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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 고구려음악 -KBS역사기행

영관님 詩 2012. 3. 27. 19:34

역사기행  -KBS 1TV-  일요일,밤11시

http://www.kbs.co.kr/1tv/sisa/histroytour/vod/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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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눈물,스리랑카

동영상http://www.kbs.co.kr/1tv/sisa/historytour/vod/1441126_19896.html

 

고구려음악 대탐사

동영상http://www.kbs.co.kr/1tv/sisa/historytour/vod/1443362_19896.html

 

히말라야를 넘어, 고구려로!

동영상http://www.kbs.co.kr/1tv/sisa/historytour/vod/1444632_198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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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눈물, 스리랑카


★ 방송 : 2007년 2월 25일 (일) 밤 11시 KBS 1TV
★ 리포터 - 송위지 (을지대학교 교수)
★ 연출 - 우종택 PD

세계 최초의 종합병원이 설립된 곳,
소승불교의 종주국으로 인도, 태국, 미얀마 등지에서 건너온
수많은 유학생들이 공부했던 곳,
5천 명의 승려들이 머문 국제대학을 세운
2600년 전의 고대도시 ‘아누라다푸라’가 있는
스리랑카!

  2600년 전의 약탕과 수세식 변기는 당시 뛰어났던 스리랑카의 고대문명을 짐작하게 한다.

찬란했던 옛 번영을 뒤로한 채,
‘인도의 눈물’이 된 스리랑카의 역사를 따라간다.

▶▶ 취재 내용

인도의 남동쪽, 인도양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나라 스리랑카!
국토의 모양이 눈물방울처럼 생겨 ‘인도의 눈물’이라고 불린다.

인구의 70%가 불교를 믿는 스리랑카는 계율이 엄격한 소승불교의 성지로,
옛 부터 불경을 공부하기 위해 미얀마, 타이, 중국, 한반도 등지에서
수많은 승려들이 유학을 온 곳이었다.
곳곳에 사원과 불상을 세워 찬란한 불교문화를 이룬 스리랑카!
스리랑카의 고대 왕조인 싱할라 왕조는 ‘아누라다푸라’에
세계 최초로 종합병원을 세워 약탕과 수술도구를 사용하여
병자를 치료했다.
또한 목욕탕과 수세식 변기를 갖추는 등 놀라운 선진문명을 이루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스리랑카에는 풀리지 않는 오래된 현안이 있다.
바로 불교를 믿는 싱할라족과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 간의 종족 갈등이다.
18세기 말,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 스리랑카는
타밀족과의 갈등으로 유혈 사태로까지 치닫게 된다..
싱할라족과 타밀족 간 분쟁의 역사, 그 뿌리는 깊다.
식민 통치가 빚어낸 눈물의 역사와 고대 스리랑카의 번영!
그 명암의 흔적을 찾아 기행을 떠난다.

▶ 아누라다푸라 - 세계 최초로 병원을 설립하다

‘아누라다푸라’는 스리랑카에 처음으로 왕국을 세운
싱할라 왕조의 첫 번째 수도이다.
수백 년 동안 밀림 속에 파묻혀 있던 이 고대 도시는
1912년 발굴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천 6백 년 전, 싱할라 왕조는 고도로 뛰어난
의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세계 최초로 종합병원을 세워 병자들을 치료했는데,
약을 탄 물에 몸을 담가 치료할 수 있게 약탕을
만들고 의학서는 물론 각종 수술 도구들을
사용하였다.


세계 최초로 설립된 병원

▶ 바위 위에 세워진 철옹성, 시기리야!

왕은 왕궁을 세웠다. 5세기 후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카사파 왕은 동생의
반격이 두려워 바위 위에 왕궁을 지었다. 그러나 결국 카스파왕은 동생의 공격으로
전쟁에 패하고 자살을 택한다.
사자 발톱 모양을 한 거대한 시기리야 입구를 통과하면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절벽 계단이 이어진다. 바위 정상에 위치한 왕국은 바깥쪽에는 인공호수를 파서 해자를
만들고 그 물로 거대한 정원을 만들었다. 시기리야를 통해 고구려의 ‘오녀산성’과
비슷한 구조와 기능을 갖춘 좋은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거대한 바위 왕궁, 시기리야    시기리야 입구에 있는 사자발톱   암벽에 새겨진 천상의 여인

▶ 치밀하게 설계된 계획도시, 폴론나루와

기원전 3세기부터 타밀족에게 침입을 받은 싱할라
왕조는 7번에 걸쳐 수도를 옮기게 된다.
싱할라 왕조가 새로 옮긴 수도, 폴론나루와는
적이 쉽게 침입하지 못하도록 요새화하고
너비 9킬로미터의 거대한 인공호수를 만들었다.
이 인공호수를 통해 도시로 물이 들어갈 수 있도록
수로시설을 갖추었으며,
이것은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폴론나루와의 왕궁터에 있는 7층 건물은 천여 개가
넘는 방들을 갖췄던 것으로 당시 왕궁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폴론나루와의 왕궁터에 있는
7층 건물

▶ 실론티의 고장, 캔디

13세기, 타밀족의 침입으로 싱할라 왕조는
스리랑카의 남부지방에 위치한 ‘캔디’로 수도를
옮긴다.
캔디로 가는 길에 있는 천 미터가 넘는 푸른 산들은
모두 차 밭이다.
‘실론티’로 알려진 홍차는 스리랑카에서 재배되는
것으로, 스리랑카의 옛 이름인 ‘실론’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스리랑카로 강제 이주된 타밀족의 후손이다.


차밭에서 일하고 있는 타밀족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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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http://www.kbs.co.kr/1tv/sisa/historytour/vod/1443362_198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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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작 ]                                                                                  
고구려음악 대탐사

★ 연출 - 김형운 PD
★ 리포터 - 전인평 교수 (중앙대 국악대학 창작음악학과)

인도 곳곳에서 만나는 고구려의 춤과 음악!
고구려악기와 꼭 닮은 인도악기가 굿거리장단을 두드리고
고분벽화에 묘사된 고구려춤사위가 인도춤에 그대로 남아있다!
2천년 전, 드넓은 세상과 교류했던 고구려의 문화!!!
인도, 파키스탄, 중국 등 3개국에 걸쳐
멀고도 험난한 고구려 음악루트를 추적한다.


황해도 안악3호분 / 인도 전통춤 ‘바라따나띠얌’의 발 꼰 춤사위, 고분벽화에 묘사된 모양과 똑같다

제 1편. 인도에서 고구려를 만나다.
[2007. 3. 11(日) KBS 1TV 밤 11:00~11:50]

제 2편. 히말라야를 넘어, 고구려로! 
[2007. 3. 18 (日) KBS 1TV 밤 11:00~11:50]


[제 1편] 인도에서 고구려를 만나다.

중국은 물론 멀리 서역까지 외국과의 문물교류가 활발했던 고구려.
그 내용은 고분벽화에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 취재팀이 주목한 것은 악기와 춤이다.
집안 오회분 4호묘 벽화에 묘사된 고구려악기 ‘요고’는 물론
황해도 안악3호분 무악도에 그려진 독특한 춤사위가
신기하게도 현재 인도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
오랫동안 인도에서 고구려 음악의 뿌리를 찾아온 전인평 교수와 함께
인도 곳곳에서 고구려 음악의 자취를 찾아봤다.

▷ 인도남부 드라비다족, 언어도 악기도 우리와 흡사하다.

인도 남부, 드라비다족이 사는 지역에 가면
‘엄마, 아빠’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드라비다족의 언어인 타밀어에는 우리말과 거의 똑같이 발음되는 단어가
무려 1300여개에 달한다.
언어뿐만이 아니다.
드라비다족의 악기는 고구려악기 ‘요고’와 그 모양이 흡사하다.
요고는 우리나라 장구의 원조에 해당하는 악기로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이들의 악기는 모양뿐만 아니라 그 음색과 박자조차 우리와 매우 비슷했다.

<<왼쪽사진>>밥딜런과도 공연을 했다는 ‘유랑음악’인 바울. 고구려악기 ‘요고’와 유사한 다마로를 연주하고 있다. <가운데>
<<오른쪽사진>>우리의 도드리장단과 똑같은 장단을 연주하는 인도연주가

* 거문고의 모델은 중국 악기가 아닌 인도의 ‘비나’

거문고는 고구려의 왕산악이
중국의 현악기를 개량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중국엔 거문고와 비슷한 악기가 없다.
전인평 교수는 남인도의 대표적 현악기
‘비나’가
거문고의 원조라고 추정하고 있다.
인도에서 손꼽히는 비나 마에스트로를 찾아가
비나 연주를 들어봤다.


전인평 교수가 거문고의 원조로
추정하는 악기 ‘비나’

▷ 인도 고대무용에서
    고분벽화에 묘사된 X자 모양의 춤사위를 발견하다! <1면 사진>

인도의 춤과 음악은 단순히 즐기는 수단이 아니다.
신을 만나고 경배하고 신과 하나 되어 행복을 찾아가는 구도의 과정.
드라비다족의 전통춤 ‘바라따나띠얌’은 수천 년을 이어 온 인도무용의 원조.
무용수의 동작 중에 무릎을 구부리고 다리를 X자 모양으로 교차시킨 춤사위가 있었다.
이는 황해도 안악3호분 무악도에 그려진 춤사위와 똑같다.

 

▷ 인도보다 천년을 앞서 유행한 고구려의 호선무!

취재진은 북쪽으로 가서 또 다른 고구려 문화를 확인했다.
바로, 북인도의 대표적인 춤인 ‘까탁’.
까탁은 고구려춤의 특징으로 꼽는 빙빙 도는 회전 동작을 갖고 있었다.
<신당서>에는 바람처럼 빠르게 도는 것이 고구려 호선무의 특징이라고 적고 있다.
이곳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까탁의 빠른 회전은
중아아시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당대 고구려 문화가 얼마나 국제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델리에서 공연 중인 카탁. 고구려의 호선무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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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편. 히말라야를 넘어, 고구려로!

동영상http://www.kbs.co.kr/1tv/sisa/historytour/vod/1444632_19896.html

 

빠른 회전이 특징인
인도의 까탁
위그르족 전통춤 고구려 춤의 특징인 빠른회전은
인도를 비롯해 위구르족의 전통
춤에서도 보인다.
당나라의 양귀비도 이 춤으로 현종을 한눈에 사로잡았다고 전한다

 

▷▷취재내용

지난 11일 방송된 <1편 인도에서 고구려를 만나다>에서
인도와 고구려음악의 놀라운 유사성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도의 음악이 고구려까지 전파된 것일까?

2편에서는
인도 음악이 고구려까지 전파된 루트를 추적한다.
전인평 교수가 제시한 길은 바로 옛 고승들의 구법여행 루트.
인도에서 태동한 불교는 세계 곳곳으로 전파됐는데,
그 길은 바로 상인들이 문물을 교류한 실크로드였으며,
곧, 인도선율이 전해지는 ‘음악의 길’이었다

고구려에서 인도로 가는 길목엔
히말라야 산맥과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이 가로막고 있다.
그 멀고도 험난한 여정을 거쳐 고구려 음악 루트를 취재했다



[제 2편] 히말라야를 넘어, 고구려로!

 

2편에서는 본격적으로 고구려 음악루트를 추적한다.
히말라야 산맥과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을 넘어 고구려로 가는 길!
인도 선율과 고구려음악의 자취는
그 멀고도 험난한 여정 속에 계속해서 발견됐다.
우리의 ‘대~한 민국’ 장단을 연주하는 위그르족의 전통음악!
고구려 악기와 같은 악기가 그려진 키질석굴벽화!
고구려 음악의 뿌리를 찾아가는 흥미로운 여정이 이어진다.



▷ 인도문화의 해외배급소, 나란다 대학


인도의 나란다 대학은 5세기 초 세워진
당대 최고의 불교대학이다.
이곳은 불법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철학,
인도의 문화예술까지 폭넓게 가르쳤던
세계적인 학문의 요람이었다.
이곳에서 유학한 고구려, 신라의 고승들도
기록에 전해온다.
전인평 교수는 나란다 대학을 오고 간
고승들의 구법루트가
인도문화의 해외배급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


나란다 대학에서 유학했던 고승들의 부도탑
(이곳에서 죽은 고승들의 사리 안치)



▷ 정복자의 침입루트이자,
동서양 문화가 만난 문명의 십자로, 파키스탄’

구법승들의 루트를 따라, 인도에서 국경을 넘어 간 파키스탄.
이곳에서 인도의 수준 높은 불교문화가 꽃피운 간다라 문명을 만난다.
예로부터 이곳은 동서양 문화가 만났던 문명의 십자로이자,
알렉산더와 칭기즈칸 등 수많은 정복자들이 지나간 역사적 요충지였다.
 

* 현재는 분쟁과 갈등의 땅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한 마을에는
국경을 넘어 온 아프간 난민들이 모여살고 있다.
20년이 넘도록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난민촌 사람들.
오래전부터 수많은 정복자들이 거쳐 갔던 이 지역엔
여전히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난민촌 사람들은 죽은 뒤에야
저 관에 실려 고국으로 돌아간다


* 인도와 페르시아 음악이 뒤섞인
페샤와르 전통음악


페샤와르의 전통음악에는
인도의 불교문화와
서양문화가 만나고 결합한 흔적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판소리와도
그 분위기가 흡사했다.


페샤와르 파슈툰족이 연주하는 전통음악


 

▷ 해발 4700미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가다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고갯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인도 대륙에서 중국과 고구려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
지금도 해마다 수십 대의 차들이 벼랑 밑 인더스 강으로 추락하는 위험한 지역이다.
인도 대륙과 중국 대륙이 만나는 거대한 경계선이 눈앞에 펼쳐지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이라는 4700미터 고도의 쿤자랍 패스가 버티고 있다.
마지막 관문은 죽음의 사막이라 불리던 타클라마칸사막.
그 옛날 구법승들은 이 험한 길을 어떻게 넘나들었을까?

 

* ‘대~한 민국’ 장단을 두드리는 위구르족을 만나다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에 속하는 카슈가르.
이곳에 살고 있는 위구르인들의 악기 역시
인도에서 기원했음을 확인했다.
그들은 도드리장단은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대~한 민국’ 장단까지 두드려
취재진을 즐겁게 했다.


* 키질석굴에 묘사된 고구려와 똑같은 모양의 악기

불교왕국 구자국이 번성했던 곳, 쿠처.
이곳 키질석굴은 구자국이 인도의 불교를 받아들이던 3세기부터 4세기에 걸쳐
조성됐다.

취재진은 키질석굴의 벽화에 주목했다. 키질 38굴의 ‘천궁기악도’에서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기원한 악기는 물론
고구려 악기와 똑같은 모양의 쿠처 악기를 확인했다.
 


키질벽화에 묘사된 쿠처 악기와
고구려벽화에 묘사된 완함 비교

<키질석굴과 구마라집 동상>
구마라집은 구자국 출신으로,
인도 간다라에서 유학한 후
중국으로 들어가 대승불교를 전파했다
이때 음악가도 데려와,
인도음악을 중국에 소개했다.


* 세계를 향해 열려있던 고구려!

중국 섬서성 서안은 실크로드의 종착점.
서안은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더욱 익숙한 곳이다.
당시 장안에서는 인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가 참여한 국제음악회가 열렸다.
고구려도 여기에 참여해 세계문화와 교류했다.
불교와 함께 춤과 음악이 전해진 머나먼 여정 -
고구려 문화의 국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당삼채에 표현된 서양인과 악기
<섬서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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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바른말 바른사회
글쓴이 : 알마자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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