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1 / 이문형
한 뼘만 안으로 들어서도
늘 푸른 안개 자욱한 망망한 섬이 있다.
더구나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쳐져 있어
어느 누구도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다.
섬 기슭에서 또 얼마를 불면으로 서성거렸나
바다 새 울음도 안개에 묻힌
수없이 바위를 할퀴던 파도도 제풀에 지쳐
고독이 고독 곁에 눕는 그래, 박명薄明
어둠이 어둠이 아니고 밝음이 밝음이 아닌
어둠의 시작인지 밝음의 시작인지도 모르는 경지境地에서
안개도 눈에 익으면 맑아진다고
조금씩 조금씩 투명해지는 고독의 깊이
그리하여 자신을 지탱한 몸통이 어느 날
문득, 바닥까지 보이기 시작하면
바다 속보다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눈을 또렷이 뜨고 있는 자신을 대면할 수 있을 때,
새벽 더불어 문이 열린다는
섬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몸속에 그런, 섬 하나 갖고 있다.
「바람 그리기」시편 : 책나무출판사
출처 : 詩로 바람 그리기
글쓴이 : 이문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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