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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학(文學)과 통섭(通涉)/수필

영관님 詩 2013. 7. 15. 19:08

문학(文學)과 통섭(通涉)/수필

 

                                      화곡 김찬수(華谷 金燦洙)

 

 

 

‘우리가 죽을 때 역사가 던지는 네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 할 수 있어야 한다.'

 

1. 당신은 용감(勇敢) 하였는가?

2. 당신은 총명(聰明) 하였는가?

3. 당신은 성실(誠實) 하였는가?

4. 당신은 헌신(獻身) 하였는가?

 

이 말은 자유민주주의 시민의 상징으로 기록 된 신념의 젊은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말이다. 자신을 포함한 미국 국민들에게 던진 말이다. 그는 1960년 44세의 나이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대개 용감하다 라는 뜻은 정의로운 삶을 살고 불의에 굴복치 않으며 의로움에 망설임 없는 자세를 일컫는 말이다. 주어진 각자의 인생 여정에서 총명함이 흐리면 분별력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성실한 자세로 매사에 임하는 사람은 곧 창조질서에 올곧게 순응하는, 자기가 할 일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꾸준한 태도를 말한다. 내 자신을 스스로 사랑치 않고 주어진 맞닥뜨린 일에 충실하지 못하고 가정의 믿음직한 일원이 되지 못하고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이웃과 함께 손잡지 못 하면 그런 주인공들은 나라 사랑의 역군이 랄 수 없다 하겠다.

 

특히 오늘 날 같이 이념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이념국 체제가 야금 야금 도전 받는 나라의 위기가 온 상황인데도 '너나 나가서 걱정하며 애나 써라, 나는 뒤에서 눈치나 보며 몸조심이나 하겠다' 라고 모두들 뒷켠에 물러나 뒷짐이나 쥐고 멀거니 서서 한 통속이 되어 나태한 지경이 된다면 이건 곧 말세현상이라 할것이다.

 

이 상황에선 이상이고 정의이고 진리이고 뭐 간에 희망적 우국의 기상을 확인하며 갈망하여 찾기엔 애시당초 이미 다 글렀다 할 것이다. 사상적으로 나라의 존망이 위협 받는 위기 땐 나라를 지키는데 날카로운 과(戈). 극(戟)보다 우국지사 문인들의 붓끝이 더 무섭다 하였다.

 

중국 전한 무제 때 사마천(司馬遷)(B.C. 145~86?)은 전장에 나가 포로가 된 장군 이릉(李陵)을 두둔 하다가 궁형(宮刑)을 당하였다. 당시 남자로선 가장 끔찍한 궁형은 형을 받은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묵시적 의미가 있었다 한다. 그러나 사마천은 죽지를 않고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가르침을 마음 깊숙이 지니고 실의(失意)를 누지르고 20여 년간에 걸쳐 당시로 부터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중국의 새로운 장르 통사격(通史格) 역사서를 무려 오십 이만 육천 오백언 인 글로 130편에 달하게 편찬하여 당당하게 만천하에 내 놓았다. 그의 고통속의 심정과 역사에 대한 불굴의 정열은 벗이기도 한 임안(任安)장군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수되어 내려온다. 그의 불후(不朽)의 대작은 위대한 역사서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사적으로도 오늘날까지 동양 최대의 걸작을 남기었다.

 

사마천은 그 자신에 용감하였고 소시적 부터 스스로 총명을 잃지 않고 고문(古文)으로 된 전적(典籍)을 통독(通讀)했으며 중국 천하를 주유(周遊)하면서 사적(史跡)을 찾아다니며 견문을 성실하게 넓혔었다.

 

그는 아버지와의 학문적 약속을 지켰고 역사서를 통한 중국천하 만민을 일깨우는 작품을 남겼다. 아울러 국가 통치자들과 국가업무 종사자들과 백성들의 삶이 어떠했다는 과거의 사례를 간증하는 형식으로 이에 얽힌 인간만사 세태 흐름을 다시 조명하여 후대 오늘날까지 다시 찾아 읽어 보지 않으면 아니 될 명 저서를 통한 역사 속에 숨 쉬는 단절 되지 않은 소중한 이야기들을 기록하여 만민이 찾는 명저서 중 제일가는 역사서 편찬자로서의 귀감이 되는 표양을 보여 주었다.

 

사마천은 창조주가 그에게 쥐어 준 삶이 누명으로 얽흐러 졌을때 대개의 사람들처럼 나약한 범인(凡人)이라면 혹독한 형벌이후 누구라도 포기했을 삶인데 그는 분연히 일어서서 후대인을 위하여 문장으로서 남김 없이 헌신(獻身)하였다 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유(思惟)를 글로서 남기고자 한다. 글로서 남기고자 함이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글쓰기가 좋아서 재주나 펴 보려 함인가, 남이 쓰지를 못하니 내 능력을 돋보이려 함인가, 생업에 허덕이며 호구지책을 모색하려 함인가, 명리에 혹해 입신 수단으로 드날리려 함인가?

 

고구려 영양왕 때 호국의 장군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수나라 양제에 ‘신비한 계책은 천문을 꿰뚫고 오묘한 계산은 지리를 다했다. 전쟁에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원컨대 족함을 알고 그침이 어떠랴’(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라는 5언 시를 지어 보낸 뒤 적군의 작전을 조롱하며 수나라 대군을 살수 대에서 격퇴시키며 양제의 기를 꺾으며 조국을 지켰다. 신라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당(唐)나라에 초빙되어 황소격문(黃巢擊文)을 지어 그 문장의 위엄이 산천초목을 떨게 하여 반란군 기세를 억눌렀었고 려말(麗末) 포은(圃隱) 선생은 단심가로 그의 조국과 목숨을 함께 하는 충신의 모습을 후대에 남겼고 조선조 초기 사육신 성삼문은 어진 임금 단종에게 충성하는 신하의 도리를 읊어 만인이 지녀야 할 군신간의 선비정신 곧 의(義)로움을 후대인에게 일깨웠다.

 

평화로운 시대 조선 성.명종 조 때 명기 황진이는 임 그리는 글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하는 노래로 임 그리는 마음을 붙들어 주며 타들어 가는 애절의 시(詩)로 만인을 공감케 하는 노래를 불렀다.

 

조선 말기 대한제국 대신 민영환(閔泳煥) 선생은 나라 잃음에 격분하여 '鳴呼 ! 國恥民辱乃至於此(오호 국치민욕 내지어차 : 아아!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구나!)'.... 라 유서를 남긴 뒤 충신이 어떠해야 되는지의 표양을 자결하는 모습으로 후세인을 가르쳤고 대한제국 우리의 장군이며 영웅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는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서 적을 무찌르려 의지를 쌓았더니

이제야 뜻한대로 좋은 때를 만났구나.

때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때를 만나는가?

북쪽바람 차기도 하나, 내 피는 뜨겁구나.

쌓았던 원한을 한번 털어 놓으면, 어김 없이 꼭 좀도적을 잡으리라.

우리 동포 형제자매들아, 이 공업을 잊지 말라.

만세 만세 만만세, 대한독립 만만세.

 

大丈夫處世兮여 蓄志當期러니

時造英雄兮여 英雄造時인가

北風其冷兮여 我血則熱이라

慷慨一去兮여 鼠賊必殺이라

同胞兄第兮여 毋忘功業하라

萬歲萬歲兮여 大韓獨立萬萬歲라.

 

라고 읊으며 호국의 의지와 충혼을 간절한 소망의 마음으로 불태우고 조국 광복을 이루고자 이국 하얼빈 기차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하여 그의 혼백을 없애 버려 대한인의 기상을 만방에 드날렸다.

 

문장에는 인간 사유가 담겨 있다 하였다. 쓰여진 문장에 따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눈 여겨 보며 깊은 밤하늘 은하수 여기저기 살피다가 우주를 찬미케 되고 과연 인간이 무엇이고 내가 또한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 생의 존재를 다시 조명해 보는 계기를 풍요롭게 사유하게 된다.

 

문학의 품에 안겨 서로 간의 오고 감이 있기에 인간관계의 오묘함을 음미해 보지 않고는 배겨날 수가 없다 할 것이다. 문학의 궐문 안에 들어서서 아름다운 마음들이 통 할 때 만이 서로서로의 마음이 얽혀 자신의 나약함을 깨우치며 이를 극복해 떨쳐 버리는 희망적 약진의 새로 창조 되는 삶을 힘차게 불러 일으켜 희망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사람으로 태어나 서로 간 사귀며 오고 감이 없으면 곧 사회적으로 통섭(通涉)의 삶이 이루어 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사명감을 지녀야 할 문학은 서로 간 상통하는 언어의 이치에 합당하게 기록 된 문장에 준거하여 상호간 인생의 삶을 가장 아름답고 풍요롭게 최상의 경지까지 이끌어 올리는 데에 그 큰 역사적인 인류발전에 기여했다는 뜻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러기에 인류는 문학에 의지하여 온갖 학문이 서술되고 인류가 발전하는 기틀이 심어져서 그 깊이가 간직 되고 모든 삶의 사실이 희노애락 가운데 만인의 심금을 그때그때 마다 합당하게 어울려 공명해 주었다. 곧 함께 불러 퍼지는 대 합창의 장이 연출 되는 것이다.

 

문장으로 일으키는 함성으로 서로가 어울리는 생의 희열을 공감치 못하게 되는 삶이 있는 곳이 있다 라고 하면 거기에는 문학 울타리에서 통섭의 보편적인 정신이 빠진 사람끼리 머무르며 메마른 사막가운데서 방향 없이 윤기도 없게 끝없이 모래알 파헤치기 목적 없는 칠흙 같은 삶의 장을 연출하게 될 뿐이다.

 

우리사회를 이끌어 가는 건실한 문학이 사회적으로 평화롭고도 의롭게 화통되는 가운데, 당당하며 반듯하게 세워질 때 만이 문학적 생명은 인간문화를 풍요롭게 한다 할 것이다.

 

그리고 만변하는 세파에서 인간관계의 어긋난 조화와 비틀거리는 국가의 걷잡을 수 없게 비뚤어지는 누란지석의 상황에서는 문학의 사명은 세인으로 하여금 대의(大義)를 불러 일으켜 세인들로 하여금 목숨을 내 놓고 위급을 지키는 용력을 일으키도록 보편적 생의 가치를 널리 펼처 엮어가는 상호 자랑스런 공영(共榮)의 장으로 이바지 하는 본질(本質) 이라 할 것이다.

 

2012. 8. 1. 춘천에서 대정수 포럼 공동대표. 화곡 김찬수.

 

<약력>

교육경력 중등학교 33년 봉직(교감)

옥로문학 시부문(2005). 문학세계 수필부문(2007) 등단.

한국 공무원 문학협회 부회장.

강원문인협회, 춘천문인협회, 세계 문인협회, 강원한국수필문학 회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강원협의회 운영위원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출처 : 사회
글쓴이 : 김찬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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