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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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면 시장에서나 길거리 노점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봄동이다. 봄동은 노지에서 눈바람을 맞으며 겨울을 이겨낸 납작한 배추를 말한다. 봄동은 일부러 봄에 먹기 위해 늦가을 씨를 뿌려서 재배한 것도 있지만, 김장용 배추씨를 심을 때 거름기 있는 두둑에서 자라지 못하고 토심도 얕은 도랑에 떨어져 뿌리를 내렸으나 제대로 자라지 못해 김장용에 들어가지 못하고 버려져 겨울을 이긴 것도 있다. 예전엔 겨울에 산에서 땔나무를 한 짐 지고 내려오다 배추밭을 지나면 그곳에 지게를 받치고 버려진 푸른 배추를 뽑아서 먹곤 했다. 노랗게 속이 차오르지도 못하고 눈을 맞고 서리를 맞으며 온 가슴을 드러내놓고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자란 배추는 생김새와 다르게 달고 부드럽다. 추운 세상을 견딘 배추일수록 단맛과 부드러움이 더하다. 이 봄동은 겉저리를 해도 맛있고 된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전라도 남해안 가까이 사는 사람들 입맛에는 멸치젓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요즘 5일장 주막에 가면 영락없이 봄동을 씻어 내놓는다. 그것 만으로도 막걸리 안주는 제격이니 가난한 사람들 안주값이 따로 들지 않아서 좋다. 김점순 시인의 동시 '봄똥'을 읽으며 눈시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할머니가 시장에 다녀오시면시면서 지난 날 맛있게 먹었던 푸르고 납작한 봄동을 기억하곤 손자에게 먹이고 싶은 생각에 사서 장바구니에 담는다. 집에 돌아와 한 잎 한 잎 따서 잎에 묻었을 흙을 깨끗이 씻어내곤 손자를 불러 앉혀놓고 먼저 이름을 가르쳐 주며 젓갈에 찍어먹는 것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손자는 어쩐지 그 맛보다는 이름이 재밌다. "봄동"이란 이름이 "봄똥"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 발음을 해보니 자꾸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고구마를 먹으면 삶은 고구마 색깔처럼 노랑색 똥을 싸고 푸른 매생이를 먹으면 똥도 푸른색이듯 연둣빛 봄동도 먹으면 똥도 연둣빛 똥이 나올까 상상을 한다. 이 얼마나 다정스럽고 즐거운 분위기인가. 짧은 한 편 그림동화를 보는 것 같다. 김점순 시인은 보성군 벌교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교직에 근무하던 중 뇌경색으로 쓰러져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기어이 일어서서 어린 학생들 곁으로 가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병마와 자신과 싸웠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 지금은 다시 학생들 곁으로 가서 해맑은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직 몸이 완치된 것은 아니다. 교육계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는 그녀를 인간 승리자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동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나 독자에게나 큰 기쁨이 아닐수 없다. 그녀에게서 봄동의 맛이 우러난다. ◆ 김점순 시인 약력 ◆ - 2004년 아동문예에 "탱자꽃" 외 1편이 당선. 갑작스런 병환으로 쓰러졌으나 끈질긴 재활노력과 치료로 다시 교단에 섬. 2009년 '사람의 깊이'에 "가을운동회" 외 4편을 발표하면서 다시 작품활동 시작 - 선율: Bandari 명상. - 사진출처: 순천시청 야생화님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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