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詩

향수/정지용 시

영관님 詩 2012. 4.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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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지용-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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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 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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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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