 수필이다.

영어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역사를 잘 가르치고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할 것 같다. 지구상에 우리나라를 1400년간 잊지 않고 피로 맺은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는 나라가 터키 말고 또 어느 나라가 있겠는가? 그런 나라가 있다는 사실에 퍽 기분이 좋았고 마음까지 든든했다.

<멀지만 가까운 나라, 터키> 중에서

기행수필이 문학성을 얻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터키의 역사, 신화, 예술, 관광 등을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소개하여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독자로 하여금 터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깨닫도록 설득하고 있다. 서두와 결미 역시 깔끔하여 독자의 눈길을 머물게 한다. 기행수필의 본보기 같은 작품이다.

*편지1(최정순)

50여 년 전의 여자중학교 교실과 교무실 분위기를 잘 그려낸 수필이다. 여중 3학년생인 화자가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갖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장면 묘사가 독자의 웃음을 자아낸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무서웠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무서웠다. 하물며, 쉬는 시간 선생님들이 자리에 다 계시는 교무실로 불려가는 일은 끔찍한 일이다. 교무실 출입은 규율을 어긴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갑자기 호출명령을 받은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편지1> 중에서

두근두근 화자의 심장 뛰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성싶다. 군대에 간 남자의 편지를 은밀히 건네주는 담임선생님의 속 깊은 마음과 어머니한테 그 편지를 들켜 자다 말고 야단을 맞았던 달콤한 추억을 되새긴다. 그런 옛날이 다시 돌아온다면 어머니한테 야단을 맞는다 해도 답장을 쓰겠다는 화자의 마음이 애틋하다. 다만 왜 갑자기 50여 년 전의 이 에피소드가 떠올라 수필을 쓰게 되었는지 그 동기가 아리송한 게 아쉽다.

*이삭꽃(허문정)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무덤처럼 낮게 내려앉은 젖가슴에 쪼글쪼글한 젖꼭지를 부표처럼 안고 있다. 건포도를 연상케 하는 젖꼭지는 생의 꼬투리 같기도 하고 욕망의 마지막 방울로도 보였다. 아무리 마중물을 부어도 솟아오르지 않을 젖샘이지만 소중히 지키고 있는 젖꼭지가 성스러웠다. 제 몫을 다하고 이삭처럼 고개를 숙인 젖꼭지가 순간 꽃의 의미로 다가왔다.

<이삭꽃> 중에서

화자가 목욕탕에서 할머니의 등을 밀어드리다 발견한 젖꼭지다. 적절한 비유법과 연상력을 가미한 묘사가 일품이다. 젖꼭지를 부표, 생의 꼬투리, 욕망의 마지막 방울, 솟아오르지 않을 젖샘, 꽃의 의미, 이삭꽃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요 해석이다. 화자야말로 비유법의 명수다.

할머니의 젖꼭지에서 발화한 이야기는 아기머리만한 어머니의 젖무덤을 떠올리고, 다시 '노인과 여인'이란 명화의 이야기로 화소(話素)는 확대된다. 그리고 '여자의 젖은 거룩한 생명수'라고 결론을 내린다. 어느 독자가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자의 몸에서 꿀 같은 젖이 흐르는 시기가 최고의 절정기'라고 강조한다. 그때가 바로 출산기이니 여성으로서는 가장 화려한 시절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삭꽃이란 가상의 꽃 이름까지 창안한 화자의 수필상차림은 푸짐한 성찬(盛饌)이다. 비유법과 연상력, 상상력은 수필을 맛깔스럽게 꾸며주는 양념임을 일깨워준다.

수필, 그것은 나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의미화 시켜야 제 맛을 내는 요리라고 하겠다.

출처 : ♣전북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전북위원회
글쓴이 : 두루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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