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소설

[스크랩] 추억의 고무신

영관님 詩 2011. 6. 26. 19:59

추억의 고무신 

 

백두현 / 문학미디어 2011 여름호


"언제 이렇게 발이 컸다냐?" "안 되겠다. 엄마하고 같이 장에 가자!" 장을 보러 나서던 어머니께서 그새 너무 작아진 내 고무신이 엄지발가락에 밀려 불쑥 불거져나온 걸 보고 하신 말이다. 내가 살던 고향은 충북 청원군이었다. 도청 소재지인 청주와 인접하였지만 장을 보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래서 충남 연기군의 조치원읍까지 장을 보러 다녔는데 이십 리 길이었다. 어머니는 닷새마다 한 번씩 장에 가셨고 나는 그럴 때마다 마을 어귀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는 게 장날의 하루 일과였다. 그런데 그날은 작아진 고무신 덕에 나도 장 구경을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사주시는 순대도 먹고 국화빵도 먹으면서 어떻게 하루가 지났는지 정말로 꿈같은 하루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내게 검정 고무신을 하나 사 주셨다. 지금은 박물관에나 있을법하지만 그땐 그것도 귀한 시절이라 얼마나 좋았던지 그 먼 길을 날아갈 듯 사뿐사뿐 걸어오며 좋아라, 조잘거렸다.

 

신지않고 들고 다니고픈 새 신을 신고 등교한 첫날, 나는 신발장에 새 고무신을 넣어두면 누군가 가져가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책상 밑에 두고 싶었지만 옆 짝꿍이 냄새 난다고 불평할까 봐 어쩔 수 없이 신발장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가서 잘 있는지 확인을 하였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불안한 예감은 왜 그렇게 척척 맞는지, 마지막 쉬는 시간까지 잘 있던 고무신이 방과 후 신발장에 달려갔을 때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한쪽은 너무 커서 벗겨지고 한쪽은 적어서 안 들어가는 짝짝이 고무신 한 켤레만 덩그러니 신발장에 남아 있었다.  

 

그 다음날 아무리 찾으려 해도 똑같은 색의 검정 고무신은 그게 그거 같고 내 고무신은 온데간데 없었다. 어쩌랴. 나도 눈 딱 감고 새 신을 훔쳐 신고 집에까지 뛰는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가슴이 방망이질했지만 꾹 참고 종례시간이 끝나자마자 나는 가장 새 신을 신고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뛰었다. 그리고 만족한 모습으로 오늘 취한 전리품을 확인하는데 아뿔싸!  검정 새 고무신의 앞에 덩그러니 꽃무늬가 있는 게 아닌가. 그때만 해도 검정 고무신의 남녀 구분은 꽃무늬가 희미하게 있느냐 없느냐 하던 시절이었다. 기껏 훔친 고무신이 여자용 고무신이라니 어떻게 신고 다닐지, 할머니께서 재수 없는 사람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시더니 나 같은 사람에게 하신 말인가 보다. 

다음날 나는 몰래 훔친 여자고무신을 다시 신발장에 반납하고 나로서는 너무도 한심한, 한쪽은 너무 커서 벗겨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서 안 들어가는 그 짝짝이 신발을 또 차지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급하게 취한 신발이 너무 작아서 엄지발가락이 아파 돌려주고, 또 그 다음 날은 너무 커서 자꾸 벗겨져 돌려주면서 이틀에 한 번씩 보기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은 그 짝짝이 신발을 차지하고 말았다. 그래서 일주일쯤 지난 후 나는 새 신을 되찾는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말았다. 새 신만은 못하더라도 비교적 쓸만한 신발이면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흡족하진 않지만 마음을 비우니 그런대로 쓸만하다고 생각한 신발을 훔쳐 신고 집으로 가는데 동네 친구 '종오'가 그 짝짝이 신발을 들고 울상이 되어 있었다. 순간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내가 신발을 바꾼 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였다. 설마 새 신이 아니니 들키지 않겠지? 하고 고무신을 이리저리 살피던 나는 다시 한번 좌절하고 말았다. 고무신의 뒤쪽에 열십자로 칼자국이 나있던 것이다. 분실을 염려한 친구가 표시를 해놓은 모양이다. 아아! 정녕 저 짝짝이 신발이 내 신발이 될 운명인가. 아무리 고민하고 또 고민할수록 도대체 어떤 녀석이 내 신을 가져간 것인지 친구가 아니고 철천지원수 같았다.

 

아픈데도 없건만 웃음이 사라진 내 얼굴과 짝짝이 신발을 번갈아 보시던 어머니는 무슨 말씀을 하시려다가 이내 말씀이 없으셨다. 처음엔 야단을 치실지 알았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시니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록 신발을 찾기 어려워지자 나는 마치 어머니 탓이라도 되는 양 떼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 반에 운동화를 신은 애는 두 명밖에 없어서 훔쳐가도 신지 못하니 차라리 운동화를 사달라고 보챘다. 운동화가 잊어버릴 리 없는 안전화라는 사실을 어머니도 모를 리 없으셨지만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런데 짝짝이 신발을 끌어안고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내게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어머니가 운동화를 사오신 것이다. 나는 뛸 듯이 기뻤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아침마다 늦잠자던 버릇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신발을 지키기 위해 가장 부지런한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지난 주말, 애들과 함께 중국집을 찾았다. 이유는 짜장면을 먹기 위해서다. 큰애가 상이란 걸 받아왔는데 왠지 나의 정서로는 상을 받아오면 짜장면을 사줘야 하기 때문이다. 향수다. 어릴 적 내가 상을 받아왔을 때도 어머니는 짜장면을 사주셨다. 단무지와 함께 한 그릇만 내 앞에 단촐하게 차려졌던 짜장면을 얼마나 빠르게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짜장면보다 피자가 더 맛있는데"라고 투덜거리는 애들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정색을 하시던 어머니 얼굴이 서럽게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짝짝이 신발을 일 년 내내 신고 다녀도 괜찮았을 텐데. 좀 더 끈질기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짜장면 냄새를 싣고 아득히 밀려온다.

출처 : 자유문학회
글쓴이 : 석교/백두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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