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입니다. 그대 정원에 라일락이 피어날 테지요. 이곳 영양에도 봄은 깊어갑니다. 산과 들엔 조팝나무꽃이 새하얗게 피었습니다. 이곳은 유난히 조팝나무가 많습니다. 그 꽃향기는 짙고, 나는 글썽거립니다. 조팝꽃 향기는 꿈결 같은 우리의 시간들을 그립게 합니다.
조팝, 하필이면 그 이름이 '조팝'입니다. 언젠가 그대한테 일러준 적도 있지만, '조팝'은 '조밥'에서 온 이름입니다. 그 꽃이 일어날 때 '조밥'을 지어 놓은 것 같아서 생긴 이름이지요. 꽃이 '이밥(쌀밥)' 같으면 '이팝'이고요. 또 라일락은 꽃맺힘이 수수열매 같아서 '수수꽃다리'라 부릅니다. 특히 한국 특산의 야생종 라일락은 정향(丁香)이라고 합니다. 조팝, 재미나는 꽃이름이라고만 알고 지내왔습니다.
일전, 회사 일로 이곳 영양에서도 외진 산 마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고추 모종을 내는 농부들을 만났지요. 사 들고 간 막걸리를 그분들과 나누어 마시며 담소(談笑)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나는 젠체했습니다.
"어른신들, 저 산에 무리 지어 핀 꽃 이름 아세요?"
농부들은 일제히 "조팝대!"라고 했습니다, 한 농부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조팝꽃이 피면 조를 심는 시절이고, 이팝꽃이 피면 올벼 못자리를 해야하는 시절이라고요. 그 분의 선친(先親)은 때를 놓치지 말고 씨뿌릴 것을 그렇게 일러주더라는군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농부는 웬일로 한숨까지 쉬었습니다.
이런저런 사념(思念)에 잠깁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생각합니다. 학창시절 익힌 '지표식물(地表植物)의 개념도 이와 유사합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송이풀이 많은 곳에 송이버섯을 채취하려면, 홍자색의 꽃이 달린 송이풀을 찾으면 된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요. 우리 조상들은 야생화의 개화, 산새들의 출몰, 바람의 향방(向方)……. 그 어느 것도 허술히 보아 넘기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것들을 통해 계절의 순환을 알았고, 거기에 맞추어 씨를 뿌리고 거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날 농부의 한숨 너머에는 또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우선, 그들이 겪었을 보릿고개를 상상하게 합니다. 조팝이 그리워 조팝, 이밥이 그리워 이팝, 수수밥이 그리워 수수꽃다리…….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 자락 깔려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굳이 '연상(聯想)의 그물 조직'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월입니다. 지금쯤 그대 정원에 수수꽃다리가 피어날 테지요. 이곳 산 마을엔 조팝꽃이 새하얗게 피어나니까요. 조팝꽃은 향기가 고혹(蠱惑)적입니다. 그 향기가 하도 진해서 '계뇨초(鷄尿草)'라고 얕잡아 부르는 이도 있습니다. 어린 날엔 그 향기에 취해서 곧잘 꺾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조팝꽃을 꺾으면 이내 시드는 꽃임을 알았습니다. 조팝은 밀원(蜜源)으로도 아주 그만인 꽃입니다. 조팝은 줄기가 곧은 낙엽 관목(灌木)입니다.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을 때 그 가지로 젓가락을 만들어도 좋습니다. 곧고 향긋한 새순을 내어놓곤 하니까요.
그대 뜨락의 수수꽃다리가 보라색으로 피어날 적이면 이곳 산 마을의 조팝꽃은 눈이 시리도록 희게 피어납니다. 수수꽃다리와 조팝나무의 꽃철은 같으니까요. 둘은 우리처럼 닮은 점도 퍽이나 많습니다. 그대는 보라색오월을 기억하겠지요. 그대 향한 내 그리움은 언제나 조팝꽃처럼 새하얗고요. 오월에 우린 헤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오월은 조팝꽃 향기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그대는 아주 먼 곳에 계십니다.
그대 뜨락에 수수꽃다리가 피어날 테지요. 수수를 갈아야 할 절후임을 잊지마십시오. 수수와 조를 망태에 담아 메고, 머리에 수건을 질끈 두른 채 산자락 뙈기밭으로 나설 일입니다. |