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가족의 집

[스크랩] 내고향 하동

영관님 詩 2012. 4. 2. 17:28

슬로시티 하동

 

                   차(茶)와 전통, 문학의 향기 가득

            
            우리나라 차 시배지와 <토지> 한옥마을, 화개장터의 매력

                

                     *알림...평사리...하동 그땅은 토지와 무관

                            소설속의 토지 일뿐 작가가 이곳을 배경으로

                            주옥같은 대작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림* 

 

                                                       

 

 

          

                                                     * 하동 벚꽃 *

 

  파릇파릇한 풀과 화사한 꽃 위로 포근한 햇살이 내려 앉은 봄날. 바쁜 삶을 잠시 내려놓고 봄의 운치와 여유를 즐기고 싶어진다. 차(茶)와 전통, 문학의 향기가 가득한 슬로시티 하동으로 떠나볼까.


세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 받은 야생차 재배지

  하동은 자연을 머금은 야생차의 향기가 가득한 곳이다. 화개장터 입구에서부터 쌍계사를 지나 신흥까지, 장장 12km의 이 마을 지리산 자락에는 야생차밭이 펼쳐져 있다.

 봄기운이 찾아 들자, 신선한 바람과 햇빛, 이슬을 마음껏 누리고 자란 야생의 차 잎이 곳곳에서 풋풋한 자태를 드러낸다. 매화꽃과 벚꽃까지 흐드러지게 핀 차밭의 경치가 여간 아름답지 않다. 차 밭을 배경으로 걷고 또 걷다 보면 마음까지 청아하게 물든다.

  세계슬로시티연맹은 지난해 야생차 재배지인 하동을 슬로시티로 지정했다. 차 재배지 가운데 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곳은 하동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슬로시티(slow city)란 '느리게 먹기'와 '느리게 살기' 운동의 철학을 담고 있는 지역으로, 전통과 생태가 잘 보전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동 지리산 기슭의 야생 차밭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왜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는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단장하지도, 인공비료를 주지도 않은 이곳 녹차는 자연의 선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동의 차밭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3년) 때 사신 김대렴이 당나라로부터 차 씨앗을 들여와 처음 재배를 시작한 곳이 바로 하동이라 전해진다.

  쌍계사 주변이 우리나라 최초의 차 시배지로 시정됐다. 차 시배지와 더불어 하동차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정금리 도심마을에 위치한 도심다원이 보유하고 있는 '최고(最古) 차나무'다. 이 차나무는 한국에 있는 차나무 중 제일 크고, 수령이 천년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에 개관한 매암 차 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차 문화 사설 박물관으로 7천 여평에 차 유물관(매암관), 매암 제다원, 매암 다원, 매암 찻집으로 이루어졌다.

차 문화의 교육을 바탕으로 올바른 다도를 구현하고자 하는 박물관은 차 문화 보존의 산실이며, 생명의 가치가 존중받는 올바른 차 문화를 전개해 가는 공간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악양면 소재지에 자리한 매암 차 박물관의 초입에는 차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어 차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거리가 되고 있었다.

 

 

다원에서 바라본 매암 차 박물관 전경

 

 

야외 다원에는 통나무를 그대로 드러낸 의자가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것으로 화로로 찻물을 끓이는 도구

 

 

차를 즐기는 선비의 방을 재현하고 있는 박물관 내부

 

 

각종 다구들이 박물관의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매암 차 문화 축제 '차의 노래' 시 낭송회 등이 준비된다고 하니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싶으신 분은 악양면 소재지에 위치한 매암 차 박물관을 다녀오시길.....

 

야외 찻집에 앉아 차를 나누며 모처럼 흐벅진 시간을 보냈다.

사람을 옭아매는 마력에 우린 푸욱 빠져서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벌써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은 지형적으로 인접한 곳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달려갈 수 있는 곳인데 쉬이 손 내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섬진강의 그 고고한 물줄기를 닮고 싶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늘 한 몸으로 사랑하며 유유히 흐르는 그 물줄기를 우리는 닮고 싶다.

 


전통의 숨결 느껴지는 <토지> 한옥마을과 화개장터

  슬로시티 하동은 야상차밭 외에 전통과 아날로그라는 또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요 무대인 드넓은 평사리 들판과 굽이치는 섬진강 물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3천여 평에 한옥 14동이 지어져 있다. 하동군은 <토지>의 작품성을 높이 사 소설 속 가상의 공간인 최참판댁과 등장인물들이 살던 다양한 초가를 그대로 재현해냈다.

  윤씨 부인과 서희가 기거했던 안채, 서희의 아버지인 최치수가 살았던 누각 딸린 사랑채, 별당 아씨가 머물던 연못 딸린 별당, 길상이 거주하던 행랑채 등 최참판댁은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전형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민초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초가집들도 최참판댁과 함께 한옥마을을 이루고 있다. 초가집에는 실제 마을 사람들이 살면서 텃밭도 가꾸고 소와 돼지, 개, 토끼 등 가축도 키우고 있다. 천천히 둘러보면 1시간 정도 소요되며, 은은한 전통과 문학의 향기에 기분 좋게 취한다.

  이번엔 넓은 평사리 들판을 지나 인근 화개장터에 들러본다. 지금은 초라한 시골 장터에 불과한 화개장터는 해방 전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 중 하나였다. 지리산 화전민들이 고사리, 더덕, 감자 등을 가져와 팔았고, 전남 구례, 경남 함양 등 내륙지방 사람들은 쌀보리를 내다 팔았다. 전국을 떠돌던 보부상들도 생활용품을 가지고 모여들었으며, 여수, 광양, 남해 등지의 사람들은 뱃길을 이용해 미역·청각·고등어 등 수산물을 가득 싣고 와 팔았다.

  전통 시골장터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지금도 상점은 초가지붕으로 덮여있고, 파는 물건들도 전부 지리산 약초와 마, 장아찌, 전통 공예품 등 토속적인 것들이다. 치자로 노랗게 물들인 튀김과 국화빵, 번데기 같은 주전부리도 팔고 있다. 사먹지 않더라도 상인들이 자꾸 먹어보라고 집어준다. 시장 길 건너엔 오래된 이발소와 찻집이 있어 향수를 자극한다.

  하동에서 대형마트나 패스트푸드 음식점은 찾아볼 수 없다. 편의점도 눈에 띄지 않는다. 당연히 이곳 사람들이 먹는 음식도 향토적이다. 어디를 가도 재첩국에 산나물, 매실 장아찌 같은 소박한 시골밥상이 나온다.

 

 

 
           

                                                              * 평사리 들판 *

 

           
           

                                                            * 평사리 들판 *

 

 

           

                                                       * 토지 한옥마을 *

 

 

          

                                                       * 토지 한옥마을 *

 

 

          

                                                         * 야생 차밭 *

 

 

          

                                                         * 섬진강과 벚꽃 *

 

 

           

                                                          * 화개장터 *

 

           

                                              * 하동야생차축제 외국인 체험 *

 

           

                                                          * 차 시배지 *

 

 

 



                                    한국의 슬로시티

  슬로시티 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발된 느림운동의 일환으로, 자연과 전통문화를 보호하면서 지역의 경제 살리기에 공헌해 진짜 사람이 사는 따뜻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자연과 지역의 고유문화가 잘 보전돼 있고, 인간미가 흐르는 슬로시티는 도시인에게 마음의 고향을 제공한다.

  2010년 현재 17개국의 126개 도시가 국제슬로시티연맹에 가입돼 있다. 전세계에서 슬로시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이탈리아(66개)이며, 7~8개의 슬로시티를 가지고 있는 영국이나 독일도 많은 편에 속한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슬로시티를 배출한 나라다. 우리나라에서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은 경남 하동군 악양, 전남 신안군 증도면, 전남 완도군 청산면, 전남 장흥군 유치면, 전남 담양군 창평면 등 모두 5곳이다.

  슬로시티를 제대로 즐기며 여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문화를 배우고, 향토 음식과 물건을 소비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다소 불편하더라도 환경을 생각하는 책임여행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도움말: 한국 슬로시티 본부 *

 

사람들은 물줄기를 따라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병풍 같은 산의 품안에서 단잠에 들었고 곡식을 길러낼 땅이 있는 곳에서 허리 굽혀 웃었다. 그렇게 물과 산과 들이 있는 땅에 마을이 형성되었고 장이 들어섰고 혼사가 오갔고 족보는 두터워져갔다. 하동(河東)은 그런 땅이다. 마이산, 지리산, 백운산 줄기에서 흘러온 물이 섬진강으로 흐르다가 바다로 가는 것을 온몸으로 받쳐주는 땅. 바지런하게 손 놀리면 산과 강의 열매들로 배부른 땅, 눈 멀어도 몸이 돋을 볕처럼 환해지는 맑은 기운의 땅. 그래서 어머니 몸 속 같고 아버지 등판 같은 땅. 마을사람들 만나 몇 마디 말 나누다 보면 ‘살만 하다’는 말이 ‘행복하다’는 말로 치환되는 땅. 가만히 걸어 들어가 누우면 지천했던 마음도 누그러지는, 살 붙이고 ‘살만 한’ 땅, 하동은 그런 땅이다.





당신들은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지내요?’라고. 나도 당신들에게 묻는다, ‘괜찮아요?’라고. 활짝 핀 꽃 속을 들여다보거나 바람에 온몸을 흔드는 풀잎들을 바라볼 때면 그런 질문을 받는 것만 같다. 나는 섬진강변에 서서 ‘벚꽃비’를 맞으며 대답한다, ‘살만 해요’라고. 저기, 꽃구경 나온 당신들도 좋아서 웃음 멈출 줄 모른다. 우리는 화답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도 나도 행복하군요’라고.
화개장터에서부터 쌍계사를 지나 신흥마을까지, 화개천을 거슬러 오르는 화개골 30리는 50~60년이 넘은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줄지어 길을 만들고 있다. 거기, 한쪽 끝에서 불을 댕긴 듯 와- 하고 일어난 벚꽃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풍성하다. 거기, 꽃 소식이 한 소식을 얻는 것인 양 꽃구경 나온 이들도 풍성하다. 노란 유채꽃밭에도 벚나무 아래에도 깃들어 벅찬 숨을 고른다.
우듬지에서 꽃이 터져 나오기까지 나무는 산통과도 같은 진통을 겪는다고 한다.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과 가지를 뚫고 나오는 꽃들이 요동치는 동안 사람들도 앓는다고 한다. 그래서 꽃구경 나온 이들의 모습은 조용하고 오달진 함성 같은가. 된통 앓고 나서 창문을 열어젖힌 사람들처럼 가벼워 보인다. 세상에 갓 태어나 눈 맞추는 아기를 보면 금세 아픈 것도 잊고마는 어미처럼 꽃 핀 나무들도 곱고 순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꽃 앞에 서면 가슴께가 간질간질해지면서 한없이 착해지고만 싶은 건.
그 길 위에 화개중학교가 있다. 화개(花開), 그 이름처럼 꽃망울 터진 듯 축구부 아이들이 교문에서 뛰쳐나온다. 파란 유니폼을 입고 입을 한껏 벌리고 꽃잎이 흩날리는 길 위를 뛰는 아이들이 싱싱하다. 아이들은 대답한다,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왁자하게 달리다가 선두의 구령소리에 발을 맞추는 아이들은 화답하고 있는 것이다, 꿈꾸는 자의 행복에 대해서. 아이들이 길 끝으로 사라질 즈음 고개를 젖히고 산을 올려다보자 드문드문 차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골이 깊어질수록 차나무가 산을 빼곡히 메우는 화개골엔 이제 막 매끄러운 물빛 찻잎이 밀려올라오기 시작했다. 찻잎이 오를 때면 이곳 사람들의 마음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일을 시작할 수 있어 행복한 때가 온 것이다.

 

 

지리산 109개 등산로 코스안내


 

 

1. 마천면 삼정마을-벽소령-형제봉-연하천-토끼봉-삼도봉-돼지령-질매재-문수대-노고단(10시간). 
2. 산청 시천면 덕산리-도솔암-구곡산-북쪽 황금능선-국사봉-중산리 아래 덕치마을(5시간).
3. 마천면 삼정리-영원사-영원재-삼각봉-연하천산장-남쪽 빗점골-의신(9시간).
4. 구례 광동면 심원마을-심원계곡-노루목-삼도봉-화계재-토끼봉-명선봉-연하천산장-명선봉 북능-    와운마을-반선(8시간).
5. 산청 시천면 거림마을-도장골-시루봉-촛대봉-칠선봉-선비샘-의신(8시간).
6. 남원군 산내면 달궁마을-반야봉-삼도봉-불무장등-통꼭봉-당재-황장봉-쌍계사 입구(9시간). 
7. 의신-대성계곡-음양수-세석평전-촛대봉-영신봉-월출봉-청내골-내대리(9시간).
8. 성삼재-노고단-문수대-질매재-문수리계곡-오미리(5시간). 
9. 성삼재-고리봉-만복대-서북능선 다름재-구례군 산동면 대평리 월계마을(5시간).
10. 중산리-법계사-천왕봉-중봉-하봉-국골-추성리(9시간).

11. 추성리-국골-하봉-중봉-천왕봉-장터목산장-연하봉-일출봉-청내골-내대리(9시간).
12. 칠불사 입구 범왕마을-범왕골-토끼봉-화계재-삼도봉-불무장등-당재-황장봉산-쌍계사(9시간). 
13. 칠불사 입구 목통마을-목통골(연등골)-화계재-토끼봉-명선봉-연하천-북쪽능선 삼각봉 북능선-
영원재 못 미처 도솔사-삼정마을(8시간).
14. 심원-임걸령-돼지령-질매재-문바위등-느진목재-왕시리봉-구례 토지면 구산리(9시간). 
15. 구례 연곡사-피아골 -용수암-삼도봉-화계재-토끼봉-명선봉-연하천-빗점골-의신(9시간). 
16. 천운사-상선암-종석대-코재-노고단-임걸령-노루목-반야봉-묘향암-뱀사골-반선(9시간). 
17: 구례 연곡사-피아골-용수암-삼도봉-화계재-토끼봉-명선봉-연하천-빗점골- 의신(9시간). 
18. 청암면 청학동 도인촌-삼신봉-외삼신봉-묵계재-주산-시천면 내공리(9시간).
19. 마천면 백무동-장터목-제석봉-천왕봉-중봉-써리봉-황금능선-국수봉-중산리(10시간). 
20. 대원사-유평-무재치기폭포-장당계곡 상류-국수재-국사봉-구곡산-시천면 외공리(9시간). 

21. 마천 추성리-광점리-어름터-쑥밭재-하봉-중봉-천왕봉-법계사-문장대-순두류-중산리(9시간). 
22. 마천면 추성리-광점골-쑥밭재-신밭골-유평대원사-평촌리(5시간30분). 
23. 성삼재-노고단-돼지령-문수대 삼거리-질매재-질등-문바우등-느진목재-피아골-연곡사(6시간) 
24. 토지면 파도리-왕시리봉-외국인별장-느진목재-피아골 입구(5시간30분). 
25. 전북 운봉면-바래봉-팔랑치-부운치-상부운-하부운(5시간).
26. 화개면 신흥리 목통마을-연동골-화개재-삼도봉-불무장등-통꼭봉-당재-피아골 연곡사(5시간30
분). 
27. 하동 악양면 강선암-신선봉-형제봉-원강재-내원재-쌍계사 삼거리-묵계 청학동(5시간30분)
28. 하동 화개면 대성리-대성계곡-음양수-세석평전-영신봉-칠선봉-벽소령-형제봉-연하천산장-빗점-
삼정-의신(9시간).
29. 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세걸산-부운치-팔랑치-바래봉-덕두봉-인월(9시간). 
30. 백무동-첫나들이폭포-가내소폭포-신한신계곡-장터목-제석봉-천왕봉-중봉-하봉 삼거리- 조개골-
유평-대원사(9시간).

31. 성삼재-노고단-돼지령-삼도봉-통꼭봉-당재-목통계곡(5시간30분).
32. 성삼재-노고단-돼지령-임걸령-노루목-반야봉-심원마을(5시간30분). 
33. 단성면 청계리-청계계곡-웅석봉-지곡사-산청읍내(5시간).
34. 백무동-가내소폭포-신한신계곡-장터목산장-제석봉-천왕봉-칠선계곡-추성동(9시간). 
35. 중산리-칼바위-천왕봉-중봉-써리봉-치밭목산장-유평-대원사(9시간). 
36. 청학동-삼신봉-북쪽 능선-세석평전 아래-대성계곡-의신(6시간).
37. 중산리-칼바위-장터목산장-연화봉-월출봉 남쪽 능선-청내골-내대리(5시간30분). 
38. 추성동-광점동-어름터-하봉능선-국골-칠선계곡입구-추성리(6시간).
39. 심원마을-심원계곡-노고단-코재-종석대-상선암-천은사(5시간). 
40. 성삼재-노고단-문수대-질매재-질등-문바위등-느진목재-피아골 연곡사(5시간30분). 

41. 산청 시천면 반천리-고운동계곡-고운동-고운재-묵계재-시천면 내대리(5시간).
42. 중산리-법계사-통천문-천왕봉-중봉-하봉-국골-추성동(9시간). 
43. 산청군 밤머리재-웅석봉-청계계곡(4시간30분). 
44. 화개면 대성리-단천계곡-박단샘-삼신봉-거림골-거림-내대리(6시간). 
45. 운봉면 수철리-세동치-부운치-팔랑치-바래봉-운봉면 동천리(5시간). 
46. 화개면 대성리-단천골-삼신봉-독바위-불일폭포-쌍계사(5시간). 
47. 화개면 대성리-선유동계곡-외삼신봉-삼신봉-거림골-내대리(5시간30분). 
48.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방곡계곡-오봉마을-새재-외고개-밤밭골-유평리-평촌리(5시간). 
49. 구례군 상선암-종석대-코재-노고단-돼지평전-심원계곡-심원마을:(5시간). 
50. 정령치-노고단-남쪽 능선-밤재-화엄사(5시간).

51. 화개면 신흥리-선유동계곡-삼신봉 주능선-내원재-불일폭포-쌍계사(5시간30분). 
52. 토지면 도산천-왕시리봉-외국인별장-느진목재-토지면 평도마을(남산)(5시간30분). 
53. 중산리-순두류-마야계곡-국수재-국사봉-안내원-내원사-대포리(5시간30분). 
54. 화개면 칠불사-토끼봉-화개재-목통계곡(5시간30분). 
55. 마천면 삼정리-영원사-영원재-와운골-뱀사골-반선(5시간).
56. 삼장면 대포리-내원사-안내원-국수재-마야계곡-순두류-중산리(5시간). 
57. 평촌리-대원사-유평-밤밭골-왕등재-외고개-산청군 금서면 수철리(5시간30분). 
58. 유평리-대원사-유평국교-유평골-왕등재-금서면 수철리(5시간). 
59. 산청군 대포리-내원사-안내원-국사봉-내대리 곡점 위로 하산-중산리 입구(5시간). 
60. 화개면 단천계곡-삼신봉-묵계재-내대리(5시간30분). 

61. 백무동-하동바위-장터목산장-제석봉-천왕봉-중봉-하봉-국골-추성리(10시간). 
62. 달궁-심원계곡-노고단 정상-노고단산장-코재-종석대-상선암(5시간30분).
63. 함양 마천면-견성골-삼불사-문루암-상무주-삼각능선-삼각고지-연하천-명선봉-토끼봉- 뱀사골-
반선(8시간).
64. 달궁 마한 궁터-반야봉-삼도봉-토끼봉-명선봉-연하천산장-마천면 삼정리(8시간30분).
65. 남원군 산내면-달궁-심원-심원계곡-노루목-삼도봉-토끼봉-연하천-형제봉-벽소령-의신골-의신(
8시간).
66. 악양면 평사리-고소산성-신선봉-형제봉-원강재-해경골-중촌-쌍계사 입구(6시간).
67. 추성리-칠선계곡-천왕봉-중봉-치밭목산장-무재치기폭포-한판골-대원사-평촌(12시간). 
68. 추성리-칠선계곡-천왕봉-법계사-중산리(10시간).
69. 화개면 대성리-대성계곡-세석평전-촛대봉-삼신봉-연화봉-도장골 최상류 계곡-거림(9시간). 
70. 반선-심마니능선-반야봉-묘향암-삼도봉-불무장등-피아골 입구 직전마을(9시간). 

71. 피아골 입구 내동리-느진목재-문바위등-질등-질매재-문수리골-밤재-구례 화엄사(6시간). 
72. 추성리-칠선계곡-천왕봉-중봉-하봉-촛대봉-초암릉-국골 입구-추성리(10시간).
73. 백무동-장터목-천왕봉-중봉-하봉-쑥밭재-독바위-새재-외고개-대원사(11시간). 
74. 함양 금서 방곡리-오봉마을-외고개-왕등재-밤머리재-웅석봉-동북능선-지곡사(11시간). 
75. 연곡사-피아골산장-불로교-돼지평전(임걸령)-노고단-성삼재(5시간). 
76. 청학동(도인촌)-삼신봉-내삼신봉-독바위-상불재-불일폭포-쌍계사(6시간). 
77. 중산리-용추폭포-마야계곡(써리봉 왼쪽 계곡)-천왕봉-중산리(9시간). 
78. 쌍계사-쌍계사 오른쪽 능선-636m봉-시루봉-중촌-덕기(7시간30분).
79. 마천면 가흥리-덕전리 가채마을-창바위산-연골재-두지터-추성동(10시간). 
80. 양정마을-도솔암-삼각고지-명선봉-총각샘-빗점골-의신(9시간).

81. 추성리-초암목장-초암능-촛대봉-하봉-중봉-천왕봉-법계사-중산리(10시간). 
82. 목통마을-연동골-화개재-토끼봉-칠불사능선-목통마을(6시간).
83. 당재-통꼭봉-불무장등-삼도봉-화개재-연동골-목통부락-당재(7시간).
84. 평사리 외둔마을-고소산성-봉화대-성제봉-샘터-청학사(7시간). 
85. 하동 대성리 단천교-단천마을-계곡-삼신봉-거림지곡-거림(5시간30분). 
86. 하동읍 두곡리 율동마을-분지봉 능선-분지봉-구제봉-삼화실재-신대리계곡-악양(6시간). 
87. 하동 악양 미점 개치마을-구제봉 서능-구제봉-삼화실재-동점재-칠성봉-논골재-동매계곡(6시간
30분). 
88. 함양 휴천 문정리-노장대능선-노장대-상내동-새봉-두리봉-두리봉능선-추성리(11시간). 
89. 산청 시천 내대리-청내골-일출봉-장터목-제석봉-천왕봉-중봉안부-마야계곡-순두류(11시간). 
90. 악양 등촌 약수장-덕기골-희남재-깃대봉-논골재-칠성봉-동점재-동매계곡-악양(5시간30분). 

91. 청암면 묵계리-희남골-희남재-시루봉-호경봉-내원재-상불재-가는골-청학동 진주암(5시간). 
92. 화개면 신흥-단천교-단천마을-단천골-단천지능-한벗샘능선-수곡골-대성마을-의신(6시간). 
93. 구례 토지면 내동리-피아골 입구-동평골-당재-통곡봉-불무장등-삼도봉-화개재-토끼봉-지보등-명선봉-명선봉 남부능선-삼전마을(10시간). 
94. 청암 묵계 고운동 재-주산능선-주산-오대고개-청암 시양골-궁항리(6시간). 
95. 산청 시천 내공리-새터능선-오대고개-갈치재-중대고개-흰덤산-흰덤산 능선-사림산-갈밭골- 하
동 옥종 월횡리(6시간).
96. 하동 옥종면 두양리-두방산-함박산-우방산-중태고개-중촌계곡-중촌마을(6시간).
97. 하동 옥종면 종화리 까막고개-정개산-중태고개-국사봉-시천 중태리 계곡-덕산(6시간). 
98. 하동 악양 평사리-고소산성-신선봉-구름다리-성제봉-노전골-악양(5시간30분). 
99. 하동 화개 부춘리 신기마을-부추능선-배나무골-성제봉-활강장-원강재-청학골-등촌리(6시간). 
100. 성산재-노고단산장-문수대-질매재-질등-문바위등-느진목재-문수암-토지면 오미리(6시간).

101. 토지면 구산리-왕시리봉 남서능-왕시리봉-느진목재-남산골-토지면 내동리 평도마을(5시간). 
102. 산청 시천 외공리-구곡산남능-도솔재-구곡산-덕산(5시간30분). 
103. 중산리 덕치마을-덕치골-황금능선-천잠능선-원팅이재-구곡산-도솔재-덕산(5시간30분). 
104. 시천 동당리-첨잠마을-천잠골-황금능선-국수봉 입구-안내원골-내원사-시천 대포리(5시간). 
105. 중산리 중산지곡-황금능선-국수봉-국수재-국수재골-순두류-중산리(5시간). 
106. 성삼재-노고단-돼지령-임걸령-노루목-심원계곡-심원마을(6시간30분). 
107. 함양 마천 삼정리-도솔암-도솔암능선-삼정능선-영원재-영원산-빗기재-빗기골-전북 산내면 내령
리 내령마을(5시간30분).
108. 하동 화개장터-황장봉 능선-촛대봉-새껴미재-황장산-당치-봉평마을-피아골(6시간). 
109. 남원 운봉 수철리-세거리 골짝-세동치-세걸산-고리봉-정령치-만복대-다름재-구례 산동 위안리
상위마을(6시간30분).


 






잭살차 따는 때야. 요즘은 바빠서 하루에 두세 시간도 못 자.”
새로 오른 잎이 참새[雀]의 혀[舌]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작설차(雀舌茶). 차밭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작설차를 하동 사투리로 ‘잭살차’라고 발음했다. 여기저기 깎아지를 듯한 산중 차밭엔 ‘잭살차’ 만들 새잎을 따는 아주머니들이 꽃처럼 붙어 있었다. 바로 이곳이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다.
지리산 차의 90%가 생산된다는 화개골은 지구상에서도 보기 드물다는 야생 차나무 군락지다. 게다가 배수가 잘 되는 토질, 화개천이 섬진강에 합수되면서 생기는 안개가 햇빛과 습도를 조절하는 지리적 조건, 밤과 낮의 기온차가 급격하게 나는 산중의 기후적 조건이 이곳의 차 맛을 일품으로 만든다. 신라 흥덕왕 때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씨를 가져와 이곳에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산중에 넓게 펼쳐진 차밭이 이곳 사람들의 생계를 잇는다. 화개골의 500여 가구 중 200여 가구가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들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보면 ‘다원(茶園)’ ‘제다(製茶)’라 이름 붙여진 찻집들이 숱하게 보인다. 어디에서든 정성 들여 만든 수제차를 맛볼 수 있지만, 집집마다 차 맛은 다르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이 차를 만들 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차를 따고 말리고 덖는 이 즈음의 화개골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다.
업체 등록을 하지 않고 차나무를 키우는 집들이 훨씬 더 많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차밭을 일구는 이들이다. ‘다원’이라는 말을 달지 않았을 뿐, 그리고 그런 말을 달 필요도 없다는 듯 차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이들이다. 마을길로 들어서면 산등성이의 차밭 아래 아담한 마을들이 포근하게 자리 잡고 있다.
“화개골 어머니들은 찻잎을 ‘약초’라고 부르셨어요. 새순을 따서 나물을 해 드셨죠. 그게 차나무인 줄도 모르고요.”
이곳에서 차밭을 가꾸는 농사꾼들은 모두 그렇게 말했다, 찻잎은 ‘약초’라고. 바다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에서, 사막에 사는 사람은 사막에서 약이 되는 것을 구했듯 차 마을 사람들에겐 차가 양식이었고 약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농사의 신 ‘신농씨(神農氏)’는 모든 식물의 맛을 보다가 독초에 중독 되었을 때 찻잎을 먹어 해독하지 않았던가.
“식구들이 아프면 어머니가 찻잎을 가마솥에 넣고 다려서 주셨어. 말린 찻잎을 보자기에 싸서 벽에 매달아 놨다가 겨울엔 감기약으로도 쓰고.”
차밭에서 어머니 얘기를 하던 노인을 따라가니 차밭 바로 아랫집으로 들어간다. 마침 그의 아내는 막 점심상을 내고 있었다. 정지를 들여다보니 가마솥이 있고 살강엔 시어머니께 물려받았을 법한 오래된 그릇들이 놓여 있다. 수줍은 듯 단출한 점심상을 들고 정지 문턱을 넘어 오는데, 밥상엔 고봉으로 담은 두 사발의 밥과 아침나절에 남편이 산에서 따온 두릅과 손수 만든 초고추장과 열무김치가 푸지게 놓여 있다. 마주앉아 밥 먹는 내내 아내의 젓가락은 두릅을 집어 남편의 입으로 간다. 나무에서 솥을 거쳐 밥상을 거쳐 서로의 입으로까지 가는 사이 두릅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행복한 두릅이 된다.
“저 양반은 술을 전혀 못하는데 나는 술을 좀 해. 술을 한잔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서 이거고 저거고 무서울 게 없어져. 그러면 저 양반한테 하고 싶었던 말 다해. 그게 사는 행복이지, 뭐.”
아내의 말에 입가에 슬며시 웃음을 짓는 남편도 그게 행복인가 보다. 서로가 잠깐 온화하게 열없어진 사이 남편은 점심상을 물리며 물을 찾는다. 아내는 마루 한쪽에 놓인 양푼에서 물을 한잔 떠서 내미는데 그 색이 맑다. 숭늉인가 싶었는데 찻물이란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늘 마셔왔단다. 이곳 사람들에겐 찻물을 물처럼 마시는 게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들이 내게 대접한다고 건네는 것도 그 찻물이다. 차는 워낙에 ‘신선의 양식’이라고 할 정도로 예로부터 귀한 것이니 나는 성찬을 받은 거였다.
차는 함께 나누는 자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차 맛을 알 것 같았다. 그야말로 모태(母胎) 다인(茶人)인 화개골 사람들과 툇마루에 앉아 사발로 떠서 나누는 차 맛은 환하고 맑았다. 그날의 산과 같고 하늘과 같고 바람 냄새가 좀 났다. 어느 찻집의 가장 비싼 차 맛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지만, 그 부부가 사발에 건넨 차 맛의 여운은 여행 내내 몸 안을 맴돌았다.





평생 차를 대하는 사람들이어서인지 마을들 모두 정갈하다. 거기, 어느 집 마당에 들어서니 새물내 나는 옷을 입은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맞은 편 산자락의 차밭과 저 아래의 꽃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해마다 찾아오는 꽃들이 올해도 여지없이 반갑고 고마운 양. 열린 대문이 그림 틀이 되고, 그 틀 안에서 구름도 햇빛도 시시각각 변하니 한번도 같지 않은 그림을 바라보는 게 큰 행복이라는 듯. 며느리가 빨래를 너는 것도 나비 두 마리가 그 앞을 날아가는 것도 다 늙은 아들이 지게를 지고 문을 나서는 것도 모두 그 그림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녀의 품 안에서 이루어진다. 자식들이 품 안에 들고 나는 것도, 이 생에 한 평생 들고 나는 것도 모두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이 되기도 하고 슬픔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문을 들고 날 때, 기원을 하기도 하고 뜻을 품기도 하도 다시 돌아올 날을 기약하기도 하지 않는가. 나도 그녀의 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무엇엔가 이끌리는 듯 자꾸만 마을 길로 들어서게 되는 화개골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품고 사는 문 하나쯤.
내가 하동에서 만난 또 하나의 문은 쌍계사 금강문(金剛門)이다. 금강문은 절에 들어설 때 일주문을 지나 두 번째로 통과하게 되는 문으로 불법을 지키고 속세에서의 더러움을 씻어낸다는 의미의 문이다. 금강문에 금강역사(金剛力士)가 모셔져 있는 것은 흔치 않은데, 쌍계사 금강문의 왼쪽엔 부처님 곁에 바짝 붙어서 비밀스러운 내용을 들으려 했다는 밀적금강(密迹金剛)이, 오른쪽엔 큰 힘을 가졌다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 있다. 거기 가만히 서서 처마를 올려다보다가 금강문을 통과하는 한 수녀님을 만났다.
“절이든 성당이든 교회든, 어딘가로 가기 위한 첫 발걸음의 마음은 다 똑같지 않겠어요? 이 사찰 좀 봐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기 절하는 신도들의 마음도 얼마나 아름다워요.”
흰 머리칼이 꽃처럼 잔잔한 겔트루드 수녀님은 꽃나무 곁에 앉아 미소지었다. 세상을 향한 넓은 마음이 가질 수 있는 성스러운 행복이 거기, 꽃나무에 있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는 마애불 앞에서 절을 올리는 신도들의 두 손에도 있었다. 또 스님들은 바쁜 듯이 법당으로 가고 있었으니 그 자근자근한 발소리에도 있었다.
쌍계사 문 밖으로 나오자, 길가마다 쭈그리고 앉아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이 오종종 모여 피워내는 얘기꽃에도 있었고, 그 곁에서 갓을 쓴 노인이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커피에도 있었고, 쌍계사로 가는 다리 위에서 장애인 부부가 엎드린 채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에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편이 문 밖인지 저편이 문 밖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금강문을 지나며 더러움을 씻어내고 온 여기가, 문 안인지도.



고운 모래가 많아 옛날에는 모래가람, 다사강, 두치강이라 불리기도 했다는 강. 고려 우왕 11년 무렵, 왜구가 강 하구로 침입했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울부짖어 왜구를 쫓아냈다는 전설이 있어 그 이후로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을 붙여 섬진강이라 불려지는 강. 너무 맑아서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그 강의 줄기를 따라 가다보면 또 다시 작은 강마을들을 만난다. 그 중에서도 지형이 꽃 속처럼 생겼다는 화심리(花心里)는 그 강변까지도 어여쁘다. 눈 뜨자마자 찾아간 화심리의 아침은 꽃 줍는 소리로 시작되고 있었다. 늑장을 부린 겹동백이 담장 아래로 흐득흐득 지고 있는 집 아주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나와 꽃을 쓸다가 영 아쉬운지 자꾸 꽃나무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떨어진 꽃을 줍는 소리. 그 집 댓돌엔 열한 켤레의 신발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말씨가 여낙낙한 며느리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좀 전에 줍던 그 꽃 속 같았다. 아주머니의 자랑할 만한 행복은, 작은 집이지만 열한 명의 식구들이 살 부비며 살아가는 일인 듯했다. 다솔하게 살아가는 그 집 얘기를 들으며 나는 눈이 볼 수 있는 가장 먼 거리까지 펼쳐진 배꽃을 본다. 강을 따라 온통 배밭이어서 눈이 부신 곳. 꽃 속에서 아침을 맞으니 몽롱해지는 꿈결 같은 마을이다.
배밭에서 만난 아저씨는 배나무 가지를 치다가 말했다, 올해도 풍작일 거라고. 그래서 이 물 많고 달디 단 배들처럼 자식들 잘 키워내면 행복도 풍작일 거라고. 이제 막 강으로 들어가 이곳 말로는 ‘갱조개’라 불리는 재첩을 잡기 시작한 이들, 강물에 몸을 반쯤까지 담그고 은어를 잡기 시작한 이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명지바람 부는 섬진강 모래톱에 나들이 나온 가족들도 모두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강물은 한가롭게 흐르고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삽상하게 불어왔습니다. 강어귀 산에서 쑥국새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오데요. 나는 그만 이제 한창 불붙은 꽃밭에 내 몸을 던져버렸습니다. …… 슬픔은 때로 저 자운영 꽃밭처럼 아름다운 것이기도 할 모양입니다 그려.(공선옥 소설,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중에서)

거기, 자주빛 구름 꽃밭에서 울고 있는 한 아이를 만났다. 그 애에게 왜 우냐고 물어볼 수 없었던 건 ‘울음’ 앞에 ‘왜’라는 말을 붙이는 게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금쯤 알 것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설가 공선옥의 수필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다녔다. 5월이면 어느 길에서건 자운영이 피었는지 살피는 것도 그에 따른 버릇이었고, 이제야 비로소 그녀가 몸을 던졌던 그곳에 서서 건조한 나조차 울음이 자글자글해지고 있었다. 그 앞에는 꽃밭을 가로지르며 해찰하는 아이들 무더기가 꽃무더기처럼 자리를 옮겨 다니고 있었다. 하교 길인지 책가방을 엉덩이 아래까지 늘여 맨 채 뛰기도 하고 엎드려 무언가를 들여다보며 꽃 주변을 맴도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그녀가 왜 울어버렸는지 조금쯤 알 것도 같았다.


 

온몸으로 술렁이는 맥주보리와 자운영 꽃이 펼쳐진 평사리 들판에 그렇게 오래도록 서 있으면 바람에 취해 벌게져버릴 것만 같았다. 고소성으로 간다. 신라가 백제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성곽. 거의 허물어져 가던 것을 다시 복원해 놓은 모습인데 능선을 따라 쌓아놓은 산성의 둘레는 800미터에 달한다. 거기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평사리 푸른 들녘과 섬진강 새하얀 모래밭이 수채화처럼 펼쳐져 보인다. 지리산 너머에서부터 불어온 갑작바람은 고소성을 손으로 훔치듯 쓸어내리며 평사리를 지나 어느새 섬진강까지 내려간다. 해거름 속에서 온몸의 힘을 빼고 성곽의 한 귀퉁이에 앉아서 본다. 이제 막 마을 입구의 첫 번째 집에 불이 켜졌다. 서로를 부르는 신호이기라도 한 듯 최참판댁 마을에 불빛들이 하나 둘 별처럼 켜지는 저녁, 지구가 다 온화해 보인다. 산줄기에서부터 시작된 물줄기를 아래로 내려 보낼수록 점점 넓어지는 강의 마음을 본다. 이내 망망대해가 될 그 벌건 마음의 손금 같은 강줄기를 본다. 어둠은 어느새 강까지 다 내려앉았다.






섬진강 줄기를 오른편에 두고 달리는 이쪽은 경상도, 저쪽은 전라도.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활도 말 품새도 다른 이곳에 화개장이 선다. 하동 사람들과 어깨라도 좀 더 부딪고 갈 요량으로 아침부터 찾은 장터엔 예나 지금이나 화개사람들보다 외지 사람들이 더 많았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해 겨우 구색만 갖춘 장터지만 예전에 이곳은 흥시(興市) 중의 흥시였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구절을 보면 그렇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 도라지, 고사리들이 화개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아장수들의 실, 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족집게, 골백분들이 또한 구례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이 김, 미역, 청각, 명태, 자반, 조기, 고등어들이 올라오곤 하여 산협(山峽)치고는 꽤 성한 장이 서는…”
송림 지나 바다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막힐 것도 두려울 것도 없이 눈감고 흘러 내려가기만 하면 하동의 끝, 바닷가 마을에 닿았다. 하동 땅에 이별을 고하려 바다에 등 돌려 설 때 파래 너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의 머리 뒤엔 새파란 바람이 멈춰선 듯 줄에 널린 파래가 나부끼고 있었다. 노인은 시계를 보면서 물었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위치도 시간도 가늠되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화답했다. ‘지금, 행복하다’고.

섬진강 줄기를 따라 가다보면 꼭 누군가를 만날 것만 같았다. 아는 얼굴이 아니어도 아는 얼굴처럼 인사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랬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게 꼭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고운 모래의 강을 끼고 사는 이들이 산과 들과 꽃과 차를 버무려 만들어낸 묘약의 향내가 나를 이끌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동에서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생각한다. 그 향내에 취해 모두들 행복하게 웃고 있던 건 아닐까, 라고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 1985년 발간된 시인 김용택의 첫시집 『섬진강』 연작의 첫 번째 시 「섬진강 1」의 일부이다.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임실, 곡성, 남원을 거쳐 구례와 하동을 경계로 하여 ‘하동포구 80리’를 이루며 남쪽 바다를 향해 흘러내려가는 섬진강은 이곳을 젖줄로 하여 사는 실핏줄처럼 많은 사람들의 삶과 애환과 사연을 간직한 강이다. 고려시대에 나루터[津]에 나타난 두꺼비[蟾]가 왜구를 쫓아내 그런 이름을 같게 되었다는 섬진강, 지리산 자락 굽이굽이 5백리를 흘러내려가는 동안 너른 들판보다는 대부분 작은 마을을 적셔주며 흘러가기에 더 애틋하고 정겨운 강이다.





화개장터에서부터 쌍계사를 지나 범왕리에 이르는 화개골 양편으로는 산비탈이든 조금 평평한 곳이든 야생 차나무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화개면 용강리부터 신흥마을까지 화개천을 끼고 이어지는 길은 ‘십리 벚꽃길’이 아니라 ‘십리 찻길’[茶路]로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쌍계사 동구의 석문마을에는 신라 흥덕왕 때인 828년부터 심었다는 차의 시배지가 남아 있어 우리나라 야생 차의 본거지라 할 만하다.
차는 제조법, 잎의 크기와 모양, 채취 시기에 따라 이름도 품질도 아주 다양하다. 제조법에 따라 녹차(불발효), 우롱차(반발효), 홍차(완전 발효)로 나뉘고 찻잎의 크기에 따라 작설차 (雀舌茶: 참새의 혓바닥처럼 가늘고 여린 찻잎으로 만든 차), 응조차(鷹爪茶: 매의 발톱처럼 억세고 야무진 모양의 잎으로 만든 차)로 구분한다. 작설차는 또 잎의 채취 시기와 크기에 따라 세작(細雀), 중작(中雀), 대작(大雀)으로, 채취 시기별로는 청명차(4월 5일경), 우전차(곡우 전), 곡우차(4월 20일경), 입하차(5월 5~6일경), 소만차(5월 21일경), 망종차(6월 6일경) 등으로 구분해 부른다. 작설차, 그 중에서도 세작의 맛과 향이 제일 좋아 가격도 가장 비싸다. 하동군에서는 매년 하동야생차문화축제를 열고 있는데 올해는 5월 19일부터 22일까지 제10회 행사를 갖는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실줄처럼 흘러내리며 아름답고 정겹고 소박한 풍경과 이야기를 무수히 만들어낸 강답게 섬진강을 다룬 책들은 다른 강들에 비해 무척 많은 편이다. 앞에서 언급한 김용택 시인의 시집 『섬진강』(창비)은 섬진강 주변의 풍광과 자신의 가족, 주변 이웃들, 해체되어 가는 농촌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시집으로 이 시인을 ‘섬진강 시인’으로 부르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책이다. 진안, 임실, 곡성, 구례, 하동을 거쳐 흘러내려가는 섬진강 주변의 여러 유적지와 문화재, 설화와 전설, 찾아가는 방법에 관한 안내로는 『답사여행의 길잡이 6 -지리산 자락』(돌베개)이 좋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에서 10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우리 땅 구석구석을 발로 찾아 완간한 이 책 시리즈만큼 자연·지리·인문적 교양을 동시에 제공하는 여행 안내서는 드물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생각의 나무)에 나오는 섬진강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 작가”라는 평가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된다. 7차 중학교 1-2 교과서에 ‘섬진강 기행’이라는 단원으로 이 글 가운데 한 편이 실려 있다. 『섬진강 따라 걷기』(가람기획)는 재야사학자 신정일이 2001년 2월과 3월에 걸쳐 섬진강 발원지부터 하구까지 530리 섬진강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사람살이를 실제 걷고 쓴 책이다.



청학동 삼선궁


   
♣ 청학동으로 가는 길은 곧 지리산으로 가는 길이다. 옛 전설속의 이상향으로 불리워지던 청학동이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최고라는 찬사가 부담스럽지 않은 명산중의 명산 지리산. 그리고 그 산중에 터를 잡고 살아가게 된 사람들은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며 이곳을 지켜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청학동은 잘 뚫린 도로 덕분에 많은 여행자들의 발 길이 닿는 곳이기도 하다.

청학동 입구까지 늘어선 민박집들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정겨운 나무 간판에 쓰여진 ‘청학동 가는길’의 안내에 따라 좁은 길을 걸어올라가면 천자문을 읽는 소리가 문밖까지 들리는 도인촌 입구에 이르게 된다. 이 곳에는 현재, 과거의 전통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서당에서부터 도시 학생들의 예절교육을 위한 서당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많은 수 서당들이 있기도 하다.
조금더 길을 재촉하면 儒佛仙三道合一更正儒道會(유불선삼도합일경정유도회)는 글이 적힌 커다란 문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곳부터가 이른바 ‘도인촌’. 유교를 근간으로 하되 '유교, 불교, 선도와 동학, 서학을 하나로 합하여 큰 도를 크게 밝혀 경사도 많고 크게 길한 유도를 다시 일심으로 교화하는 도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이곳은 분명 현대의 문명이 들어왔음에도 아직까지 예전의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마치 과거의 시간이 그대로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청학동으로부터 이어지는 1.5km의 산길은 우리시조인 단군을 모신 배달성전 삼성궁으로 가는 길이다. 이 고장에서 난 한풀선사 강민주가 1983년 고조선의 소도를 복원,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배달성전을 만들었다. 입구엔 ‘징을 세 번 치고 기다리는 곳‘이라고 적힌 나무 푯말이 있는데, 이곳에서 세 번 징을 울려 수자를 불러내면 입구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입장을 한다. 예전에는 흰수염에 도복을 한 수자가 나와 길을 안내했고 한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은 별도로 준비된 도복을 입었는데, 최근에는 도복차림의 수자가 나와 길을 안내하고 별도의 도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 입장을 하였다고 해서 삼성궁을 마음대로 둘러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본당에 해당하는 건국전에서 예를 갖추고 나서야 궁 내부를 조용히 둘러볼 수 있으며, 사진촬영도 할 수 있다. 궁 내부를 잠시 살펴보면,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 이런 평원지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넓은 규모를 자랑하는데 뭐니뭐니해도 궁 내부에 세워진 솟대가 사람들의 눈을 끌게 한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솟대는 한풀선사가 어렸을때부터 축조한 것이라고 하는데 자그마치 1000여개에 달한다니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곳곳에 수행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길들이 눈에 띄고 그 길을 따라 궁을 한바퀴 돌고 나면 잠시나마 현재를 잊고 태초의 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입장시간 : 8:30-19:00
입장료 : 별도의 입장료는 없고, 성전 건립기금을 자발적으로 내면 된다.
  서울,대전 방향 : 경부고속도로 - 대진고속도로 - 단성IC - 옥종 - 횡천 - 청암 - 묵계 - 청학동
부산 방향 : 남해고속도로 - 하동IC - 횡천 - 청암 - 묵계 - 청학동
광주 방향 : 남해고속도로 - 광양 - 진상IC - 하동 - 횡천 - 청암 - 묵계 - 청학동

섬진강의 아침선물

                                                 

 

 

 

 

 

 

 

        

          이쪽 안개를 쫓으면 저쪽 안개가 부른다.

          저쪽 안개를 쫓으면 이쪽 안개가 부른다.

 

          송림과 섬진강 안개,

          이 아침 선물이 눈물겹다.

 

          - 섬진강 / 김인호 -

 

 

 

 

 

 

 

 

 

 

고향생각에 여기저기 에서 펌... 참고로 제가 살던 곳은 갈대와 두꺼비 많았다는 蘆 蟾이라는 곳.

蟾津江邊과 힁천강이 휘몰라 도는 아주아름다운곳.감나무골.


 

출처 : 재부하동중앙중동문카페
글쓴이 : 4회 김안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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