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소설

빠름과 느림/김학

영관님 詩 2013. 5. 5. 18:48

빠름과 느림/김학|안골 수필 사랑방
두루미 | 조회 0 |추천 0 |2013.05.05. 12:50 http://cafe.daum.net/angolessay/76eu/4336 

빠름과 느림

                                                        김 학  

 

 

 세계의 젊은이들이 치열하게 금메달을 다투던 88서울올림픽 때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운전면허를 땄다. 어느새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래 운전을 했지만 나는 지금도 필요할 때나 운전을 하지 즐기려고 운전을 하지는 않는다.

 운전을 할 때는 앞만 바라보고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운전석 앞 거울로 뒤쪽을 살피고, 차창 밖의 왼쪽과 오른쪽 거울을 수시로 보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초보 운전 때는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주에서 군산까지 시외버스로 통근할 때의 일이었다. 그 버스 기사가 어느 승객과 말다툼을 한 뒤 운전을 하면서 자꾸만 흘깃흘깃 옆쪽을 바라보며 무어라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그 운전기사가 싸웠던 손님에게 욕설을 하는 줄 알았었다. 그래서 이제 그만 참고 운전이나 안전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운전을 배우고 나니 그 버스 기사는 옆쪽과 뒤쪽을 수시로 바라보면서 안전운전의 기본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운전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그 버스운전사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오해했을 것이다.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을 할 때는 능수능란하게 사주경계(四周警戒)를 해야 한다. 뒤차나 옆 차의 상황을 살펴서 방어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보 운전 때 나는 주차장에서 전면주차를 했던 차를 뒤로 빼다가 뒤에 서있던 짐차를 받아버리는 바람에 내 차 범퍼가 크게 망가져서 많은 수리비가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운전을 하면서 큰 사고는 없어 다행이지만 접촉사고는 잦았다. 지금도 나는 도로를 달릴 때는 규정 속도를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가끔 신호위반이나 주차위반으로 범칙금을 낼 때가 있다. 규정대로 운전을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자가용 운전사로서 도로교통법을 어기곤 한다. 그럴 때마다 사회인으로서 내가 온갖 법과 규정을 잘 지키면서 살고 있는지 반성해 보곤 한다.

 고속도로 같은데서 지그재그로 씽씽 달리는 차를 보면 부럽기는커녕 불안하기만 하다. 저러다 사고가 나면 어쩌려고 저러나 싶어서 그렇다. 그럴 때면 이런 우화(寓話)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거북 한 마리가 서울까지 가려고 출발했다. 거북이가 한참 가다가 지렁이 한 마리를 만났는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으니 서울까지 간다고 했다. 거북이는 그 지렁이를 자기 등에 태웠다.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가다가 이번에는 굼벵이를 만났다.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서울 간다고 했다. 그래서 거북이는 또 자기 등에 굼벵이를 태웠다. 금방 거북 등에 탄 굼벵이가 자기보다 먼저 거북등을 타고 온 지렁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지렁이야, 꽉 잡아! 거북이가 되게 빠르구나. 번개 같아. 잘못하면 떨어진다! 알았지?”

‘토끼와 거북이’란 우화에서 거북이는 느림보 취급을 받는다. 빠른 토끼의 눈으로 보니 거북이는 느림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둥글 재주밖에 없는 굼벵이의 눈에는 거북이가 엄청나게 빠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빠르고 느리다는 속도는 생각하기 나름이 아니겠는가?

세상을 살아갈 때 빠르고 늦고 만을 따질 일은 아니려니 싶다. 얼마나 꾸준히 노력하느냐가 중요하리라 믿는다. 빠른 토끼가 느린 거북이를 얕잡아 보고 도중에 낮잠을 자다가 거북이에게 금메달을 빼앗겼다는 ‘토끼와 거북’의 우화를 생각해 볼 일이다.

 

 평생 사과 그림만 그렸던 세잔느는 늙어서 “만년(晩年)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과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뿐이 아니다. 콤모르도 빈더필트는 모든 사람이 은퇴할 나이인 70세가 넘어서 철도회사를 만들어 크게 성공했고, 타티안은 98세에 <르판트의 전쟁>을 그렸으며, 99세에 <마지막 만찬>을 그렸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70세 때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완성했고, 80세가 넘어서 대작을 만들기 시작했고, 모네도 85세 이후에 거작을 그렸다지 않던가? 소포클레스가 <클로노스의 에디프스>를 쓴 것은 80세 때였고,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0세가 넘어서였다. 화가나 문인만 그런 게 아니다. 베르디, 하이든, 헨델도 나이 70세가 넘어서 불후의 명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간 100세 시대라지 않는가?

                                               (201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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