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집

[스크랩] 고향마을 물오르는 정자나무

영관님 詩 2011. 5. 7. 19:11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2동 중리 마을앞 우리 밭둑에는 수령 약 200년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살고 있다.

원래 이 나무는 두 그루 자라면서 서로 한 몸이 되어 붙어버렸다고 한다.

이 나무는 동네의 수호목이요 성황목으로서 사람들은 그냥 정자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매년 정월 열나흘 밤에는 동네의 안녕과 무사를 기원하는 동고사를 지금까지도 지내고 있다.

그 옛날 아들을 못낳고 딸만 낳던 우리 큰집의 재종숙모는 밭둑아래 숨어 있다가

동고사 제례의식을 마치고 동리 제관들이 돌아가자마자

부리나케 고사 불종지를 품어갖고 집으로 돌아갔다는데

그리하여 실제로 내겐 8촌 동생뻘이 되는 아들 윤상 3형제를 내리 낳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재종숙모한테 직접 들은 바가 있다. 

 

 

沙村詩篇  66 
- 또 정자남껄 

김 진 중

정월도 열나흗 날 
붉은 찰밥 수수팥떡에 오만 귀신들 
꽁지 빠져라 놀래 달아난 밤. 

달빛에 명두루막 푸르레 젖은 
동리 제관의 고유문 소리, 
흰수염 금줄 끄덕여도 봤지. 

암, 암메, 
저마다 부정탈 입방정 오두방정 
어디 한두 번 떨었으랴만 
고사 불종지 품어간 아낙 고 정성 기특해, 
눈감고 점지해준 아들놈들이, 암, 한 두 집인감. 

고놈들, 여름이면 고추불알 달랑거리며 
내 품에 안기고, 팔에 매달리고, 
눈에 선한 놈들. 

이제는 뿔뿔히 대처로 떠나가고 
나도 이젠 늙었나보이, 
속도 허하고 팔다리도 저려. 

한목숨 살다보면 
볼것 못볼것, 있는 말, 없는 말,

하, 많고 많지만. 

앞냇가 물소리에 귀를 씻고 
밤별빛으로 눈씻고 나면 
저 쪽 구름밖 머언 원뢰소리, 
흐르는 이승가, 낮은 바람소리.


단오 때에는 굵은 동아줄로 된 커다란 그네를 매달고

아이들을 위한 작은 그네도 매달아 그네를 탔는데

특히 갓 시집온 새댁이나 마을 처녀들이 그네를 탈 때는

날리는 치마꼬리와 속치마 아래 하얀 종아리랑, 앞적삼 섶사이

그 보일듯 말듯한 하얀 앙가슴을 훔쳐보느라

어린 우리들은 손에 땀을 쥐어야만 했다.

그날 밤에는 쥐불놀이를 하고 불깡통을 돌리며 늦게까지 놀다가

가끔씩 오줌소태를 하는 녀석들도 한 둘 있었다.

내 고향에서는 그네를 탈 때 처음 뒤에서 밀어주는 것을

'물믹앤다', '물먹인다' 라고들 했으며

그네 타는 것을 '군디 뛴다'라고 말했다.

이 나무그늘은 여름이면 농부들이 오수를 즐기기도 하고

할배들은 장기를 두기도 하고

할매들은 손주들 두엇씩 데리고 나와 시원한 그늘을 즐기기도 했다.

아이들은 꼼도 두며 

이 나무 가지 가지에 원숭이처럼 기어올라가

마치 주렁주렁 과일이 열리듯 나무를 타고 놀기를 즐겼다.

 

 

沙村詩篇 19
 -단오(端午) 

 김 진 중


워어라 군디여
에해라 강산아

물먹여라
물먹여라 

앞산이 오면
앞산에 눕고 

뒷들 부르면
뒷들에 엎드려. 

창포향 살내야
나든동 말든동 

종아리 젖가슴
뵈든동 말든동 

어불랑 붙어서
쌍그네 탈거나, 

아주버님
울아주버님
황천 구만 리
저승도 보여요. 

워어라 군디여.
에해라 강산아.

 

 

고향을 떠난지도 벌써 산천이 몇 번이나 바뀔 세월이 흘러갔지만

단촌에서 청송 방면 지방도인 신작로를 따라

관덕, 뒷뜰(後坪), 송내(松內)만 지나가면

橋洞(다릿골) 입새에서부터 저멀리 보인 정자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제일 먼저 맞이해 주는 것이다.

그것을 마치 그 옛날 내가 객지에서 귀향할 떄 

항상 반갑게 맞아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요,

읍내 자취생 시절, 토요일 저물녁

동구밖 버스 정류소에서 날 기다리시던

돌아가신 옛어머니의 모습같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이 정자나무는 아직도 내 서정의 원천이요,

그리운 유년의 따스했던 추억의 한가운데 우뚝 서서

오늘도 말없이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것이다.

 

 

 沙村詩篇 65
- 정자남껄

김 진 중


나 돌아, 돌아가리
해거름녘 긴 그림자 늘이고 서서
울엄니보다 먼저 반기던 *정자남껄 그 곳
옛마을 어귀로…….

이른봄, 봄부터 부지런히 새닢피워
시절 맞춰 단오처녀들 꽃댕기자락 흔들어대다가,
아무런 근심없이 잘도 자란 가지마다 바람을 품어
푸른 그늘속 別有天地를 꿈꾸던 곳으로.

철철이 온하늘빛 점점이 내려
나뭇잎새들 수런거리며 먼 여행길을 예비하던 밤,
오마지 않던 눈빛도 그리워.

이제는 고요롭게 눈발이 내려
찾는 이 없는 세상인심을 가만가만히 헤아려보느니.

잔가지 가지마다 눈꽃을 달고
울엄니 상여, 눈꽃상여를 먼발치보며 속울음 울던
스므남 해 전 그날도 서러워.

나 돌아,돌아가리, 꿈길에라도
마냥 선 채로 날 기다리는 그 품속으로,
정자남껄아래, 그리운 나라로.

-1997. 3. 7.

주 :  '정자나무 거리’. 또는 ‘정자나무 그늘의 거리’란 뜻의 준말.

 

가을이면 미 잘생긴 나무의 수많은 이파리들도 단풍이 드는데

서산 머리에 남은 해가 노을바다에 빠질 때면

그야말로 거룩한 현자나 고승대덕이 다비식을 하듯

엄숙하고도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그래 맞아.

다른 잡목들이나 교목들은 소안배처럼

서로 아웅다웅 어울려서 키재기를 하며 한 철 두 철을 나지만

마을의 수호목이자 나그네들의 성황목, 마을 사람들의 정자목인 느티나무는

어느 모로보나 도를 깨친 선풍도골의 풍모로서 

과연 선인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하등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사촌시편 96

-정자나무․3

 

김 진 중

 

 

불타는 가을느티

다비를 한다,

선인(仙人)이 어찌

무리지어 살랴.

 

생애도 그늘이라

해가 저물어,

서역 9만 리

머리 풀고 간다.

 

- <한국현대시> 2008 가을호

 

 

 인환사 소란스런 저자거리에서나

 온갖 소음으로 점철된 도회의 시정에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껄이기도 하는 어쩔수 없는 현실!

그 현실의 영위를 위해 좌고우면하다가도 이 정자나무를 생각하면

내 마음속에는 한 줄기 따뜻한 샘물이 흐른다.

그것은 마치 성경에서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듯,

귀여운 손자에게 천자문을 가르치고 순장바둑을 가르쳐주시던

인자하신 내 할아버지가 생각 나곤 한다. 

 

<민조시>
사촌시편 97

-정자나무 4

김 진 중

 


동구 앞
할배같은 느티나무와
접바둑을 둔다.

바람 센 오늘따라
세상만사 온갖 이치가
가지를 치고 잎맥을 뻗어
장고(長考)에 들면
명파람이 분다.

드디어 내속이 비어지기 시작한다
돋보기를 벗고 봐도
맏보기처럼 화안한 국면,
북소리 울린다.

할배요
일없니더
또 비겼니더
치수 고칩시다.

 


그리하여 역마살을 달고 사는 나는

족행신이 발동할 때마다 무시로 길을 나서곤 하는데 

먼 산마을 자락에나  시골마을 어귀 어디에서라도

쉬이 할아버지같은 선인(仙人)을 만날수 있었으니

객고의 추회와 향수에 궂이 잠기지 않아도 좋았더라.

 

사촌시편 ․ 113

-정자나무 5

 

김 진 중

 

 

언제나

어디서나

첨 만나 봐도

편안한 옛 할배.



 

 

출처 : 3456.민조시
글쓴이 : 天河愛 金進中 원글보기
메모 :

'애송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섬 1 / 이문형  (0) 2011.06.11
[스크랩] 시인의 노래-윤현순  (0) 2011.05.20
[스크랩] 정월 대보름  (0) 2011.02.17
[스크랩] 김동아 - 인동초  (0) 2011.01.20
[스크랩] 초겨울 일기  (0) 201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