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ures at an Exhibition
무소르그스키 / 전람회의 그림
1. Promenade
2. Gnonus
1곡 - 난쟁이(Gnomus): 곱추인 난장이를 묘사한 곡입니다. 키가 작고 추하게 생겼으며, 짤막하고 부자연스런 다리로 아장아장 뛰어 다는 기분이 든다.
3. Promenade
4. The old Casstle
2곡 - 옛성 (Il vecchio castello): 중세기의 몇 백년이나 오랜 된 성이다. 돌로 쌓은 탑 앞에서 고요한 밤에 젊은 음유 시인이 그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발라드를 부르고 있는 그림이다.애조를 띤 멜로디가 파곳 악기에 의해 도입되며 색소폰이 연주되는 등 서정적인 선율이 흘러 내린다.
5. Promenade
6. Tuillerien Dispute d'enfants apres jeux
3곡 - 튈르리 궁전의 공원 (Tuillerien Dispute d'enfants apres jeux): 장난하는 어린이들의 다툼. 파리의 튈르리 궁전 마당에서 아이들이 놀며 다투며 노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프랑스 제정 시대에 파리에 있던 궁전이었는데, 이곳은 파리의 세느강에 임한 아름다운 공원이다. 지금은 지난 날의 궁전의 일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루브르 미술관으로 되어 잇다. 여기서는 이 정원의 푸른 잔디 위에서 놀고 있는 명랑한 풍경들을 묘사한 멜로디로서 잘 표현되어 있다.
7. Bydlo
4곡 - 우차 (Bydlo): 커다란 바퀴를 가진 구식 폴란드의 우차가 광활한 평원을 흔들리며 가는 풍경입니다. , 비들로라는 것이다. 그림에는 큰 바퀴가 달려 있는데, 두 마리의 소가 끌게 되어 있는 바퀴 소리와 육중하게 걷는 소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차는 점점 가까이 왔다가 앞을 지나 멀리 사라진다.
8. Promenade
9. Ballet of the unhatched Chicks
5곡 - 알 속의 아기새의 춤 (Ballet de poussins leure coques): 이것은 하르트만이 발레를 위하여 만든 무대 장치의 그림을 음악화 한 것이다. 아직 껍질 속에 있는 병아리가 삐약거리며 주둥이로 껍질을 쪼으며 발버둥치고 노는 모습을 그린 아주 귀여운 무용 음악인데, 참으로 짜임새 있는 작품이다.
10. Samuel Goldberg and Schmuyle
6곡 -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시뮈일레 (Samuel Goldenberg et Schmuyle): 여기서는 두 사람의 유태인 인물이 묘사되고 있는데, 그것은 폴란드의 대표적인 두 사람의 유대인으로 이것은 그가 특히 정성을 들인 제목의 소재라고 하겠다. 여기에 나오는 사무엘은 아주 훌륭한 남자인데 부자이고, 시뮈일레는 가난한 사람으로 조금 아첨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나중 음악에는 사무엘이 시뮈일레의 경박한 행동에 참을 수 없어서 한 대 때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11. Limoges le marche
7곡 - 리모즈의 기상 (Limoges - le marche): 이 지방은 프랑스의 중앙부에 있는 시골 도시이다. 물건을 사는데 바쁜 여성들의 모습이 보인다.
12. Catacombs
8곡 - 카타콤베 ; 옛날 로마시대의 무덤 "해골의 동굴"(Catacombae Sepulchrum pomanus): 송장과의 대화. 이 곳은 옛날 그 리스도교를 처음으로 믿던 신자들의 무덤이 많이 있는 곳이다. 카타콤베가 로마에서는 특히 유명하지만 이것은 파리에 있는 것이다. 옛 신도들이 부르던 찬송가의 소리를 연상케 한다. 여기서는 관악기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보행 주제는 b단조로 연주되는 음산한 성격변주로 무소르그스키는 여기에 "송장과의 대화"라는 표제를 주고 있습니다.
13. Con mortuis in lingua Mortua
14. The hut on fowls legs
9곡 - 바바야가의 오두막집 (La cabane sur des pattes de poule): 음악은 시계 소리로 묘사되고 있다. 하늘을 나는 바바야가를 중심으로 하여 귀신들이 춤을 추는 악마의 잔치로 된 환상을 그렸는데, 이것은 작곡가의 위대한 상상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바바야가란 러시아 신화에 나오는 마녀를 말합니다.
15. La grande porte de Kiev
10곡 - 키에프의 대문 (Le gradne porte de Kiev): 하르트만의 원화는 고대의 러시아 양식에 의한 키에프시의 대성문의 설계도 입니다. 이 대문은 옛날 러시아의 웅대한 건축양식으로 된 것인데, 이 건축을 위해 하르트만은 설계도를 그렸다. 프롬나드와 흡사한 테마가 변주곡으로 시작된다. 러시아 군대들이 개선하여 돌아오는 모습을 그의 환상으로 묘사해 낸 그럴 듯한 음악이다. 나중에 탑 위에서 엄숙한 종 소리가 들려온다.
무소르그스키는 ‘쿠치카(억센 무리)’란 러시아 국민음악파 5인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러시아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포함한 여러 관현악곡과 피아노곡들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가장 사랑을 받는 것은 <전람회의 그림>이다. 이것은 본래 피아노곡이지만, 프랑스의 인상파 작곡가인 라벨이 그림 같은 관현악으로 편곡한 것이 더 많이 연주되고 있다.
이 걸작 <전람회의 그림>은 우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무소르그스키가 속해 있는 러시아 국민음악파 5인 그룹을 끔찍이도 떠받들던 건축가이자 화가인 빅토르 하르트만이 31세라는 젊은 나이로 갑자기 사망하자 그 이듬해 하르트만의 예술을 사랑한 사람들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그의 유작전을 열게 된다.
여기에는 하르트만의 스케치·건축 설계도, 그 밖의 여러가지 디자인 등 모두 4백여 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하르트만은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을 높이 평가해 주고 진심으로 격려해준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무소르그스키는 이 전람회에서 하르트만을 추모하는 10점을 뽑아 피아노곡으로 삼게 된 것이다.
첫째 곡 <난쟁이>는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워 보이는 괴상한 난쟁이의 뒤뚱거리는 모습, 둘째 곡 <옛 성>은 중세 이탈리아의 옛 성에서 음유시인이 애인을 위하여 세레나데를 부르는 모습, 셋째 곡 <튈르리 궁전, 어린이들의 다툼>은 파리에 있는 튈르리 궁전 정원에서 아이들이 장난하다가 다투는 광경, 넷째 곡 <소달구지>는 거친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폴란드의 바퀴 큰 달구지, 다섯째 곡 <달걀 껍데기가 붙은 병아리의 춤>은 하르트만이 발레 의상을 위해 그린 작품에서 힌트를 얻어 작곡한 병아리의 춤, 여섯째 곡 <사뮤엘 골덴베르크와 슈밀레>는 절구통처럼 뚱뚱하고 거만한 부자 사뮤엘과 깡마르고 비굴한 가난뱅이 슈밀레와의 대담, 일곱째 곡 <리모주의 장터>는 프랑스 소도시 리모주의 시장 풍경, 여덟째 곡 <카타콤>은 화가가 호롱불을 들고 고대 로마시대의 지하 분묘를 찾는 정경, 아홉째 곡 <바바야가의 오두막>은 러시아 전설에 나오는 마귀 할머니인 바바야가가 사는 집, 열째 곡 <키에프의 성문>은 고대 러시아 양식의 둥근 지붕 모양을 한, 유서 깊은 소(小) 러시아인의 대도시 키에프의 큰 성문을 나타낸 것이다.
<전람회의 그림>은 10곡으로 되어 있지만, 중간중간에 전주와 간주의 구실을 하는 프롬나드 (산책이라는 뜻)도 연주된다. 이 모음곡은 배열도 매우 훌륭하지만 독창성이 넘쳐 흐르기 때문에 1백여 년이 지난 현대에도 새로운 시대 감각을 느끼게 한다. 무소르그스키는 국민음악파 5인 그룹이 거의 다 그렇듯이 정규적인 음악 수업을 받지 않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었지만, 일찍이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워 7세 때 리스트의 피아노곡을 치고 9세엔 존 필드의 피아노 협주곡도 칠만큼 천재성을 보인 바 있다. 이같은 자질이 나중에 <전람회의 그림> 같은 최대 걸작을 낳은 것이다.
오늘날 이 곡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대 지휘자인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의 위촉을 받고 관현악 조곡으로 편곡해서 1922년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뒤였다.
전곡은 10편의 음화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전람회장에서 진열순으로 연주된다. 먼저 보행의 주제에 의해서 시작된다. 이 보행 주세는 그 뒤에 오는 각 곡 사이에서 연주되면서 전람회장의 작품에서 작품으로 옮겨지는 보행을 나타내며 동시에 관람자를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제는 끊임없는 박자의 변화로 러시아 음악의 특성을 보여주는데, 그림 하나하나에서 받은 작곡가의 인상이 그대로 보행주제 위에도 반영된다.
Musorgsky, Modest Petrovich, 1839.3.21~1881.3.28 러시아
19세기 낭만주의 음악 후반에 러시아에서는 국민 음악 운동이 일어났다. 슬라브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음악을 건설하려는 기운이 감돌았는데, 그 운동의 중심은 이른바 5인조에 의해 이루어졌다. 무소르그스키도 그 주요한 멤버 중의 한 사람이었다. 처음 그는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7세 때에 벌써 리스트의 소품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13세 때 근위 사관 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 프레오브라젠스키 수비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군 병원에서 군의관이었던 보로딘과 알게 되었고 큐이, 발라키레프 등과도 교우를 맺었는데, 그 후로 그는 발라키레프에게 작곡을 배웠다. 22세 때 그는 군에서 떠나 음악에 전념하였는데, 1860년에 작곡한 오케스트라곡을 연주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는 친구들의 충고를 받기는 했지만, 사실 음악은 독습하다시피 하여 실력을 쌓았던 것이다. 그는 교향시 [민둥산의 하룻밤]으로 음악인으로서의 기초를 완전히 닦았다. 1863년 그는 5인의 동지들과 공동 생활을 하였는데, 2년 동안의 생활이 그의 생애를 통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의 창작 활동이 원숙해졌을 때에 생활고로 인해 다시금 체신부의 관리가 되었다. 한 때 그는 고민한 나머지 알콜에 중독되었으나 전지 요양을 통해 다시금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갔다.
다시 그는 궁내성 산림과에 근무하면서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쓰기 시작하였다. 1871년 여름, 그의 친구인 건축가 빅토르 하르트만이 죽었는데, 그 친구가 남긴 작품의 전람회에서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피아노 곡집 [전람회의 그림]을 작곡하였다. [보리스 고두노프]가 공연된 이후 그는 옛 친구들로부터 떠나 다른 주석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 그는 관리 생활을 중지하였고 경제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1881년 2월, 돌연히 발작하여 병원에 입원했다가 더 악화되어 작고하였다.
그는 5인조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곡가였다. 거의 독학으로 공부한 그는 음악적인 천분과 러시아 민요의 표현 요소 등을 소재로 하여 가장 우리들과 친숙하고 진실한 음악을 작곡하였다. "예술은 그 자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하여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말이란 음악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음악의 연주는 감정을 높이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담화와 억양을 표현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는 유렵의 고전 음악의 전통에 반항하여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는 그의 대표작인데, 거기에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표현주의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는 30세기 초의 서양 음악의 동향을 미리 암시해 주었다고 하겠다. 비록 그의 작곡 기교는 유치했지만 샘과 같이 솟아 나는 즉흥적인 착상과 드라마틱한 연출은 비범하며 비할 바 없는 미묘한 감각을 간결한 수단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생각한 바의 줄거리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전개시키는 재능이 부족한 것이 그의 약점이다. 그의 음악은 심도 깊은 우울함과 격렬한 정렬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말하자면 그는 근대 러시아가 낳은 가장 독창성이 풍부하고 야성적인 현실주의 작곡가로 천품을 나타낸 작곡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